< 성경 속에 위인전> 이스라엘에 왕이 된 다윗
장지원
이스라엘 모든 지파¹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²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³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⁴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⁵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⁶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⁷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⁹
왕과 그의 부하들이¹⁰ 예루살렘¹¹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¹²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¹³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¹⁴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다윗이 시온 산성¹⁵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¹⁶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¹⁷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¹⁸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¹⁹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²⁰
²¹두로²² 왕 히람²³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²⁴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²⁵
<노트> 구약 성서 사무엘하 5장 1-12절은 이스라엘의 온 지파의 대표들은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는 세 가지 이유를 열거한다. ① 우리는 왕의 골육이다. ② 그는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자. 곧 이스라엘 군을 지휘한 사람이다. ③ 여호와 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목자와 주권자로 세우셨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¹: 어떤 학자들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3절에 기록된 ‘이스라엘 모든 장로’와 같은 의미로 본다(Rust, The Interpreter’s Bible). 즉, 이들은 20세 이상의 모든 지파의 인구가 헤브론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따라서 이들은 이스라엘 지파의 모든 장로들이 이스라엘 온 백성들을 대표하여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온 것처럼 저자가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대상 12:23-40에 비추어 볼 때 옳지 않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다윗을 위해 헤브론으로 나아온 인구가 무려 약 35만명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절의 ‘이스라엘 모든 지파’와 3절의 ‘이스라엘 모든 장로’는 같은 의미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1, 2절은 이스라엘 온 지파가 다윗을 자기들의 왕으로 삼으려는 장면이며 3절은 그 결과 이스라엘을 대표한 장로들이 다윗을 공식적으로 왕으로 삼는 장면이라 하겠다(Leon Wood, Pulpit Commentary). 즉 1-3절은 한 사건을 중복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과정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왕의 골육²: 직역하면 ‘당신의 뼈 그리고 당신의 살’(thy bone and thy flesh, KJV)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상호간의 혈육 관계를 나타내는 관용어이다(창 2:23, 29:14, 37:27, 삿 9:2). 따라서 이는 결국 다윗에 대하여 백성들이 전적인 신뢰를 표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출입하게 한 자³: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치 웨하메비’는 문자적으로 ‘나오고 들어감’을 의미하나, 주로 이 용어는 ‘군대를 지휘하기 위해 출입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삼상 29:6, 왕상 3:7, 대하 23:7, 수 14:11). 따라서 여기서는 사울 휘하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잘 이끌어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던 다윗의 지도력(삼상 18:6, 7)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다(Lange, Matthew Henry).
이스라엘의 목자 … 주권자가 되리라⁴: 여기서 ‘목자’란 백성들에 대한 봉사의 측면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신정 왕국(神政 王國)의 왕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로서 그분의 뜻대로 백성들을 인도하며 보호하고 먹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반면 ‘주권자’란 백성들에 대하여 강한 지도력, 통치권을 행사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왕은 비상시에 군 최고의 통수권자(統帥權者)로서 백성을 효율적으로 관리, 적의 위협을 분쇄해야 할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능률적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公義)에 입각하여 국정(國政)을 이끌어 갈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한편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직접 본 절에 언급된 것과 같은 말을 하셨다고 하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3:9, 10, 18, 삼상 13:14, 15:23, 26, 28, 25:30등을 살펴볼 때, 하나님의 이같은 신탁(信託)은 이미 그 당시 백성들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던 것이다.
