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심

[시편39-3편]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노파 2026. 3. 10. 00:01

 

2026년3월10일

[시편39-3편]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¹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나를 모든 죄과에서² 건지시며

우매한 자³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내가 잠잠하고⁴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⁵

주의 징책⁶을 나에게서 옮기소서⁷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주께서 죄악을 견책하사⁸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 먹음 같이⁹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각 사람은 허사뿐이니이다(셀라¹⁰)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¹¹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¹²이 되고 거류자¹³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¹⁴

주는 나를 용서하사¹⁵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¹⁶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¹⁷

 

<노트> 시인은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오늘을 견디어 나간다. 그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다.

[그러하니]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¹: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하다가 돌연히 사람의 소망의 근원이신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방향이 전환된다. 이것이 이 애가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한 줄기 빛이다.

나를 모든 죄과에서²: 시인은 용서가 자신을 번뇌에서 해방시켜 줄 것임을 믿고 있는데, 이는 그가 자신의 번뇌를 죄의 결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매한 자³: 히브리어 나발(nabal). 흔히 “바보” 또는 “어리석은 자”로 번역됨(삼하 3:33; 시 14:1; 53:1 등). 시인은 하나님의 명예가 실추될까봐 크게 걱정하고 있다. 그는 만일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자신을 조롱할 것이며,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관심이 없으심을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로 인해 기뻐하게 될 것으로 믿고 있다.

잠잠하고⁴: 참조 2절.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⁵: 시인은 하나님의 뜻에 맹목적으로 복종하여 그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하였다. 많은 사람이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한다. 그들은 스스로 만일 하나님이 형벌을 내리신다면 그 형벌은 분명 정당하고 선한 것이라고 믿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시인처럼 고통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참조 시 38:3 주석). 그들은 사단은 질병과 고난의 창시자이며 하나님은 원수의 책략을 고통당하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록 역이용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참조 시대의 소망, 471). 오히려 그들은 질병과 죽음을 하나님께서 독단적으로 범죄한 자들에게 내리시는 형벌로 여긴다.

징책⁶: 히브리어 네가(nega‘). 참조 38:11 주석.

옮기소서⁷: 원수의 공격이 자신에게서 옮겨지도록 기도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참조 고후 12:8). 하지만 탄원자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해야만 한다(참조 눅 22:42). 오직 하나님만이 홀로 대쟁투와 관련된 모든 쟁점에 비추어 그 문제를 판단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시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만일 그 공격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바울처럼 우리도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라고 말해야만 한다.

견책하사⁸: 참조 시 38:3 주석.

좀먹음같이⁹: 참조 사 51:8; 호 5:12.

셀라¹⁰: 참조 81쪽. 여기서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매우 적절한 쓰임으로 여겨진다. 앞의 이어지는 기도 사이에는 어떤 유형으로든 간격을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내가 눈물 흘릴 때에¹¹: 12, 13절은 시인의 마지막 탄원이다.

객¹²: 참조 창 15:13; 출 2:22.

거류자¹³: 히브리어 토샤브(tos∨ab), “어떤 나라에 일시적으로 체류하지만 그 나라의 국민은 아닌 사람”(참조 대상 29:15).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¹⁴: 참조 창 47:9; 히 11:13~15.

용서하사¹⁵: 문자적으로 “주의 시선을 내게서 돌리소서.” 나를 계속해서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나님께 자신을 바라보고 도와달라고 하는 일반적인 기도와는 달리, 시인은 지금 그분께 자신에게서 시선을 옮겨달라고 기도한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징계의 눈초리로 생각하고 있다.

없어지기 전에¹⁶: 참조 시 6:5; 욥 14:1~12. 이 시는 시종일관 거의 중단됨 없이 애가로서의 특성을 견지하면서(참조 7절) 깊은 슬픔의 음조로 끝을 맺는다.

건강을 회복시키소서¹⁷: 문자적으로 “환하게 하소서.”

 

2026.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