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3월24일
[시편48편] 시온을 찬양하라
[고라 자손의 시 곧 노래]
여호와는 광대하시니¹
우리 하나님의 성²,
거룩한 산³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터⁴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⁵
큰 왕의 성⁶ 곧 북방⁷에 있는 시온산이 그러하도다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셨도다
열왕이 모여⁸ 함께 지났음이여
저희가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갔도다⁹
거기서 떨림이 저희를 잡으니, 고통이 해산 하는¹⁰ 여인 같도다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¹¹를 깨뜨리시도다
우리가 들은 대로¹² 만군의 여호와¹³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¹⁴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영히¹⁵ 견고케 하시리로다¹⁷(셀라¹⁸)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¹⁹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²⁰을 생각하였나이다²¹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²²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나이다
주의 판단을 인하여 시온 산²³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²⁴은 즐거워할지어다
너희는 시온을 편답하고 그것을 순행하며²⁵
그 망대들을 계수하라²⁶
그 성벽을 자세히 보고²⁷
그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²⁸
이 하나님은²⁹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³⁰ 인도하시리로다
<노트>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 곧 시온에 대한 찬가이다. 여기에서 시온은 물론 예루살렘을 가리키지만, 시온이 가지는 의미는 모든 믿는 자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의 통치에 따르는 이상 세계를 포함한다고 보아야 한다. 시온에 대한 찬가도 문에 보이는 도성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정의와 사랑으로 그들을 다스리고 보호한다는 사실을 찬양한 것이다.
서론: 시 46편과 47편처럼 시 48편도 성전 예배에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구원의 노래이다. 이 시는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돌보고 원수의 손에서 그의 백성을 건져냄을 송축하는 시이다. 시 48편은 다윗이 지은(참조 선지자와 왕, 203) 기쁨에 넘치는 시들 중 하나이다. 이 시는 여호사밧의 군대가 빛나는 승리를 거둔 후 노래한 시이다(참조 선지자와 왕, 201~203).
광대하시니¹: 다윗은 자신을 큰 위험에서 건져내는 자로 드러낸 여호와께 드높은 찬양으로 이 시를 시작한다(4~8절).
성²: 예루살렘(참조 시 46:4; 48:8).
산³: 시온산(참조 시 48:2 주석; 시 2:6; 68:16).
터⁴: “높이”가 더 적절한 번역이다. 그 고도가 주변 지역보다 더 높은 것이 예루살렘의 지형적 특성들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일 것이다. 도성은 그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등성이들 중 하나에 세워져 있다. 고도가 높기 때문에 침략자들이 도성을 공격하는 데 두려워했던 것으로 여겨진다(참조 4, 5절).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⁵: 시인은 애국적 견지에서 그 나라의 수도를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다(참조 시 50:2; 애 2:15).
큰 왕의 성⁶: 참조 시 46:4.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칭호로서 이 구절을 인용한 적이 있다(마 5:35).
북방⁷: 다음의 설명이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럴지라도 이 표현의 정확한 의미를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래는 시온산이 여부스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도성의 일부만을 일컫는 호칭이었다(참조 대하 5:2; 삼하 5:7). 모리아산은 시온산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바로 이 산 위에 나중에 솔로몬의 성전과 그의 궁전이 세워졌다(대하 3:1; 참조 왕상 8:1). 지리적으로는 시온산과 모리아산은 하나의 산등성이를 이루고 있는데,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진 후에 이 산등성이 전체가 시온산으로 일컬어지기 시작하였다(참조 사 8:18; 욜 3:17). 솔로몬의 때로부터 그 산등성이의 북쪽 지역에 성소와 궁전이 위치한 것 때문에 북쪽 구역이 그 도성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따라서 시인은 여기서 “북방”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비유적으로는 행정과 종교의 중심지를,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이 시의 문맥처럼 하나님이 거하는 장소를 나타내고자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 해석은 루시퍼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기를 열망하고 있는 사 14:13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 같은 자리에 가서 앉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회의에 참석하여 함께 의논하며, 하나님의 결의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바로 이것이 루시퍼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야망이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37).
시 48편의 저자가 다윗인 것을 고려해 볼 때(참조 시 48편 서론) 그가 북쪽에 있는 모리아산에 어떤 중요성을 부여한 것은 장래에 대한 예언적 안목에서 한 것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시는 다윗이 그 위치를 포함한 성전 건축에 대한 모든 상세한 계획들이 완전히 수립된 후에 지은 것이다(대하 3:1).
