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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는 욥

노파 2026. 3. 9. 00:02

 

욥-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는 욥

장지원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¹

내가 진실로 그 일이 그런 줄²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³

사람이 하나님과 쟁변하려 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⁴ 대답하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스스로 강퍅히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⁵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⁶ 옮기실지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그가 땅을 움직여⁷ 그 자리에서 미신즉 그 기둥이 흔들리며⁸

그가 해를 명하여⁹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봉하시며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¹⁰ 바다 물결¹¹을 밟으시며

북두성¹²과 삼성¹³과 묘성¹⁴과 남방의 밀실¹⁵을 만드셨으며

측량할 수 없는 큰 일¹⁶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¹⁷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¹⁸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¹⁹ 무엇을 하시나이까 누가 물을 수 있으랴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²⁰이 그 아래 굴복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겠으며²¹ 무슨 말을 택하여 더불어 변론하랴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²²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하였을 뿐이며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²³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그가 폭풍으로 나를 꺾으시고²⁴ 까닭 없이²⁵ 내 상처를 많게 하시며

나로 숨을 쉬지 못하게 하시며²⁶

괴로움으로 내게 채우시는구나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²⁷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호출하겠느냐²⁸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²⁹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순전할지라도 나의 패괴함을 증거하리라

나는 순전하다마는³⁰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일이 다 일반이라³¹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³²

하나님이 순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³³ 하나니

홀연히 재앙³⁴이 내려 도륙될 때에 무죄한 자의 고난을 그가 비웃으시리라³⁵

세상이 악인의 손에 붙이웠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리워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이뇨³⁶

 

<노트> 구약성서 욥기 9장 1-24절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결코 의로울 수 없다는 엘리바스의 주장에 대해, 욥은 ‘소송을 걸다’란 법정 용어를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사람의 의와 무죄가 밝혀질 수 있음을 주장한다. 또한 두 번째 질문자인 빌닷은, 전능자는 결코 공의를 굽게 하시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욥은 자기 개인의 삶을 보나 세상을 보나 하나님의 공의는 굽혀질 경우가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욥은 두 친구들의 주장을 연결시켜 도덕, 종교문제들이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 해결 되기를 희망한다.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¹: 9장과 10장은, 욥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것에 대비되는 자기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세 번째 발언을 기록한다. 그 다음에 그는 자기가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또다시 우울한 불평을 시작한다.

그 일이 그런 줄²: 욥은 빌닷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한다.

인생이 어찌…의로우랴³: 욥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인정했으나 그것은 그에게 문제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 인간인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로울 수 있는가를 알기 원한다. 그의 환경은 그의 죄 됨을 입증하려 하지만, 그의 양심은 자기의 무죄함을 증거한다. 욥의 질문은 오직 구원의 계획의 계시 안에서만 완전히 해명되었다. 그 계획을 제공함으로써 하나님은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고, 자기도 의로우실 수 있다(롬 3:26).

천 마디에 한 마디도⁴: 사람은 하나님과 같을 수 없다. 인간은 그분의 질문이나 책임 추궁에 답변할 수 없다.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⁵: 히브리어 샬람(s∨a-lam), “온전하고, 건전하고, 안전하다.” 샬람은 또한 “~에게 항복하다”는 추가적인 개념을 가진 아랍어 어근과 관련되어 있다.

산을 무너뜨리시며⁶: 인간은 엄청난 크기와 안정감의 상징으로 산들을 바라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옮기거나 뒤집어 버릴 수 있으시다.

땅을 움직여⁷: 의심할 여지없이 지진에 대한 언급이다(왕상 19:11. 참조 시 104:32; 슥 14:4, 5; 마 24:7).

그 기둥이 흔들리며⁸: 지진을 시적으로 묘사했다. “기둥”에 대한 문자적인 설명을 찾을 필요는 없다.

해를 명하여⁹: 하나님은 천연계를 절대적으로 다스리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성경은 종종 천연계의 현상들을 하나님의 능력의 현시로 언급한다(참조 출 10:21; 겔 32:7; 욜 2:31; 마 24:29; 계 6:12; 16:10).

