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심

[시편41-2편] 내가 주께 범죄 하였사오니

노파 2026. 3. 14. 00:01

 

2026년3월14일 안식일

[시편41-2편] 내가 주께 범죄 하였사오니

 

 

내가 말하기를¹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²

내 영혼을³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저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 이름이 언제나 멸망할꼬⁴ 하며

나를 보러 와서는⁵ 거짓을 말하고⁶

그 중심에 간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광포하오며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⁷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⁸

이르기를 악한 병⁹이 저에게 들었으니

이제 저가 눕고¹⁰

다시 일지 못하리라 하오며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¹¹ 나의 가까운 친구¹²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¹³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일으키사¹⁴

나로 저희에게 보복하게 하소서¹⁵

나의 원수가 승리치 못하므로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¹⁶

주께서 나를¹⁷

나의 완전¹⁸한 중에 붙드시고 영영히¹⁹ 주의 앞에 세우시나이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지로다²⁰ 아멘²¹ 아멘

 

<노트> 의인은 자신의 질병으로 인해 과거에 경험한 고난을 고백한다.

마지막 부분은 본 시편의 결론이 아니라 1-41편의 결론이다.

내가 말하기를¹: 히브리어에서 대명사 “나”가 문두에 위치한 것은 이 문장에서 이 단어가 강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인은 지금 자신이 아플 때 한 말들을 회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를 근거로 탄원한다.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²: 시인은 병을 자신이 지은 죄의 직접적인 결과와 형벌로 여긴다(참조 시 38:3 주석).

내 영혼을³: 히브리어 네페쉬(nepes∨), 단순히 “나를”(참조 시 16:10 주석). 육체적 질병 이외에도 다른 어떤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는 용어는 아니다.

그 이름이 언제나 멸망할꼬⁴: 그의 대적들은 그가 곧 죽을 것과 그에 대한 모든 기억이 다 사라질 것을 예상하면서 흡족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보러 와서는⁵: 원수들 중 하나에 관한 언급이다. 그가 만일 환자를 방문하면 위선적인 말들을 늘어놓고, 환자에게 나쁜 짓을 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며, 병실을 나와서는 중상모략적인 말들을 퍼뜨린다. 이것은 실상은 가장 사악한 원수이면서 겉으론 친구인 체하는 사람에 대한 생생한 묘사이다.

거짓을 말하고⁶: 곧 “헛된 것을 말하고.” 그의 호의는 모두 다 겉치레에 불과하다.

다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⁷: 6절의 묘사가 계속되고 있다. 그 위선적인 방문객이 환자의 다른 원수들과 연합하여 환자의 비참한 상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최악의 상태로 빠지기를 소망한다.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⁸: 8절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있다. 거짓 소문을 내는 일과 위선적 행위가 어느 정도까지 이를 것인가! 욥기에서 욥의 친구들은 실제로 그를 가장 사악한 죄를 범한 죄인이라고 비난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참조 욥 22:5~10 등).

악한 병⁹: 문자적으로 “벨리알(Belial)의 것” 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참조 삿 19:2; 시 18:4 주석). 도덕적 측면에서의 악을 일컫고 있는 듯하다.

눕고¹⁰: 원수들은 이제 그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그에 관해서 아무 말이나 막 해댄다. 그들은 그의 병을 그가 무서운 죄악을 범한 죄인임을 보여 주는 증거로 여긴다. 바로 이 일이 시인의 고통을 한층 가중시킨다.

내 떡을 먹던¹¹: 여기에 언급된 행동은 매우 수치스러운 행동이다(참조 삼하 9:10~13; 왕상 18:19). 이 구절은 유다에게 적용되었다(참조 요 13:18). 이 시의 일부분은 더욱 명백한 당시 상황에서의 한정적 적용 외에 또 다른 적용도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이 이 시 전체가 본래 예언적 성격을 지닌 시로 쓰였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고대의 저술들에 대한 최선의 해석은 우선 그것들을 당시의 역사적 배경 안에서 해석하고, 그 다음에 후에 영감받은 저자들이 그중 장차 일어날 사건들에 적용시킨 부분들에 한정해서만 추가적 적용을 하는 것이다(참조 신 18:15 주석).

나의 가까운 친구¹²: 문자적으로 “나의 평화의 사람.” 이 시를 압살롬의 반역을 배경으로 다윗이 쓴 시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절을 아히도벨에게 적용시킨다(삼하 15:31; 참조 시 55:12 주석).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¹³: 어떤 사람들은 이 비유적 표현을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을 차는 말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이것을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는 의미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예수께서 3년 동안이나 은총을 베푼 가룟 유다가 바로 이 같은 비열한 배은망덕을 저질렀다.

나를…일으키사¹⁴: 원수들의 소망과는 정반대로 나의 병상에서부터(참조 8절).

저희에게 보복하게 하소서¹⁵: 보복심으로 보이는 것에 관한 설명은 75쪽을 참조하라.

내가 아나이다¹⁶: 참조 시 20:6. 시인은 고통의 참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과 마찬가지로(참조 4절; 시 38:3 주석) 번영이나 건강도 하늘이 베푸는 특별한 은총의 표로 잘못 생각하였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이러한 복들을 내려주는 것은 사실이다(참조 약 1:17). 하지만 이 복들은 의인과 악인 구분 없이 모두에게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마 5:45) 하늘이 주는 이 같은 선물들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이 그 사람을 가납하셨음을 증거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 이 사실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음이 시 73편에 나오는 일련의 기술들에서도 발견된다.

우리는 자신이 시련을 겪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여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책은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삼는 삶과 성령의 확실한 증언이다(롬 8:16; 히 4:12).

나를(and as for me)¹⁷: 문자적으로 “그리고 나.” 이 문장은 마감이 되지 않은 문장이다. 혹은 다른 문법 형태로 완성된 문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시인은 1인칭으로 시작한 후, 돌연히 자기를 붙들고 있는 하나님께로 주의를 돌린다.

완전¹⁸: (제임스왕역(KJV)에는 “intergrity”[고결함]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완성이라는 측면에서의 “완전.” 이 절은 시인이 자신의 병에서 회복되고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영영히¹⁹: 이 생각은 그의 임박한 죽음에 대한 원수들의 소망(5절)과는 정반대이다.

여호와…하나님을…찬송할지로다²⁰: 시편 제1권을 마감하는 송영(참조 77쪽). 하지만 이 송영은 또한 2절의 말씀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송영이기도 하다. 시편 각 권을 끝맺는 다른 송영들을 참조하라.

아멘²¹: 히브리어 아멘(’amen), “확실히.” 엄숙히 단언할 때 쓰이는 용어. 여기서는 반복을 통하여 그 중요성이 이중으로 강조되고 있다. 이 반복은 또한 이 시가 공중 예배에서 사용될 때 회중이 이에 응답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2026.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