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욥
장지원
욥이 또 비사를 들어 가로되¹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²
(나의 생명³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⁴이 오히려 내 코에 있느니라)
결코 내 입술이 불의⁵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단정코 너희를 옳다 하지⁶ 아니하겠고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내가 내 의를 굳게 잡고⁷ 놓지 아니하리니
일평생 내 마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하리라
나의 대적⁸은 악인 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사곡한 자⁹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 영혼을 취하실 때에는 무슨 소망이 있으랴
환난¹⁰이 그에게 임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불러 아뢰겠느냐¹¹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¹²
전능자의 뜻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¹³ 어찌하여 아주 허탄한 사람이 되었는고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¹⁴, 강포자가 전능자에게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그 자손¹⁵이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 후예는 식물에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그 남은 자¹⁶는 염병으로 묻히리니
그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예비할지라도
그 예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 은은 무죄자가 나눌 것이며
그 지은 집은 좀¹⁷의 집 같고 상직군의 초막¹⁸ 같을 것이며
부자¹⁹로 누우나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요²⁰
눈을 뜬즉 없어졌으리라²¹
두려움²²이 물 같이 그를 따라 미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빼앗아갈 것이며
동풍²³이 그를 날려 보내며
그 처소에서 몰아 내리라
하나님²⁴이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쏘시나니
그가 그 손에서 피하려 하여도 못할 것이라
사람들이 박장하며²⁵ 비소하고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
<노트> 구약성서 욥기 27장은, 욥은 친구들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겠노라고 천명한다(욥 27:5). 그리고 악인들의 절망적인 상태를 진술해 나간다. 많은 학자들은 본문을 소발의 변론으로 간주한다. 그 이유는 이 내용과 ‘악인들은 멸망한다’는 소발의 견해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추론이다. 왜냐하면 욥은 이미 악인들의 운명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으며(욥 24:18-24). 궁국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소발이 주장하는 즉각적인 악인의 심판을 부정했을 뿐이다. 그래서 욥은 그들이 망하는 시기를 알지 못해 안타까워했다(욥 24:1). 따라서 27장에서 욥은 궁극적으로 피할 수 없는 악인의 멸망에 대해 밝히고 있다.
욥이 또 비사를 들어 가로되¹: 이 장은 뚜렷하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1~6절)에서 욥은 자신의 결백함과 끝까지 충성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표명한다. 둘째 부분(7~12절)에서 그는 자기 원수들을 비난한다. 셋째 부분(12~23절)에서는 그가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우 방법을 숙고하던 일로 돌아가, 그들의 궁극적인 형벌과 파멸을 인정한다. 이 변론은 일련의 금언들을 차례차례 인용하며 제시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비사: 히브리어 마샬(mas∨al). 이것은 (1) 잘 알려진 진술(삼상 10:12; 겔 18:2, 3). (2) 속담(신 28:37; 왕상 9:7). (3) 예언적이고 비유적인 담화(민 23:7, 18; 사 14:4; 미 2:4). (4) 비유(겔 17:2; 20:49). (5) 시(詩, 민 21:27~30). (6) 도덕적 지혜를 담은 짧은 문장들(왕상 4:32; 잠 10:1) 등을 나타낸다. 이 용어는 욥의 말에 새로운 동향이 있음을 시사한다. 논쟁적이고 감정적인 말들이 신중한 판단의 사려 깊은 표현들로 바뀌고 있다. 욥 29:1에서 이 용어가 반복됨을 주목하라.)
하나님…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²: 여기에서 단 한 번 욥은 맹세에 의지하여 호소한다. 친구들에게 마지막 호소를 하는 엄숙한 상황에서, 욥은 자기의 증인이신 하나님께 호소함으로써 발언을 시작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참조 삿 8:19; 룻 3:13; 삼상 14:39; 삼하 4:9; 12:5; 왕상 2:24; 왕하 5:20; 대하 18:13; 렘 38:16). 욥은 자신의 진실성을 확신했기 때문에 자기를 마치 범죄자처럼 취급하신 하나님께 호소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생각한다.
생명³: 히브리어 느샤마(nes∨amah). “헐떡거리다”는 뜻을 지닌 어근 나샴(nas∨am)에서 유래했다.
기운⁴: 히브리어 루아흐(ruah.). 이 단어는 어떤 경우 느샤마와 동의어로 쓰이지만, “바람”(참조 26:23 주석), 생기를 주는 생명의 원리(참조 전 3:19 주석) 등 다른 의미도 지니고 있다.
불의⁵: 욥의 친구들은 그에게서 죄의 고백을 받아내려고 노력했다. 욥은 자기가 무죄하다는 확신 가운데 굳게 설 뿐 아니라, 장래에도 충성할 것임을 굳게 다짐한다. 압력이나 관례에 개의치 않고 욥은 정직하게 살기로 결심한다.
너희를 옳다 하지⁶: 욥의 친구들은 단호하게 그가 죄를 지었다고 주장해 왔다. 욥은 격한 말로 그들의 입장이 옳지 않음을 지적한다. 어떤 사람들은 협박에 의하여 자기가 하지 않은 잘못을 했다고 시인할 수도 있다. 욥은 그렇게 하기를 단호히 거부했다.
내가 내 의를 굳게 잡고⁷: 사람이 재산과 가족, 친구와 건강을 잃을 수 있지만, 그는 여전히 다함이 없는 위로의 근원이 되는 깨끗한 양심을 소유할 수 있다(참조 행 23:1; 24:16; 고전 4:3, 4; 딤후 1:3; 요일 3:21).
대적⁸: 욥의 원수들에게 하는 저주의 말과 함께 이 절은 이 장의 둘째 단락을 시작한다.
