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6월18일[대선지서-이사야5장18-23절]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장지원
18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19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22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화 있을진저
23 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았는도다
<주>18 죄악을 끌며: 자신들이 어떤 일을 행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죄의 길을 고집하는 자들에게 세 번째 재앙이 선포된다. 그들은 자진해서 끈으로 자신들을 죄악에 묶었는데, 이는 곧 그들을 죄에서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목적의 모든 감화력을 완고하게 거절한다는 의미이다(참조 61:1).
수레 줄: 수레 줄은 보통 끈보다 더 두껍고 튼튼한 줄로, 이는 더 발전된 반역의 단계를 상징한다. 이 단계에 들어선 악인들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 튼튼한 줄로 자신들을 죄악에 붙들어 맨다. 죄악을 고집함으로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에 있다.
19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이 죄인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의 완고한 정신과 관련해서 그가 하고자 하시는 일을 어서 하시라고 담대히 도전한다. 그분께 대한 그들의 반역은 매우 도전적인 반역이다. 이사야는 멸망이 심히 가깝고도 확실함을 지속적으로 지적하였다. 그의 둘째 아들의 이름인 마헬살랄하스바스(8:3)는 “약탈을 신속히 하고, 전리품을 재촉하라”는 의미를 지닌 이름이다. 이 이름은 이사야가 이제까지 자주 예언해 온 바로 그 멸망의 때가 심히 가까웠음을 이스라엘에게 알려주기 위한 표로 주신 이름이었다(8:18).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비웃었다. 그들은 임박한 심판에 관한 이사야의 엄숙한 기별에 대하여 “네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해 온 멸망을 하나님이 어서 집행하게 하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눈으로 그것을 보기 원하노라”는 조롱 섞인 말로 응답하였다. 이처럼 그들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였다. 말 2:17; 3:13과 비교해 보라.
20 악을 선하다 하며: 하나님이 자비 가운데 보내시는 경고의 기별을 지속적으로 거절하는 사람은 결국에 가서는 그 생각이 너무나도 사악해져서 더 이상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그는 참으로 옳은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고, 잘못된 것은 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악함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파멸이 더 이상 오래 지체될 수 없다.
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이 사악한 고집쟁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보다 더 큰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움 속에 갇히게 된다(롬 1:21; 참조 시대의 소망, 213). 그들이 자랑하는 지혜는 형편없는 어리석음에 불과하다(롬 1:22). 이 세상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과 그가 하고자 계획하시는 모든 일에서 흠을 잡는다. 오늘날 자기 자신과 자신의 주변 세계에 화를 가져오는 사람들은 바로 이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라는 시편기자의 엄숙한 말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22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이 재앙은 11, 12절에서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에게 선언된 재앙과 유사한 재앙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재앙은 단순히 방탕한 술주정꾼들의 한 집단에게만 선언되었다. 여기에서의 재앙은 술 취함과 23절이 그 결과로 언급하고 있는 부정한 행위들과의 관계까지도 추적한다. 이 사람들은 술 마시는 일에 “용감하”고 죄악을 행하는 일에 겁없는 사람들이다.
23 악인을 의롭다 하고: 즉 “죄를 면해 주고.” 이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정의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그들은 물질적 이득을 챙기기 위하여 가장 극악한 죄인들까지라도 기꺼이 그 혐의를 벗겨 주고자 한다. 그들은 뇌물을 받기 위하여 의로운 사람에게는 유죄를 선고하고 악인에게는 무죄를 선고한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은 돈이 많이 드는 생활이다. 그 같은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확보하기 위하여 그들은 그 어떤 일이라도 행할 것이다. 나라의 재판석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면 그 나라는 이미 매우 딱한 지경에 이른 나라이다.
2026.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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