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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과거의 행복 회고함

노파 2026. 4. 27. 00:02

 

욥-과거의 행복 회고함

장지원

 

 

욥이 또 비사를 들어¹ 가로되

내가 이전 달²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³ 날에 지내던 것 같이 되었으면

그 때는 그의 등불⁴이 내 머리에 비취었고

내가 그 광명을 힘입어 흑암에 행하였었느니라

나의 강장하던⁵ 날과 같이 지내었으면

그 때는 하나님의 우정⁶이 내 장막 위에 있었으며

그 때는 전능자가 오히려 나와 함께 계셨으며⁷

나의 자녀들⁸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뻐터⁹가 내 발자취를 씻기며 반석이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흘러 내었으며

그 때는 내가 나가서 성문에¹⁰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¹¹를 거리에 베풀기도 하였었느니라

나를 보고 소년들¹²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방백들¹³은 말을 참고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귀인들은 소리를 금하니 그 혀가 입 천장에 붙었었느니라

귀¹⁴가 들은즉 나를 위하여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위하여 증거하였었나니

이는 내가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줄 자 없는 고아를 건졌음이라¹⁵

망하게 된 자¹⁶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¹⁸의 마음이 나로 인하여 기뻐 노래하였었느니라

내가 의로 옷을 삼아¹⁹ 입었으며

나의 공의는 도포와 면류관 같았었느니라

나는 소경²⁰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²¹의 아비도 되며

소한 자의 일²²을 사실하여 주었으며

불의한 자의 어금니를 꺾고²³

그 잇사이에서 겁탈한 물건을 빼어 내었었느니라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²⁴에서 선종하리라

나의 날은 모래²⁵ 같이 많을 것이라

내 뿌리²⁶는 물로 뻗어나가고

내 가지는 밤이 맞도록 이슬에 젖으며

내 영광은 내게 새로워지고

내 활²⁷은 내 손에서 날로 강하여지느니라 하였었노라

무리는 내 말을 들으며

나의 가르치기²⁸를 잠잠히 기다리다가

내가 말한 후에 그들이 말을 내지 못하였었나니

나의 말이 그들에게 이슬 같이 됨이니라

그들이 나 바라기를 비²⁹ 같이 하였으며

입을 벌리기를 늦은 비 기다리듯 하였으므로

그들이 의지 없을 때에 내가 함소하여³⁰ 동정하면 그

들이 나의 얼굴 빛³¹을 무색하게 아니하였었느니라

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고 으뜸³²으로 앉았었나니

왕이 군중에 거함도 같았고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도 같았었느니라

 

<노트> 구약성서 욥기 29장은, 욥은 고난 이전에 누렸던, 과거의 행복하였던 때를 회상한다. 본문에서 욥은 존경받았던 지난날의 사회적 위치와 개인적인 의에 대해서 길게 말한다. 첫 부분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그처럼 번영하였고 축복을 받았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는 점차 자신의 공의로운 행동과 업적에 대하여 나열한다. 그래서 뒷부분에 욥의 말(욥 7:25)로 보면, 마치 욥이 그의 의를 드러내면서 자화자찬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의로움으로 돌보아 주셨기 때문에, 그런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었노라고 첫 부분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욥이 또 비사를 들어¹: 참된 지혜의 본질, 인간의 업적과 하나님의 무한한 지식 사이의 현저한 차이점에 대하여 깊이 명상하던 욥은, 이어지는 두 장(29, 30장)에서 또 다른 차이점을 나타내고자 방향을 전환한다. 이 변론은 욥의 과거와 현재의 상황, 곧 그가 번영할 때의 처지와 고통으로 인하여 변모된 처지를 비교하여 제시한다. 29장에서 욥이 자기의 이전 생애를 묘사하는 내용은 그의 품성과 행위에 관한 친구들의 비난을 효과적으로 응수한다.

이전 달²: “좋았던 옛 시절”을 욥보다 더 애타게 갈망한 사람은 없다. 아마도 욥만큼 현재의 처지가 전과 확연히 달라졌거나, 추억을 꼭 간직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보호하시던³: 혹은 “돌보아 주시던.” 이 표현 속에는 과거에 받았던 물질적인 축복을 갈망할 뿐 아니라, 한때 자기에게 아주 가까이 계신 것처럼 보이던 하나님의 돌보심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것 같다. 욥의 외침은 고아된 아이의 울부짖음과 흡사하다.