언약을 세우매⁵: 왕위 즉위식 이전에 행하는 공식적인 행사였던 이 언약은 쌍방간의 합의에 의한 언약이 아니라 일방적인 언약이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다윗 왕이 …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라는 본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즉, 본 구절의 주어는 ‘저희’가 아니고 ‘다윗’이다. 따라서 언약의 주체는 이스라엘 지파가 아니었고 다윗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이 언약이 쌍방적인 성격이 아니라 일방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언약(삼상 13:14, 15:23, 26, 28)과 관련이 있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시며 왕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신 언약은 다윗이나 기타 모든 백성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결정하신 일방적인 언약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다윗 왕을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겠다고 하는 서약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는 것이지 결코 군주와 국민들간의 어떠한 이해 관계를 따져 협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다윗을 왕으로 삼겠다고 맹세하므로, 그 나라에 큰 복을 베푸시겠다고 하신 하나님과의 언약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언약의 내용은 다윗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이 아니었고 그 반대로 백성들이 다윗 왕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이었다(Hertzberg). 따라서 이 언약을 통해 본 신정 국가의 국가관은, 군주와 국민의 계약 관계를 국가 성립의 근본으로 본 근대의 국가관과는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신정 국가의 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독재자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가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대리자(代理者)임을 뜻할 뿐이다.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⁶: 다윗이 사무엘 당시(삼상 16:13), 그리고 유다 지파의 왕으로 세움 받을 당시(2:4)에 이어 마지막 세 번째로 기름 부음을 받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내용을 기록한 대상 11:3에는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는 말이 덧붙여 있다. 이와 같이 다윗의 세 번째의 기름 부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다윗과 맺으신 그 언약(삼상 16:1)을 어김없이 이루신 감격적인 사건이었다. 2:4 주석 참조.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라⁷: 이로써 이제 유다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다시 사울 통치 때와 마찬가지로 한 왕 아래 통일 되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왕 아래에서 최초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었다는 의의를 지닌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 장 장(章) 강해를 참조하라.
삼십 세⁸: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다윗왕의 나이인 삼십 세는 성경상으로 볼 때 하나님의 공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나이였다. 즉, 이 나이는 (1) 레위인이 성전에서 봉사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으며(민 4:3, 대상 23:3), (2)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나이였으며(창 41:46), (3) 또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나이였다(눅 3:21-23). 이와 같은 사실은 적어도 성도는 이 나라가 되어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공적 업무를 수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암시적 메시지(message)를 제공해 준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나이와 학력 등에 구애받지 않고 당신의 사람을 적재 적시(適材 適時)에 들어 쓰신다(삼상 17:41-54). 그러나 인격적 성숙은 나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도 사실인 것이다.
헤브론에서 … 예루살렘에서 … 다스렸더라⁹: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시점에서 그의 통치 연대를 개괄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는 성경 기자들이 왕조(王朝)의 역사를 기술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서술 양식 중 하나이다(왕상 15:9, 10, 16:29, 왕하 3:1, 12:1, 13:1, 14:2, 23, 15:27).
그 종자들이¹⁰: 여기서 가리키는 다윗의 종자(從者)들이 누구인가에 대하여서는 두 가지 그럴듯한 견해가 있다. (1) 다윗에게 서약하기 위해 온 ‘온 이스라엘의 군대’(1-3절)라는 주장이다(Lange, 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이 주장은 대상 11:4의 내용과 일치한다. (2)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이 종자들이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윗과 행동을 함께 해온 그 정예병(精銳兵)들(삼상 22:4, 23:13)이라고 주장한다(Rust, Hertzberg). 그들은 그 근거로서, 만일 온 이스라엘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했다면 구태여 본서 저자가 ‘다윗의 종자들’이란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내세운다. 그런데 (1)번의 견해는 평행 구절(대상 11:4)과 일치하며 (2)번의 견해는 문자 해석상 그럴 듯하므로, 따라서 이 두 견해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충적인 견해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다시 말해서,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 가까이까지는 나아갔으나, 실제로 지형적으로 험난한 예루살렘을 공략한 자들은 다윗의 종자들, 곧 요압과 그 정예 군사들이었다고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¹¹: 다윗이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천도(遷都)하려 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 지형적, 종교적인 이점들 때문이었다. (1) 헤브론(Hebron)은 유다에서 볼때는 중심 지역이었지만 온 이스라엘로 볼 때는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었다. 2:1 주석 참조. 그러나 예루살렘(Jerusalem)은 온 이스라엘을 치리하기에 아주 좋은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다(Pulpit Commentary). (2) 예루살렘은 주위가 깊은 골짜기로 형성되었고 성읍 자체가 고지에 자리잡고 있는 천혜(天惠)의 방어 요새였다(Wycliffe). (3)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골짜기(the valley of Kidron)에는 기혼 샘(the spring of Gihon)이 있어 충분한 수원(水源)을 확보하고 있었다(Lange). (4)예루살렘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지였다(수 15:7, 8, 18:6). 따라서 예루살렘은 두 지파 간의 심각한 갈등을 해소시키며, 더 나아가 온 나라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적합한 도읍지였다(Keil & Delitzsch). (5) 예루살렘은 온 이스라엘의 중심부로서 중앙 성소를 짓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신 12:4-14 강해, ‘예루살렘 중앙 성소의 의의’ 참조. 즉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모실 수 있는 성전 건축의 최적소(최적소)로 예루살렘을 지목하였던 것이다(Leon Wood). 한편 이와 관련하여 예루살렘에 대한 보다 전반적인 정보를 얻기 위하여서는 대상 11:4-9 강해, ‘예루살렘’을 참조하라.