사곡한 자⁹: 또는 “경건치 않은 자.” 참조 막 8:36, 37. 이 진술은 8:13에 나오는 빌닷의 주장이나, 20:5에 나오는 소발의 주장과 일치한다.
환난¹⁰: 고의적인 위선이나 완고한 불경건은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단절시키며, 종종 도움을 받기 위해 그가 드리는 기도의 응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욥의 친구들은 그런 사실을 욥에게 적용하면서 비슷한 말들을 했다.
항상 하나님께 불러 아뢰겠느냐¹¹ 죄인은 특별한 경우에만 기도한다. 그는 기도의 습관을 지속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사업이 기도해야 할 시간을 빼앗도록 허용하며, 하찮은 핑계로 은밀한 헌신을 소홀히 하다가 이내 기도하기를 완전히 포기한다.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¹²: 참조 13절 주석¹⁴.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¹³: 욥은 자기 친구들이 알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도, 말하려고 마음먹지도 않는다.
분깃¹⁴: 13~23절은 이생에서 악인들이 처벌을 받는 문제에 관한 욥의 이전 견해를 완전히 부정한다는 면에서 문제점을 제시한다(참조 9:22~24; 21장; 24장). 외견상 그 주장을 바꾸게 된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추측이 제기되었다.
(1) 실제로 이 구절은 소발이 한 말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견해는 이치에 맞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런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두 구절이 생략되었다고 추정해야만 한다. 즉 10절과 11절 사이에 말하는 사람이 소발이라는 소개가 있어야 하고, 28장 첫 부분에 욥이 다시 말한다는 소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런 주장대로라면 11절과 12절의 모든 대명사를 2인칭 복수에서 2인칭 단수로 바꾸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소발이 욥에게 그 말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욥이 심사숙고하지 않고 열정적인 논쟁 중에 성급하게 했던 자기의 진술을 철회하려고 애쓴다는 추측이다. 이런 견해는 욥을 발언자로 본다는 점에서는 유리하지만, 욥이 친구들에게 그들이 이미 믿었고 거듭 확인했던 내용을 깨닫게 해 주려고 한다는 사실(참조 12절)에서는 불합리하다. 더욱이 이 견해는 친구들이 끈덕지게 강조했던 바로 그 내용을, 어리석게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며 욥이 친구들을 비난하는 셈이 된다(참조 13절).
(3) 욥은 자기가 하는 현재의 변론에 답하여 친구들이 하리라고 예상되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견해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목적을 나타내는 암시가 전혀 없으며, 만약에 욥이 예상되는 주장에 시선을 끌고 있었다면 그런 주장에 대해 반박했을 것이 예상되지만 그런 내용은 전혀 없다.
(4) 욥이 최후의 심판에 관해 말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견해는 여기서 말하는 재앙들이 모두 이생에서 받는 것들이라는 조심스런 분석에 의하여 배제된다. 여기서 말하는 사망은 둘째 사망이 아니라 첫째 사망이다.
(5) 욥은 여기에서 자기 친구들의 무기를 그들에게로 되돌려, 그들이 악인들의 받을 재앙이라고 선언한 그 운명을 스스로 받도록 빌고 있다는 견해이다. 다각도로 생각해 볼 때 이 견해가 합당한 것으로 보인다. 욥은 자기의 무죄함을 거듭 확인했다(1~6절). 우회적으로 그는 친구들을 고발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을 무고(誣告)했기 때문이다. 욥은 그들이 자기를 협박하고자 했던 것과 동일한 공포로써 그들을 위협한다. 그들은 저희 자신을 향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고 욥은 그들을 질책한다. 이 견해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추측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상황에 맞추려고 할 때 가장 적은 조정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자손¹⁵: 욥은 자녀들을 잃었는데, 그런 상실은 그의 친구들이 보기에 욥에게 죄가 있다는 징표였다. 욥은 악인의 자녀들이 번영한다고 주장했다(21:8, 11).
그 남은 자¹⁶: 생존자들은 무서운 전염병에 목숨을 잃고, 땅에 묻혀 잊혀질 것이다(참조 레 26:25; 삼하 24:13; 렘 14:12; 15:2).
좀¹⁷ 깨지기 쉬움, 부패, 연약함의 상징.
초막¹⁸: 이것은 포도원이나 과수원 안에 임시 거처로 세운 오두막이나 나뭇가지로 만든 조그만 집을 가리킨다(참조 사 1:8; 애 2:6). 초막은 가장 약하고 파손되기 쉬운 거처였다. 악한 자들에겐 안정성, 영구성, 안전이 부족하다.
부자¹⁹: 이 구절은 “그가 부자가 되어 누우나”로 번역할 수 있다.
돌아가지 못할 것이요²⁰: 70인역에는 “더하지 못할 것이요”로 되어 있으며, 그것은 곧 그 경험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의미이다.
없어졌으리라²¹: 혹은 “그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깨어서 자기가 죽었거나, 살해자의 수중(手中)에 있음을 깨닫든지, 아니면 그가 깨어서 자기 재물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두려움²²: 참조 욥 18:14; 20:25; 시 18:4.
동풍²³: 참조 욥 1:19; 9:17; 15:2; 38:24; 사 27:8; 겔 27:26.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동풍은 더위와 가뭄을 의미했으나,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비를 몰고 왔다.
하나님²⁴: 이 단어는 추가되었다. 여기서도 여전히 주어를 폭풍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폭풍]이 그 자체를 그에게 던지되 아끼지 아니하리라.”
사람들이 박장하며²⁵: 이 문장의 주어가 “동풍”, “하나님” 또는 “사람들”인지 여기서는 분명하지 않다. 어느 경우이건, 악인은 조롱의 대상이다.
2026.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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