등불⁴: 참조 욥 18:6; 21:17; 시 18:28. 하나님은 욥에게 빛이 되셨다. 갑자기 그 빛이 사라지면서 그를 어둠 속에서 헤매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빛을 기억하고, 그 빛을 갈망하며 또한 자기가 빛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까지 가져본다. 참조 잠 20:27.

나의 강장하던⁵: 날 (제임스왕역(KJV)에는 “in the days o. my youth”[나의 청년의 날들에]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나의 가을날들에.” 욥은 자기에게 재난이 닥쳤을 당시, 곧 자기가 성숙하고 건장하던 시절을 언급하는 것 같다.

우정⁶: 히브리어 소드(sod). “조언” 또는 “회의”라는 의미로서, 거기에서 친밀한 우정이라는 개념을 얻게 된다. 70인역에는 이 구절이 “하나님이 나의 집을 돌보아 주셨을 때”로 되어 있다. 욥은 하나님을 자기 장막으로 찾아오시는 친구로 보는 것 같은데, 자기가 하나님과 교제를 즐기고 그분의 계획들을 함께 이야기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제 하나님은 자기를 지나쳐 버리신 것처럼 보인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은 이런 고통이 왜 그에게 임했는지 한 마디 설명도 없이 그가 고통받도록 내버려두셨다.

오히려 나와 함께 계셨으며⁷: 욥은 자기가 고통받는 동안 전능하신 분이 더 이상 자기와 함께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참조 6:4; 7:19; 9:17; 10:16).

자녀들⁸: 욥에게 가장 뼈아팠던 두 가지 경험이 이 절에서 대조되는데, 하나님과의 우정이 정말로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과 자녀들을 잃은 것이다. 가장 큰 행복 속에는 가장 큰 슬픔의 가능성이 들어 있다. 가장 큰 축복이 제거되면 가장 큰 허전함이 남는다.

버터⁹: 동방인들 가운데서 버터와 기름은 번영의 상징이었다. 욥은 자기의 종전의 삶을, 우유와 버터가 물처럼 흔하고, 감람나무들이 자라던 바위 많은 땅은 강물 같은 기름을 쏟아내던 때로 묘사한다. 기름은 음식과 조명(照明)에 쓰였고 몸에도 발랐으며 치료 목적에도 사용했기(참조 신 32:13, 14) 때문에 소중하게 보관한 매우 유용한 생필품이다.

성문에¹⁰: 욥은 자기가 이전에 행복했던 세 가지 근본적인 이유를 상기한다. (1) 하나님과의 교제. (2) 자녀들과의 친교. (3) 동료들에게 존경받음. 이 세 가지 경험 가운데 이 장은 마지막 것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다. 성문은 재판을 시행하고 공적(公的) 업무를 행하는 장소였다.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의 지도자인 욥에게 존경을 표했다(참조 느 8:1, 3, 16).

자리¹¹: 재판관이 송사를 듣고 판결을 내리기 위해 앉을 자리엔 미리 의자를 준비하여 가져다 두었다.

소년들¹² 전체적인 내용은 덕과 명예를 가진 사람에게 동방의 예절과 존경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 준다. 젊은이들은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물러가고, 노인들은 경건한 존경심을 가지고 서 있었다. 그들은 욥의 나이보다는 그의 위엄 때문에 존경심을 나타냈다.

방백들¹³: 이 고관들은 감히 욥을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지 못할 만큼 그의 지혜와 인격에 대하여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참조 21:5).

귀¹⁴: 눈은 “나를 보는 자들”을, 귀는 “내 말을 듣는 자들”을 의인화(擬人化)하는 말이다. 이 절은 방백들과 귀인들에 더하여 백성들을 포함한다. 평민들은 그들의 옹호자요 보호자로서 욥에게 환호했으며, 그는 백성들의 진실한 사랑을 의식하면서 만족감을 얻었다.

내가…건졌음이라¹⁵: 이 절은 욥의 친구들의 비난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보여 준다(참조 22:5~10). 구약에서 매우 자주 강조하는 윤리적인 원칙들 가운데 하나는 가난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고 힘없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참조 시 72:12~14; 잠 21:13; 24:11, 12; 사 1:17).