여부스 사람¹²: 여부스 족속(Jebusites)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부터 예루살렘과 그 주변 산간 지역에 계속 정주(定住)해 왔던 족속이다(민 13:29, 수 15:8, 18:16). 수 9:1, 2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참조. 이들은 여호수아 당시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일시적으로 패주하기도 했으나(수 10:23, 26)완전히 정복당하지는 않았다. 그 후 사사 시대에 이르러 유다 및(삿 1:8)베냐민 지파의 자손들(삿 1:21)도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고로 그들은 점차 세력을 확보하고 마침내 예루살렘을 그들의 방어 기지로 삼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 다윗에 의해서야 비로소 완전히 정복당하고 만 것이다(7-9절). 한편, 여부스(Jebus)는 한때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수18:16, 28, 삿 19:10, 대상 11:4).
네가 이리로 … 들어오지 못하리라¹³: 여부스 족속이 쳐들어 오는 다윗에게 큰소리 치는 장면이다. 지리적으로 여부스 족속이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독립한 나라로서 이와 같이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까닭은 다음과 같은 예루살렘의 지형적인 이점 때문이었다. (1) 예루살렘은 당시 가나안을 남북으로 연결시켜 주던 주요 도로인 ‘왕의 대로’(King’s Highway, 민 20:17, 21:22, 신 2:27)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2) 예루살렘 남쪽과 동쪽의 성벽은 절벽과도 같은 가파른 언덕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3) 예루살렘 주변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아 주는 기드론, 힌놈, 두로베온과 같은 깊은 골짜기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천혜의 방어 기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자신 만만하게 다윗을 향해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고 큰 소리 쳤던 것이다.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¹⁴: 메튜 헨리(Mstthew Henry)는 이와 관련, 여부스족들이 다윗을 조롱하기 위해 실제로 예루살렘 성벽에 소경과 절뚝발이들을 세워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468). 그 사실 여부는 오늘날 확인할 수 없지만, 아무튼 본 절은 당시 예루살렘 성을 과신(過信)했던 여부스인들의 자만을 충분히 증거해 준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 철옹성 여리고도 함락시킨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권능(수 6:1-20)을 기억해야만 했다.
시온 산성¹⁵: 시온(Zion)은 ‘요새’란 뜻으로, 예루살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구릉(丘陵)의 이름이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그런데 이곳에 세워진 산성을 다윗이 빼앗아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이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시온’은 광의 적으로 예루살렘 전체를 묘사하는 말로 곧잘 사용되었는데(왕하 19:21, 사 3:16, 슥 2:10),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었다(사 24:23, 옵 1:17).
수구로 올라가서¹⁶: 다윗이 천혜의 요새 시온 산성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었는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구절이다. 여기에서 ‘수구’에 해당하는 ‘친누르’는 ‘하수도’, ‘배수로’, ‘지하 통로’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곧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기혼 샘에서 남쪽 저수지로 흘러 들어온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수직으로 파놓은 갱도(坑道)를 의미한다. 이 갱도는 성 안에서 성 밖으로 연결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난공 불락의 예루살렘 성안으로 군사들이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따라서 다윗이 이곳을 통해 적 진지에 들어가 공을 세우는 자에게 푸짐한 상급을 주겠다고 약속하자 요압과 그 군사들이 이에 응하였던 것이다(대상 11:6). 한편 이 수갱(水坑)은 1886년 그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1967년 워렌(Charles Warren)이 재차 발견하여 현재 ‘워렌 수갱’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이 수갱이 B. C 2000년 경에 예루살렘 거민들에 의해 건설되었음도 밝혀내었다.
