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기억
장지원
오월을 맞아
내 가슴에 묻어두었던 희미한 기억을 끄집어내다
세상이 까슬까슬한 보릿고개 앞에서 주저앉을 수 없었던 시절
자식이 염병까지 걸렸으니
어머니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다가 부서지는 백탄이 되었으리라
무늬만 가장인 그 슬하에 육 남매
집안 살림에 들일까지 하시며 틈나면 길가에서 푸성귀 챙겨 끼니까지 챙겨야 하던 때
어머니의 손은 열 개라도 부족하였으리라
장맛비 쏟아지는 7월의 어느 날 밤
불덩이 같은 자식을 업고 그 비를 다 맞으시며 황급히 김 약국을 찾아갈 때
어머니의 등에다 토를 하니 할 말을 잃은 빗물이 눈물과 범벅이 돼 이를 씻어 주더라.
측은히 말해주던 김 약국의 말은 지금도 어머니의 가슴에 박히는 대못이 되었겠지
인견으로 하얀 소복 같은 한복을 손수 말아 입으시던 어머니
젊은 새댁의 청승맞음이라 했겠지만 그땐 당신의 삶의 전부이었으리라
지금 생각해도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내려 가슴이 먹먹하다
아버지는 목화솜을 틀어 놓아 만든 도톰한 한복을 즐겨 입으셨다
침침한 등잔 아래서 밤새도록 뜨개질을 하여 육 남매의 세타를 떠 입혀주신 어머니
좋은 세상 호강 한 번 할세 없이
말년엔 자식들의 집을 한 바퀴 도시며 어디에도 짐 되지 않으리라 다짐이라도 하셨듯이
그렇게 어느 날 힁하니 저세상으로 떠나셨다
2010년(庚寅) 1월 30일 어머니의 초상을 맞아 3일 내내 겨울 속의 봄 날씨는
생전의 당신 마음씨 같아 더 가슴이 아파 하늘 무너짐에 비할까
아버님 옆에 합장을 하니 그 지긋지긋한 세월도 고개를 숙이고 초연히 말이 없더라.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2년, 2022년(壬寅) 5월 9일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유택에서 풍기는 세월의 노쇠함은 두 분의 말문을 막았던지 와도 가도 말씀이 없으시다
주님 오시는 날, 그날 아침 부활을 기약하며 그때까지 쉬셔도 되리라
오월의 햇살이 당신의 품처럼 따스하다
202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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