망하게 된 자¹⁷: “망하게 된 자”란 무고(誣告)를 받아 사형을 당할 위험에 처했거나, 가난과 빈곤 때문에 거의 죽게 된 사람을 가리킨다. 임박한 죽음에서 자기를 건져 준 은인에게 나타내는 감사보다 더 열렬하고 진실한 것은 없다.

과부의 마음¹⁸: 욥은, 과부나 고아처럼 힘없는 계층이 동정심을 지닌 너그러운 사람들에게 의존하여 살 수밖에 없는 시절에 살았다. 오늘날 어떤 지역에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의 필요를 채워 주는 “복지 국가”가 당시엔 없었다. 욥과 같은 사람들은 부양받을 곳이 없는 자들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옷을 삼아¹⁹: 의와 공의는 욥의 삶의 일부였고,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그를 인정해 주었던 독특한 특질이었다(사 61:10; 참조 시 109:18, 19).

소경²⁰: 현대 의학이 소개되기 전에는 시각 장애인이 무수히 많았다. 종종 그들은 구걸을 통해 간신히 삶을 이어갔다. 욥은 이 버림받은 자들을 잊지 않았다. 이 표현은 그의 기부금이 적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분명히 그는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와 같은 자선 행위는 당연히 자기가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었을 것이다.

빈궁한 자²¹: 참조 12절. 욥의 증여물(贈與物)들은 그의 동정심과 보조를 같이했다.

생소한 자의 일²²: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소송”이 더 나을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18:21)라고 번역된 구절과 문장 구성이 비슷하다. 욥은 낯선 자들이 공정한 대우를 받았는지 확인하고자 기꺼이 그들을 위해 노력했다.

어금니를 꺾고²³: 이 비유는 사냥에서 따온 것이다. 욥은 악인을 힘없는 먹이를 물고 있는 맹수에 비유한다. 그는 자신을 그 맹수의 어금니를 꺾고 그런 먹이들을 구해내는 자로 묘사한다.

보금자리²⁴: “거처” 또는 “가정”을 가리키는 비유.

모래²⁵: 장수(長壽)의 직유(直喩).

내 뿌리²⁶: 욥은 이전에 자기가 번영하던 상황을 강가에서 자라는 나무에 비기는데, 그 뿌리에 이르는 물과, 잎사귀나 가지에 내리는 이슬에서 영양을 공급받았다(참조 창 27:39; 시 1:3; 133:3; 렘 17:8).

내 활²⁷: 힘의 상징(창 49:24). 욥은 지칠 줄 몰랐으며, 힘과 정력이 샘솟았다.

가르치기²⁸: 7절에서 욥은 재판관으로서 자기의 직무에 관해 말했다. 이제 그는 정치가요 상담자로서 자기 동포 가운데서 차지했던 지위에 대하여 언급한다.

비²⁹: 욥의 조언을 비에 비유한 것은 그 조언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늦은비”는 농작물이 성숙하도록 만들어 주는 봄비를 가리킨다(참조 제4권, 32~34; 신 11:14; 렘 3:3; 5:24; 욜 2:23; 호 6:3).

내가 함소하여³⁰: 옛날의 유대 주석자들은, 이 본문이 욥의 지위를 사람들이 너무도 높이 존경했기 때문에, 그가 자기들과 친근하게 웃을 수 있음을 믿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여겼다. 더욱 그럴 듯한 설명은 욥이 정다운 미소로 낙심한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나의 얼굴 빛³¹: 욥은 그의 미소로써 어쩔 줄 모르고 낙담한 자들을 도울 수 있었으나, 다른 이들의 낙담은 결코 그의 얼굴에 낙심의 그늘을 드리울 수 없었다. 비록 주변 사람들은 낙담했을지라도 그는 기쁨과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영적 자원을 가지고 있었다.

으뜸³² 이 절은 시민으로서, 행정자로서 욥의 가정적인 삶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고위 관리로서 그는 행할 길을 택하고, 불화를 바로잡고, 상좌에 앉았다. 유능한 행정자로서 그는 질서와 기강을 유지하며 군대를 통솔하는 왕처럼 살았다. 한 인간으로서 그는 동료 인간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 위로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욥은 왜 자기의 무죄함을 입증하기 위해 그처럼 열심히 노력했을까? 그는 극악한 범죄와 위선을 행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런 비난은 반박 없이 넘겨 버릴 일이 아니었다. 욥이 과거 의 행복을 상술하는 이유는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자기의 괴로움이 얼마나 큰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2026.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