절뚝발이와 소경¹⁷: 여기서는 다윗이 당시 지형적인 이점을 의지하고 교만하게 말했던 여부스 사람들(6절)을 비꼬는 말이다. 즉 저들은 불구자가 아니었지만 이제 다윗의 공격 앞에 꼼짝 못하고 그대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절뚝발이와 소경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는 훗날 속담이 되어 ‘미운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다. 즉 여부스인들처럼 자기의 힘만 믿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사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어떠한 집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밀로¹⁸: 채우다(말레아)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이 ‘밀로’(Millo)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이것이 흙이나 돌로 쌓아 올린 성채(城砦)를 의미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이 성채는 아마도 여부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읍에서 가장 취약 지구인 북방의 방어를 위해 북동쪽이나 북서쪽 한쪽 모퉁이에 세워 놓았던 것일 것이다(Hertzberg, Keil, Lange, Rust). 아무튼 다윗은 이 밀로를 기점으로 하여 예루살렘에 성벽을 둘러 쌓음으로써 외세 확장의 기틀과 여호와 종교를 위한 중앙 성소의 기초(대하 3:1)를 마련하게 되었다. 한편, 솔로몬과 히스기야는 이 밀로를 증축, 또는 수축한 바 있다(왕상 11:27, 대하 32:5).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¹⁹: 이에 해당하는 ‘야훼 엘로헤 체바오트’는 ‘천군 천사(天軍 天使)의 하나님 여호와’로도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체바오트’의 기본형 ‘체바아’는 본래 ‘군대’, ‘무리’란 뜻으로,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거느리고 계시는 수많은 하늘 군대인 천사들(욥 33:23, 느 9:6, 시 103:21, 마 10:27, 히 12:22)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아무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란 하나님의 큰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신명(神名)으로서, 약칭 ‘야훼 체바오트’로 종종 표기된다(6:2, 삼상 15:2, 왕하 3:14, 대상 17:24, 시 24:10, 사 1:9).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²⁰: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의 결과이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 군대를 인솔하시어 다윗의 대적을 물리쳐 주시니(6-9, 17-25절)그의 왕국이 안으로는 물론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될 정도로(11절)강성해진 것이다. 12절 주석 참조.
²¹본 절은 다윗 왕과 히람왕 간의 화친(和親)장면이다. 그런데 이는 17절 이하에 나오는 블레셋 정복 사건 이전에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블레셋 정복이 다윗과 히람 왕의 화친보다 시간상으로 빨랐을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주장한다(Keil, Rust, Lange, Leon Wood). 이러한 견해가 가능한 것은 성경이 반드시 연대순으로(chronologically)만 배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도(topically) 배열되어 있는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견해가 가능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1) 결정적으로 본문의 내용 자체가 이를 뒷받침 해주기 때문이다. 즉 17절에 보면, 다윗의 블레셋 정복 사업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직후에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며(17-25절)성벽을 구축하는데 여념이 없었던(9절) 다윗 초기에 그가 거할 궁궐을 지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2)또한 다윗이 즉위하던 때에는 히람(Hiram)왕이 분명히 왕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왕상 9:10에 의하면, 히람 왕은 최소한 솔로몬 통치 20년까지는 생존하였다고 하였으니, 그가 다윗의 즉위 초기부터 왕위에 있었다고 보기에는 너무 무리이다. 이에 대하여 고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우리에게 간접적인 증언을 해주고 있다. 즉 그의 {고대사}(Antiquities)에 볼 것 같으면, 히람 왕은 그의 부왕 아비바알(Abibaal)을 계승하여 34년간을 통치하다가 그의 나이 53세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Lange, Keil & Delitzsch, Vol. II, pp. 319 ff). 따라서 그의 증거에 의하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할 때(1-3절)그는 왕위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따라서 다윗과 히람의 화친은 다윗의 초기가 아니라 말기에 이루어진 사건임이 분명하다. (3) 또한 히람이 아무런 연고도 없이 다윗에게 사절단을 파견하였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즉 이는 분명 다윗이 블레셋을 비롯한 이방 민족들을 보기좋게 제압하자(17-25절)다윗의 큰 세력을 인식한 히람 왕이 화친의 제스처(gesture)로 사자들과 백향목 등을 보내온 것으로 사료(思料)되기 때문이다(Leon Wood). 이상과 같은 증거들로 미루어 볼 때, 다윗과 히람 왕의 화친은 다윗의 블레셋 정복 사업보다 훨씬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본 절은 저자가 다윗의 흥왕(10절)의 구체적 실례를 보여 주기 위해 앞당겨 기록한 내용일 것이다. 한편, 이로써 히람 왕이 다윗에게 사절단을 파견한 것은 다윗의 즉위를 축하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주장(Thenius)은 이상의 증거들에 위해 근거없는 것임이 판명되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319).
