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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고통에서의 절규

노파 2026. 3. 5. 00:02

 

욥-고통에서의 절규

장지원

 

 

사람이 무엇이관대¹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²여

내가 범죄하였은들³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녁⁴을 삼으셔서⁵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⁶ 하셨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⁷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노트> 구약성서 욥기 7장 17-21절은, 욥이 하나님의 끝없는 압박에서 놓여나기 위해 외치는 절규의 소리는,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셔서 그를 악에서 구원해 달라는 전형적인 탄원이 아니다. 오히려 욥은 하나님이 자기를 조금이라도 동정하고 있다면, 이 보잘것없는 인간 피조물을 풀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무엇이관대¹: 시편 기자도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칭송하는 내용 가운데서 유사한 단어들을 사용한다(시 8:3~8). 욥은 자기의 고통 중에서, 쉼 없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반갑지 않은 간섭이라고 왜곡한다. 사실상 욥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왜 당신은 시험과 시련으로 인간을 괴롭게 하십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보세요. 나에게 ‘내 침이라도 삼킬’ 시간을 주십시오”(욥 7:19).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욥이 무엄한 선언을 한다고 그를 내려치시지는 않았다.

감찰하시는 자²: 또는 “감시하시는 자.” 여기서는 선의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 내용은 “내가 범죄하였은들 인간들을 감찰하시는 당신에게 무슨 차이를 가져다 줍니까?”라는 뜻이다.

내가 범죄하였은들³: 자백이 아니라 “비록 내가 죄를 지었다 한들” 또는 “내가 죄를 지었다 합시다”라는 투의 의도된 대꾸일 것이다.

과녁⁴: 히브리어 미프가(mipga‘). 타격을 가해야 할 어떤 것. 어떤 이들은 이 단어를 “과녁”으로 해석한다. 다른 이들은 “걸림돌” 혹은 “장애물”의 개념으로 본다.

(과녁을) 삼으셔서⁵: (제임스왕역(KJV)에는 이 구절에 “당신에 대하여”[against thee]라는 말이 포함돼 있음-역자 주). 즉 욥은 자신을 하나님이 치려는 대상으로 생각했다.

스스로 무거운 짐이⁶: 70인역에는 “당신에게 짐이”라고 되어 있다. 유대 전승은 이것이 본래 의미였으나, 그것이 불경스럽게 보였기 때문에 서기관들이 수정했다고 주장한다.

사하여 주지⁷: 욥은 자기가 단시간 내에 “흙에 누우리니”, 즉 죽을 것이므로 하나님이 자기를 용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느낀다. 생명이 거의 다 소진한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 하나님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만일 용서가 속히 이르지 않으면 너무 늦게 될 것이다.

20절과 21절은 욥이 하나님께 한 말이 아니라 엘리바스에게 한 것이라고 믿는 자들도 있다. 그런 견해에 따르면, 욥은 엘리바스에게 다음과 같이 강변했다. “그대는 나를 틀림없는 죄인이라고 단정하는구나. 인간들을 정탐하는 그대여! 나는 그대에게 범죄하지 않았노라. 왜 그대는 나를 과녁으로 삼아 쏘아대는가? 내가 그대에게 짐 된 것이 무엇인가? 왜 나의 범죄를 간과하고 나의 잘못을 지나쳐 버리지 못하는가? 내일이면 나를 찾아도 없게 될 것이네!” 이러한 해석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발언 상대를 바꾸었다는 것이 본문 가운데서는 분명치 않다.

6장과 7장에 기록된 욥의 발언은 몇 가지 위험을 드러낸다. (1) 삶의 헛됨을 과다하게 강조하는 위험.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이 엄청난 가치를 지녔음을 기억해야 한다. (2) 억제되지 않은 감정 표현의 위험. 욥이 자기 억제를 버렸을 때 그는 비통함 가운데 불평했고, 불손하게 질문했고, 성급하게 비난했으며, 조급하게 간청했다. (3) 슬픔으로 눈이 멀고 격정으로 흥분되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취급 방식을 오해하는 인간 마음의 성향. (4) 선한 사람들도 본성이 드러나는 일이 생길 때까지는 그들 속에 거듭나지 못한 여러 가지 옛 성정을 의심받지 않은 채 간직할 수 있다는 확신. 누구도 욥이 격정을 분출할 것이라고 거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20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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