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4월23일
[시편62-1편]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다윗의 시, 영장으로 여두둔의 법칙을 의지하여 한 노래]
나의 영혼¹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²
나의 구원³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⁴ 저만 나의 반석⁵이시오
나의 구원⁶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⁷
넘어지는 담⁸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⁹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박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¹⁰
저희가 그를
그 높은 위에서 떨어뜨리기만¹¹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셀라¹²)
<노트> 본 시편은 다윗이 자기를 왕위에서 축출하려는 모반자들의 맹열한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동요하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고백한다.
서론: 시 62편은 문체에서는 시 39편과 유사한 점이 많지만 그 주제는 다르다. 이 시는 사람들에게 어떤 시련을 당하더라도 오직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의기양양한 믿음을 고상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그 어법이 매우 고상하다. 이 시는 히브리어 아크(’ak, “참으로”, “오직”, “진실로” 등으로 번역됨)가 여섯 차례에 걸쳐 1, 2, 4, 5, 6, 9절의 첫머리에 사용된 특징이 있다. 1, 2절과 5, 6절은 후렴인데, 이 시에서는 이 후렴이 어떤 사상이 기술된 다음에 위치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앞에 위치해 있다.
나의 영혼¹: “나”를 일컫는 관용어(참조 시 16:10 주석).
잠잠히…바람이여²: 히브리어 두미야(du-miyyah). 이 단어는 동사가 아니라 명사다. 여기서는 “침묵”, “조용한 기다림” 또는 “무언의 기대” 등의 의미로 쓰였다(참조 시 65:1). 시인은 하나님과 더불어 마음의 쉼을 누리고 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 사람에게는 이 같은 평온함이 찾아온다.
((하나님)만: (제임스왕역(KJV)에는 “truly”[참으로]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아크(’ak), “오직” 또는 “진실로”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아크가 붙어 있는 단어나 구(句)는 그로 인해 의미가 훨씬 강해지는데, 이 시에서는 여섯 번에 걸쳐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참조 2, 4, 5, 6, 9절). 1절에서는 아크가 “하나님”을 강조한다. 히브리어에서는 “하나님”으로 번역된 단어가 아크 바로 다음에 놓여 있다. 이 구절은 시인이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크가 바로 뒤에 오는 단어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실례를 시 39:5, 6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는 아크가 여섯 번 나오는 반면, 거기서는 연속되는 세 행의 첫머리마다 나온다(시 39:5, 6에서는 아크가 “진실로”로 번역되었다).)
나의 구원³: 참조, 시 35:3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시 37:39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오직⁴: 히브리어 아크(’ak), “오직”, “진실로.” 이 시에서 이 단어가 두 번째 나온 경우(참조 1절 주석).
반석⁵: 참조 시 18:2; 61:2.
나의 구원⁶: 시인은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1절), 이에 더하여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이라고 말한다.
요동치 아니하리로다⁷: 참조 시 37:24; 미 7:8. 시인이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전혀 요동치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6절과 비교하라. 이 구절은 믿음의 승리를 묘사한다.
넘어지는 담⁸: (제임스왕역(KJV)에는 “bowing wall”[굽은 벽]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즉 기울거나 부풀어 올라 곧 넘어지려고 하는 벽(참조 사 30:13).
사람⁹: 시인이 자기 자신을 일컫고 있음이 분명하다.
너희가 일제히 박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¹⁰: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 단어는 구약에서 단 한 번만 나오는 단어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 단어가 “~을 향하여 외치다”, “공격하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후트(hut)에서 파생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단어가 “쉴 새 없이 말하다” 또는 “심히 책망하여 압도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하타트(hatat)에서 파생되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 둘 중 어떤 경우라도 시인은 여기서 원수들이 저지른 악행들 또는 그를 향해서 한 그들의 말들로 인해서 그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떨어뜨리기)만¹¹: 히브리어 아크(’ak). 세 번째 나온 경우(참조 1절 주석). 원수들은 시인을 넘어뜨리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
셀라¹²: 참조 81쪽. 여기서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매우 적절한 쓰임으로 여겨진다. 앞의 이어지는 기도 사이에는 어떤 유형으로든 간격을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2026.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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