하늘을 펴시며¹⁰: 참조 시 104:2; 사 40:22; 렘 10:12. 이것은 그분의 솜씨에 주의를 이끎으로써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극찬하는 내용이다.

바다 물결¹¹: 문자적으로 “바다의 높음들.” 하나님은 도도한 파도의 위력을 평정하실 수 있는 능력자로 묘사된다.

북두성¹²: 히브리어 아쉬(‘as∨ 또는 아이쉬[‘ayis∨], 참조 38:32).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이 별자리가 큰곰자리(Ursa Major)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참조 38:32 주석).

삼성¹³: 히브리어 크실(kesil), 문자적으로 “바보.” 하지만 이 별자리의 이름이 “바보”로 정의되는 단어와 같은 어근에서 유래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여기의 크실이 오리온 성좌를 뜻한다는 데 전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한다(참조 38:31 주석).

묘성¹⁴: 히브리어 키마(kimah). 어떤 이들은 아쉬(‘as∨)를 묘성으로 해석하고, 키마는 천랑성(天狼星)처럼 빛나는 어떤 다른 별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70인역에는 세 가지 히브리 용어가 “묘성(昴星), 금성(金星), 대각성(大角星)”으로 되어 있다(참조 38:31 주석).

남방의 밀실¹⁵: 남쪽 하늘에 있는 이름 모를 별자리이거나, 남쪽 지평선 저편의 광대한 공간을 가리키는 것 같다.

큰 일¹⁶: 이 절은 엘리바스가 말한 5:9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창조의 기사(奇事)들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타남을 보는 반면, 욥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만을 보는 것 같다. 이런 말은 고대의 신앙심 있는 자들이 흔히 표현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보지 못하며: 예리한 선(線)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나누고 있는데, 이 선은 거의 교차되지 않는다. 욥은 성령의 임하심을 신체적으로 의식했었다는 엘리바스의 주장(4:15, 16)을 숙고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영계(靈界)가 그를 지나쳐 버리고, 아무런 빛과 계몽과 기적적인 지시도 영계로부터 받지 못한다고 단언하고 있다.)

나아가시나¹⁷: 히브리어 할라프(h.alap). 엘리바스가 자기에게 영이 임함에 대하여 말할 때에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단어이다(4:15).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¹⁸: 엘리바스는 자기가 영이 임하심에 대한 생생한 인식을 가졌고(4:15, 16), 그 음성을 들었다고 말했다(4:16~21). 욥은 여기서 자기는 그런 은총을 받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누가 막을 수 있으며¹⁹: 참조 11:10; 23:13. 재난들이 욥을 강타했을 때 그의 반응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였다. 이것은 신뢰의 반응이었다. 시간의 흐름과 끊임없는 고통의 충격은 욥의 심령을 약화시켰다. 신뢰는 무력감으로 대체되었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인정하는 대신에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본다. 종종 갑작스런 비극은 지속적이고도 단조로운 고통처럼 사람의 심령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라합을 돕는 자들²⁰: 히브리어 오즈레 라하브(‘ozre rahab). 라합은 26:12에도 나오는데, 거기서도 “라합”으로 번역되었으며 사 51:9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나온다. 어떤 이들은 라합이 커다란 악의 세력을 일컫는 고대의 호칭이었다고 믿는다. 만일 그렇다면, 욥은 여기에서 하나님은 인간뿐 아니라 사람보다 훨씬 강한 라합과 그의 조력자들과 같은 존재들도 지배하신다고 말하는 것 같다. 라합은 교만을 뜻하기 때문에 루시퍼(Luci. er)의 호칭으로 적당할 것이며, “돕는 자들”은 루시퍼의 추종자들에 대한 호칭일 것이다(참조 사 14:12~14; 계 12:7~9). 그러나 욥의 발언은, 그가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 벌어지는 대쟁투에 관하여 한정된 지식만을 지니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감히 대답하겠으며²¹: 14~16절은 법정 용어임을 암시해 준다. 욥은 자기가 성공적으로 변호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²²: 욥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한다. 비록 그가 자기의 무죄함을 확신하기는 하지만 자기를 재판할 분에게 나아가면서 여전히 자비를 구한다.

