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3월29일
[시편50-1편]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아삽의 시]
<서론>
전능하신 자 하나님¹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² 부르셨도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³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⁴ 잠잠치 아니하시니⁵
그 앞에는 불⁶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⁷를 너의 앞에 모으라⁸ 곧 제사⁹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하늘이 그 공의¹⁰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¹¹(셀라)
<본론1>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¹³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¹⁴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¹⁵이로다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¹⁶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¹⁷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¹⁸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¹⁹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²⁰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²¹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²²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²³
내가 너를 건지리니²⁴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²⁵
<노트> 아삽이 지은 시이다(대상 15:17, 대하 29:30). 이 시편의 주제는 제사 의식과 윤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제사의 근본 정신이 무엇이며, 윤리성이 배제된 의식이나 계명이 어떤 것인지를 생생하게 듣게 된다.
이 시에서는 희생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을 다루고 있다.
서론: 사무엘이 사울에게 했던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라는 유명한 말이 시 50편의 주제로 적절한 듯이 여겨진다. 이 시는 본래 교훈을 주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오늘날에도 그 가치가 매우 큰 시이다. 이 시는 최후의 심판에 적용될 수 있는 심판에 대한 장엄한 묘사를 배경으로 하여(1~6절; 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642) 마음의 신실함과 행위의 순전함은 결여된 채 종교적 의식만을 따라 행하는 경배자들에 대한 책망의 기별을 펼쳐놓는다. 이 시의 본문은 단순한 형식주의적 예배의 악함에 대한 정죄(7~15절)와 위선에 대한 정죄(16~21절) 등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간결한 결론이 이 시의 기별을 요약한다(22, 23절). 이 시의 저자에 관하여는 시대의 소망, 434을 참조하라.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¹: 히브리어 엘 엘로힘 야훼(’El ’Elohim Yahweh). 하나님의 이름들에 대한 훌륭한 조합(참조 제1권, 150~154; 수 22:22).
해 돋는 데서부터. 이 절의 어법은 보편성을 강조하고 있다. 온 세상이 다 부름을 받았다(참조 시 113:3; 사 59:19). 여기에 묘사된 장면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만 그 성취를 볼 수 있는 특별한 장면이다(마 24:30; 각 시대의 대쟁투 300, 642,; 부조와 선지자, 339).
1~6절은 시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보다 긴 장엄한 서론이다.
세상을²: 엄숙한 소송 절차에 대한 증인으로서 모든 민족이 이스라엘의 죄악들을 재판하는 자리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시온에서³: 참조 시 48:2 주석.
임하사⁴: 즉 심판을 위하여. 이 심판의 주된 목적은 이 시의 본문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세상 거민들을 훈계하는 것이다. 이 절은 또한 특정한 의미에서 세상 끝에 있을 심판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참조 1절 주석; 마 25:31; 행 17:31; 딤후 4:1).
잠잠치 아니하시니⁵: 하나님이 사람의 행위를 판결하실 것이다.
불⁶: 이 비유적 표현은 시내산에 하나님이 임재한 모습에서 빌려온 것으로 여겨진다(참조 출 19:16, 18).
나의 성도⁷: 히브리어 하시딤(h.asidim). 참조 시 36편에 대한 추가적 설명. “하나님의 심판의 폭풍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부조와 선지자, 341).
모으라⁸: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 천사들은 구속받은 자들을 모으는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참조 마 24:31).
제사⁹: 히브리어 즈바흐(zebah.). 도살된 짐승을 드리는 제사(창 31:54; 46:1; 레 3:1 등). 고대의 시내산 언약은 황소를 잡아서 그 피를 뿌리는 것으로 비준되었다(출 24:5~8; 참조 창 15:9~18).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비준되었다(히 9:18~23; 부조와 선지자, 371).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 부르심을 받아 모일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비준된 언약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sacrifice”(제사)라는 영어가 어떤 좋은 것을 드린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시 50:5은 때때로 자아부정과 헌금을 장려하는 일에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이 여기서 헌금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본문이 헌물을 호소하는 데 쓰였다면, 그대로 둔다면 그 의미가 자명했을 사실을 용이하게 규정해 주고자 하는 영어의 번역어가 알기 쉬웠어야 했을 것이다.
그 공의¹⁰: 이 본문은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에야 최종적이고도 유일하게 성취될 것이다. “그때에 공중에는 접힌 두 돌비를 쥔 손이 나타난다…거룩한 율법, 곧 하나님의 의는 이제 심판의 표준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난다”(각 시대의 대쟁투, 639).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¹¹: 범죄자들이 무죄로 석방되고 거룩한 순교자들에게 가장 악독한 죄인들이라는 선고가 내려지는 경우들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사람이 하는 재판은 바르지 못한 경우들이 종종 있어 왔다. 그러나 마지막 큰 날에는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 되실 것이기 때문에(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650) 누구나 공의로운 판결을 기대할 수 있다.
셀라¹²: 참조 81쪽.여기서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매우 적절한 쓰임으로 여겨진다. 앞의 이어지는 기도 사이에는 어떤 유형으로든 간격을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들을지어다¹³: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에 말씀한다. 시인은 이 부분에서 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의무와 형식뿐인 종교의 악함을 다루고 있다(참조 사 1:11~15).
증거하리라¹⁴: 심판장은 또한 고소인이기도 하다.
하나님 곧 네 하나님¹⁵: 자기 백성을 보호해 온 하나님은 참예배의 원칙을 선포할 권리가 있다. 그의 정부는 바로 이 원칙을 기초로 하여 세워져 있다.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¹⁶: 논거는 부정적인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종교적 형식과 의식을 태만히 한 것에 대해서는 책망하지 않는다. 그들의 죄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감사와 순종의 정신이 결여된 상태로 그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데 있다(참조 삼상 15:22; 사 1:12~17; 미 6:6~8). 이 절과 이어지는 절들에 언급된 공적인 제사들과 개인 제사들에 관해서는 제2권, 128~139을 참조하라.
수소¹⁷: 참조 출 29:11, 36; 레 4:4.
내 것이며¹⁸: 모든 피조물이 다 하나님의 소유인데 그가 지음받은 사람으로부터 예물을 받으실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가령 주려도¹⁹: 하나님은 수소의 고기와 염소의 피에서 그에게 필요한 음식을 공급받기 위하여 제사 제도를 제정한 것이 아니다.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다 내 것임이로다²⁰: 참조 시 24:1; 89:11.
제사를 드리며²¹: 히브리어 즈바흐(zebah.), “제사”(참조 5절 주석).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제사”라는 용어를 동물의 제사에만 적용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동물만 드리는 제사는 받지 않았다. 그분은 이 제사가 충만한 감사의 마음으로 드려질 때에만 받았다. 논거가 긍정적인 어투로 바뀌어서 계속 이어진다.
서원²²: 참조 시 22:25; 116:14; 레 7:16. 하나님께는 오직 회개와 사랑과 감사와 순종과 헌신이 충만한 삶만이 가납될 수 있다.
나를 부르라²³: 탄원은 찬양처럼 참종교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불러야만 한다. 하나님께 대한 경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만 한다(참조 요 4:24).
너를 건지리니²⁴: 참조 시 46:1.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²⁵: 하나님이 우리를 취급하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서조차 우리는 그를 신뢰하여야 한다. 그를 영화롭게 하는 데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다.
2026.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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