두로²²: 두로(Tyre)는 시돈(Sidon)과 함께 B.C. 8-10세기경 베니게(Phoenicia)의 중심적인 도시 국가였다. 이스라엘 최북단 국경에서 약 24 km 서북쪽에 위치해 있던 이 도시 국가는 지중해 연안 국가로서 일찍부터 목재, 밀기름, 포도주, 금속, 노예, 말 등을 수출하는 무역 국가였다. 한편 B.C. 10세기 경에는 두로가 시돈을 압도한 듯 했으나 얼마 후에 두로는 시돈의 지배를 받은것 같다(사 23:2, 12). 하지만 그들의 전성 시기에 두로의 상선들은 애굽과 스페인까지도 진출했었다.
히람²³ 일명 ‘후람’(Huram)이라고도 하며, 이름의 뜻은’고귀한 자’이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두로를 다스리던 왕으로서, 다윗은 물론 솔로몬의 건축 사업에 적극 조력한 것으로 유명하다(왕상 5:1-12).
백향목²⁴: 레바논이 주산지인 백향목(cedar trees)은 왕궁 성전(왕상 5:5, 6, 6:9, 10), 배의 돛대(겔 27:5), 우상 등을 건설 또는 만드는 데 사용될 정도로 최고급 건축 자재였다. 이 나무는 잘 썩지 않고 벌레가 먹지 않으며 또한 내구성(耐久性)이 강하며 방향(芳香)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히람 왕이 이렇게 좋은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 다윗이 다스리던 신정 국가의 위세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잘 보여 준다.
다윗이 … 아니라²⁵: 여기서 ‘알다’(perceive, KJV)에 해당하는 원어 ‘야다’는 단순한 인식을 의미하는 ‘나카르’와는 달리 경험을 통해 아는 실제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말이다. 즉, 이말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한 단순한 기억이나 어떤 사물에 대한 단순한 인식을 의미하지 않고, 전에는 희미하게(막연히) 알았으나 여러 경험을 통해 그 본질을 더욱 확실하게 파악한 체험적인 지식을 의미한다(창 4:1, 18:19, 신 1:39, 8:5). 따라서 본 절에서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을 왕을 삼으신 것’을 알았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한 사건(3절)을 기억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와는 달리, 이 말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예루살렘 정복(6-10절), 블레셋 정복(17-25절), 히람 왕과의 화친(11절)등 만사 형통하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여호와께서 자기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그 본질을 확실히 파악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즉 예를 들어 설명하면, ‘학교’라는 말만 아는 어린이가 직접 학교에 들어가 경험해 봄으로써 날마다 학교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듯이,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이 그 기름 부음의 실제적인 의미를 통하여 더욱 승승장구하는 여러 경험들을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한편 이와 마찬가지로 본 절 후반부에서 여호와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다윗이 알았다는 말도 같은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사 그 나라를 열방 중에 높이신 것은 다윗 개인에게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복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는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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