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6월21일[대선지서-이사야6장1-5절]
이사야의 소명
장지원
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주> 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이 해는 BC 740/739년이었을 것이다. 연대는 매우 중요한 항목임이 분명하다. 웃사야가 52년 동안의 긴 치세를 마감하던 해에 여호와께서 젊은 이사야에게 선지자로서의 그의 사명을 확증하는 이상을 보여 주시고 또한 그에게 이스라엘을 향한 책망의 기별을 주셨다(선지자와 왕, 305~307; 교회증언, V, 749, 750,). 그때는 위난과 난국의 시기였다. 앗수르의 대왕 디글랏 빌레셀 III세(Tiglath-pileser III)는 745년에 보좌에 앉자마자 거의 곧바로 일련의 원정을 시작하여 서아시아의 상당 부분을 정복하였다(참조 이사야 서론). 그는 745년에는 바벨론을 향해 진군하였고, 744년에는 앗수르의 북동쪽에 있는 나라를 쳤으며, 743년에서 738년까지는 매년 북서쪽으로 원정을 갔다. 디글랏 빌레셀은 그의 연대기에 일반적으로 유다의 아사랴(웃시야)로 여겨지는 야우다(Iauda)의 아즈리아우(Azriau)에 대하여 자주 언급한다. 웃시야는 앗수르의 공격을 저항하는 일에 지중해 지역의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메넴도 언급되어 있다. 웃시야가 죽은 때는 디글랏 빌레셀이 서쪽에 대한 그의 원정을 한창 진행하던 시기였다. 그토록 강력하게 앗수르에 대항하던 그 사람이 죽었다. 이제 유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모든 세계가 앗수르 군대의 먹이가 되고 마는 것인가? 자칭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죄로 인해서 이미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상실한 가운데 있었다. 앗수르군은 무적의 군대로 보였다. 유다가 정복당하고 온 세계가 앗수르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다만 시간문제일 뿐인 것처럼 여겨졌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이 표현은 이사야가 성전의 신성한 구역에 들어간 경우들 중의 한 경우에 일어난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가 그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만을 보기보다는 더 넓게 볼 수 있도록 의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가 강할지라도 그분은 여전히 그분의 보좌 위에서 탁월하시며 지상의 사건들을 주장하고 계신다는 것을 이사야가 알게 하고자 하셨다. 모세는 비슷한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다(출 24:10). 이사야 시대로부터 1세기 이상 전에 선지자 미가야는 주께서 그분의 보좌에 앉으셨고, 그분 옆에 하늘 군대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왕상 22:19). 웃시야의 통치 초기에 아모스 역시 주께서 성전 뜰의 제단 옆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암 9:1). 후에 바벨론 포로 기간에 다니엘(단 7:9)과 에스겔(겔 1:1, 10:1-5)은 주께서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을 이상으로 보았고, 요한도 밧모섬(계 4:1-6)에서 보았다. 하나님의 백성이 위험에 둘러싸이고 어둠의 세력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보좌에 앉으셔서 하늘과 땅의 일들을 지도하시는 그분을 바라보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도록 요청하신다.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 이상을 볼 때 이사야는 성전 뜰에 기도하면서 서 있었다(선지자와 왕, 307). 그의 앞에서 성전 문이 열리는 듯이 보였고, 그는 지성소에서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성전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는 히브리어 단어 헤칼(hekal)은 본래 하늘 대왕의 “성전” 또는 “왕궁”을 의미한다(참조 시 11:4; 29:9; 합 2:20). “옷자락”은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의 두루마기이다. 요한은 이 이상을 그리스도께 적용하고 있다(요 12:41).
2 스랍들: 히브리어 스라핌(serapim), 문자적으로는 “불타는 [존재들]” 또는 “빛나는 [존재들].”
여섯 날개: 요한이 본 보좌 주변에 있는 생물들도 여섯 날개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계 4:8과 비교해 보라. 하지만 에스겔이 본 생물들은 네 날개가 있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겔 1:6). 이사야는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서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태도로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고 두 날개는 나는 데 사용하는 천사들을 보았다. 에스겔은 두 날개로는 몸을 가리고, 다른 두 날개는 위를 향해서 뻗은 생물들을 보았다(겔 1:11).
3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 있는 천사들은 그분의 놀라운 속성, 곧 그분의 완전한 거룩성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요한이 본 보좌 주변에 있던 생물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계 4:8)라고 외쳤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마음에 당신의 거룩성에 대한 개념을 심어 주길 원하셨다. 이는 그 선지자가 그분의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품성의 이 속성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또한 그로 인해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버리고 거룩하게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해 두루마리 1QIsa(참조 제1권, 32; 이사야 서론)에는 “가로되”가 빠져 있고, “거룩하다”라는 단어도 두 번만 나온다.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0:5과 비교해 보라.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깨닫게 되면 사람은 겸손히 그분 앞에 설 수밖에 없다. 흑암이 땅을 뒤덮고 큰 암흑이 그 백성을 휩싸고 있을 바로 그때에(60:2) 이사야는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뒤덮일 날을 바라보았다.
4 문지방의 터: (제임스왕역(KJV)에는 “문의 기둥”-역자 주). 문자적으로는 “문지방의 중심.” 이는 곧 문짝이 세워져 있는 구멍을 뜻한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인해 성전의 기초 자체가 흔들린 것 같다.
연기: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을 드러내는 향의 연기. 시내산이 연기에 휩싸인 채 크게 흔들린 출 19:18과 비교해 보라. 또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성전이 연기로 가득 차 있는 계 15:8과도 비교해 보라.
5 화로다 나여: 이사야는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 중에 있는 죄인들에게 화를 선포한 적이 있었다(5:8~30). 이제 그는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두려운 임재 가운데 있음을 알고는 자신의 품성의 결함을 깊이 깨닫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면 이와 동일한 경험이 우리에게도 이르러 올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거룩하심과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이상은 이사야로 사람이 죄되고 미천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그 영원하신 분 앞에서의 자신의 무가치함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5:24) 앞에서의 자신의 죄됨을 깨닫게 되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나아갈 때 자신의 얼굴을 가렸으며(출 3:6), 욥은 자신을 증오하며 티끌과 재 가운데 앉아 회개하였다(욥 42:6).
2026.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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