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대
장지원
상고대 피면
하얀 잠에 빠지는 산촌
떨리는 문풍지 때문에 노인의 입술도 힘없이 떨리다
거위정한 허리는 아궁이 앞에서 시절을 나무라다
메케한 연기에 세월 속에서도 못다 흘린 눈물을 흘려야하나
그렁그렁하다 그새 못 참고 본색을 드러내는 저녁 날씨
아궁이 열기가 바짓가랑이 사이로 살갑다 보니
노인의 불알이 늘어지고 약간의 여유에도 행복은 있다
섣달의 긴긴 밤 마냥 좋을 수 없다고
아랫목은 냉랭하게 체온을 떨어뜨려
첫 닭이 울고 두 번째 닭이 울 때까지 견디다
잠이 없다는 핑계로 일어나는 늙은이
한 평생 살다보니 세월 앞에 명장이 있을까
아들 딸 낳아 다 키우며 살아왔다
시절에 맛 들면 제 잘나서 잘 산다고 하겠지만
좋은 세상, 이 겨울 노인의 가슴은 헛헛하기만 하다
상고대 곱게 피는 산촌의 거울은
이야기 꺼리가 여전히 넘쳐난다
20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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