부르므로²³: 히브리어 카라(qara’). 여기서는 분명히 “법적인 의미에서 호출하다”라는 뜻이다. 욥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만일 내가 하나님께 논쟁을 하자고 도전했고, 그분이 그것을 허락하여 그분의 법정에서 나의 주장을 펴도록 명하셨다 하더라도, 그분이 진정 그렇게 하시려고 했는지 그리고 내가 담대히 그분 앞에 서서 그분 하시는 일에 마음대로 항변하도록 허락할지 알 수 없다”라는 뜻이다. 욥은 하나님이 그렇게까지 자신을 낮추시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

나를 꺾으시고²⁴: 17~21절에서 욥은, 만일 자기가 하나님에게 도전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자기 도전에 어떻게 응답하실지를 상상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는 하나님을 법 조항에 따라 문제들을 결정하는 재판장이라기보다는, 주권자로서 당신 임의로 결정하실 분이라고 묘사한다. 욥은 최고의 주권이란 지고한 사랑이나 정직과 조화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까닭 없이²⁵: 히브리어 힌남(h.innam). 이 말은 2:3과 1:9에서도 똑같이 “까닭 없이”로 번역되었다. 욥은 사단의 분명한 역사(役事)와 계획을 하나님의 일로 돌린다(2:3). 참조 시 38:3; 39:9 주석.

나로 숨을 쉬지 못하게 하시며²⁶: 하나님의 심판은 너무나도 지속적이고 부단한 것이어서 욥은 “숨도 쉴 수” 없다고 표현한다.

그가 강하시고²⁷: 욥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능력에 대한 욥의 감각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그의 인식보다 훨씬 발달되었다.

누가 그를 호출하겠느냐²⁸: 70인역에는 “그렇다면 누가 그분의 심판에 항의하겠는가”라고 되어 있다.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²⁹: 만일 이 말을 제대로 적용한다면 이 문장은 사실이다(참조 고전 4:4). 그러나 욥은 전혀 다른 면에서 그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우주의 통치자의 뜻에 위배될 경우 피조물에겐 변백할 기회가 없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나는 순전하다마는³⁰: 문자적으로 “나는 온전하다. 나는 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 나는 나의 삶을 증오한다.” 이 내용은, 욥이 자기의 무죄함을 주장했지만 자기 자신과 자기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고, 번민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자기의 생명을 멸시하게 되었다는 의미인 것 같다.

일반이라³¹: 또는 “하나의 문제라.” 즉 하나님 보시기엔 모두 같다는 뜻이다. 의로운 자의 경우나 악한 자의 경우 사이에 차이가 없다.

나는 말하기를³²: 욥은 대담한 주장을 하려고 한다.

멸망시키신다³³: 욥은 한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취급 방식을 근거로 그 사람의 성품에 대하여 확실하게 논란할 수 것이 없다는 데에 수긍한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이 함께 휩쓸려가도록 허용하신다.

재앙³⁴: 욥은 전쟁이나 전염병 또는 흑사병을 가리키는 것 같다. 만일 이런 것이 사람들에게 내리면, 그것은 아무나 구별 없이 죽인다. 그런 경우 하나님께서 항상 의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개입하시는 것은 아니다.

비웃으시리라³⁵: 또는 “조롱하시리라”, “조소하시리라.” 어떤 이들은 이것이 수사학적인 진술이라는 근거로 대담하고, 불손하고, 신랄한 이 말을 옹호하려고 노력했으나, 그런 옹호는 부적합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나중에 “티끌과 재 가운데서”(42:6) 회개한 것은 분명히 이런 진술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가 아니시면 누구이뇨³⁶: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이겠는가?” 이 구절 속에서 욥은 어쩌면 그의 어떤 발언보다도 가장 깊은 실망과 가장 어두운 불신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는 확립된 인간 사회의 상황은 하나님께 그 책임이 있으며, 책임질 다른 존재는 없다고 주장한다.

 

202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