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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세目世 와 목민目民

노파 2011. 6. 6. 08:26

목세目世 와 목민目民

장지원

 

 

세모를 맞는 우리에게 현실과 비전을 책 속에서 찾아보자.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쓴 목민심서(目民心書)에서 한 귀 절을 인용해 본다.

정해년(丁亥年) 마무리 잘하고 무자년(戊子年) 값지게 맞으시길 기원합니다.

 

□ 이명준(李命俊)

“이익에 유혹되어서는 안 되고, 위세에 굴복해서도 안 되는 것이 수령의 도리다. 비록 윗사람이 독촉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명준(李命俊)이 고산찰방(高山察訪)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그 역(驛)이 함경도의 요지에 있어 역마(驛馬)를 타는 자들이 법의 한도를 넘어서 지나치게 요구하였으므로 역졸들이 견디어 낼 수가 없었다. 그는 법률대로 집행하여 굴하지 않았다. 감사가 와도 반드시 마패(馬牌)대로만 역마를 지급하자, 감사가 노하여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다투다가 결국 조정의 명령을 요청하니, 조정에서는 그가 옳고 감사가 그르다고 하였다. 오래된 폐단은 곧 고쳐졌으나 그는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돌아가 버렸다.

 

□ 허조(許稠)

“확연히 지킬 것을 지켜 흔들리지도 말고 빼앗기지도 아니하면, 곧 인욕(人慾)이 물러나고 천리(天理)가 흘러 행해질 것이다.”

허조(許稠)가 전주판관(全州判官)으로 있으면서 맑은 절개를 지키며 굳세고 밝게 일을 처리하였는데, 비법단사(非法斷事) 황천강벌(皇天降罰) ‘법이 아닌 것으로 일을 처리하면 하늘이 벌을 내린다.’ 여덜 글자를 작은 현판에 써서 동헌에 걸어놓고 있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주 :

이명준 (李命俊,)

이항복(李恒福) ·성혼(成渾)의 문하생. 1600년(선조 33) 진사가 되고 1603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 호조 ·형조의 좌랑(佐郞)을 역임했다.

1613년(광해군 5) 계축화옥(癸丑禍獄) 때 영덕(盈德)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장령(掌令)에 오르고 홍문관(弘文館)에 등용되었다가 충청도 관찰사, 1630년(인조 8) 대사간이 되었으며 병조참판에 이르러 병으로 사퇴했다. 그 사후 좌찬성(左贊成)이 추증되었다. 문집 《잠와유고(潛窩遺稿)》가 있다.

 

허조(許稠)

조선 세조 때에 단종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정간공(貞簡公) 허후와 그의 아들인 수찬공(修撰公) 허조의 충렬(忠烈)을 기리기 위해 1792년(정조 16년)에 정려(旌閭)가 내려졌으며, 1814년(순조 14년)에 정려각을 건립하고 정려현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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