모여⁸ 4~6절에는 적군의 진군과 갑작스런 파멸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 표현이 고도로 압축되어 있다. 4절과 5절 사이에 연결사가 없는 것이 그 설명의 효과를 더욱 높여 준다(참조 시 46:6 주석).
빨리 갔도다⁹: 적들은 난공불락의 도성을 보고 함락시킬 수 없음을 깨달은 후, 자신들의 안전이 위태롭다는 것을 인식하고는 황급히 달아나 버렸다.
해산¹⁰: 이 비유는 구약에서 가장 혹심한 고통을 나타내는 데 자주 쓰인다(참조 렘 4:31; 6:24; 미 4:9, 10).
다시스의 배¹¹: 적들을 혼란케 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는 두 번째 비유. 다시스는 일반적으로 스페인 남부의 카디스(Cadiz)의 북쪽에 위치한 옛 타르텟수스(Tartessus)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다시스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의미했을 가능성도 있다. 예전에는 “다시스의 배”가 타르텟수스까지 항해할 수 있는 배를 의미하였지만 지금은 “정련 장치를 갖춘 배”(참조 왕상 10:22 주석)를 의미한다. 폭풍이 이러한 배들을 난파시켰던 것처럼 하나님도 원수를 일소해 버렸다.
우리가 들은 대로¹²: 우리 조상들이 과거에 하나님이 행한 놀라운 구원의 사역들을 우리에게 말해 주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직접 눈으로 그것들을 보았나이다.
만군의 여호와¹³: 참조 시 24:10 주석.
우리 하나님의 성¹⁴: 참조 1절 주석; 시 46:4.
영영히¹⁵: 참조 선지자와 왕 46, 564,; 시대의 소망, 577.
견고케 하시리로다¹⁶: 현재의 구원은 미래의 승리를 보증한다.
셀라¹⁸: 참조 81쪽여기서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매우 적절한 쓰임으로 여겨진다. 앞의 이어지는 기도 사이에는 어떤 유형으로든 간격을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주의 전¹⁹: 참조 시 5:7 주석. 하나님의 집을 자주 방문하면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께로 향한다.
인자하심²⁰: 히브리어 헤세드(h.esed), “거룩한 사랑”(참조 시 36:7 주석).
생각하였나이다²¹: 문자적으로 “비교하였나이다.”
주의 이름²²: 하나님의 이름이 땅 끝까지 알려진 것처럼 그에게 드리는 찬양도 땅 끝까지 울려 퍼져야만 한다.
시온산²³: 참조 2절 주석.
유다의 딸들²⁴: 아마도 여기서는 유다의 성읍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듯하다(참조 수 15:45).
그것을 순행하며²⁵: 하나님이 놀라운 능력을 행사해 원수들로부터 보호한 그 도성을 잘 살펴보고 칭송할 목적으로.
계수하라²⁶: (제임스왕역(KJV)에는 “tell”[tell이 고어에서는 “세다” 또는 “계산하다”라는 의미를 지녔다]로 되어 있음-역자 주). 또는 “세어 보라.” “tell”은 지금도 “돈을 세다”(to tell money), “표를 세다”(to tell ballots) 등과 같은 구절에서는 “세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참조 시 22:17; 147:4).
[너는] 자세히 보고²⁷: 문자적으로 “~에 너의 마음을 두고.” 이는 곧 “자세히 관찰하라”는 의미이다.
전하라²⁸: 하나님께 온 우주의 통치권이 있다는 증거로서 그것을 잘 설명하라. 다윗은 예루살렘에 대한 자긍심을 나타내 보이면서 그 도성의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기인된 것으로 여긴다.
이 하나님²⁹: 그 도성 안에 거처를 정하시고 원수들에게서 도성을 보호하신 바로 그 하나님.
죽을 때까지³⁰: 하나님은 우리의 평생을 통해 인도자이며, 끝까지 우리와 동행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확신을 갖는다면 그는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목자가 자기의 양떼를 영원에 이르도록 인도해 줄 것이다(참조 시 23:6).
“죽을 때까지”가 히브리어 알-무트(‘al-mut)에 대한 올바른 번역인지 약간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단어는 음악 용어일 가능성도 있다(참조 뭇랍벤[Muth-labben], 시 9편 서론; 77, 78쪽). 70인역에는 “영원히”로 되어 있다.
2026.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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