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2월27일
[시편36-1편] 저는 그 침상에서 악을 꾀하며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악인의 죄얼이 내 마음¹에 이르기를²
그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³이 없다 하니
저가 스스로 자긍하기를
자기 죄악이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⁴ 함이로다
그 입의 말은 죄악과 궤휼이라
지혜⁵와 선행을 그쳤도다
저는 그 침상에서 죄악⁶을 꾀하며
스스로 불선한 길에 서고 악을 싫어하지 아니하는도다⁷
<노트> 본 시편은 다윗의 시로, 악인들이 난무하는 어두운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한 밝은 사실을 대조적으로 보여 준다. 본 시편에 나타난 교훈의 중심은 무엇이 가장 보배로운 삶인가를 알리는 것이다.
이 부분은 악인의 성격을 다루고 있다. 악인이란 하나님의 심판의 엄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며, 오히려 자신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 드러나지 않음은 물론, 심판도 없을 것이라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들이다.
서론: 시 36편에서 시인은 악인들의 죄된 행위를 배경 삼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송축한다. 1~4절은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일반적인 묘사이고, 5~9절은 하나님의 속성들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며, 10~12절은 마음이 정직한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 보여 달라고 하는 믿음의 기도이다. 이 시는 매우 아름다운 문체로 되어 있다.
1~4절은 악인에 대한 간결한 묘사이다. 도덕적 타락은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1) 양심을 무시하고 짓는 죄, (2)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죄, (3) 완전히 타락해 버린 양심의 부추김을 받아 짓는 죄(Moulton).
마음의 죄(1, 2절) 다음에는 혀의 죄(3절)가 따르며, 혀의 죄 다음에는 손의 죄(4절)가 따른다. 이처럼 죄악을 점층법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표제에 대해서는 67쪽을 참조하라. 시인이 시 35:27에서 “그 종”으로 불리고 있음을 주목하라. 또한 시 18편 표제를 참조하라.
내 마음¹:. 몇몇 히브리어 필사본들과 70인역 그리고 수리아역에는 “그의 마음”으로 되어 있다. 이 같은 번역이 문맥에 더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첫 번째 문장이 문자적으로 “악인의 심중에서 그에게 하는 죄악의 말” 또는 “죄악이 악인의 심중에서 그에게 이르기를”이 된다.
이르기를²: 히브리어 느움(ne’um), “말.” 이 단어는 모두 361회 나오는데 이곳 말고는 모두 일반적으로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창 22:16 등)이라는 표현에 나오는 대로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는 데에만 쓰였다. 때로는 선지자가 말하는 자로 등장하기도 한다(민 24:3, 15:잠 30:1). 지금 논의 중인 절에서 이 단어가 쓰인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죄악이 의인화되어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나타나 있다. 죄가 죄인에게 다가와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것처럼 그에게 말을 한다.
두려워함³: 히브리어 파하드(pah.ad), “떨림”, “공포.”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여호와를 경외함”(참조 시 19:9 주석)이라는 표현 속에 나타나 있는 “경외함”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파하드는 “숭배” 또는 “예배”의 의미를 지닌 “두려움”이 아닌 “원수의 두려움”(시 64:1)이나 “재앙의 두려움”(잠 1:33)처럼 “공포”의 의미를 지닌 “두려움”이다. 바울은 악인들의 부패한 모습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 36:1의 두 번째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⁴: 히브리어 본문에서 이 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이 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가 자기의 죄를 발견하여 미워하기까지 자기의 눈앞에서 자신에게 아첨하는도다”가 된다. 여기서 시인이 의미하는 바는, 악인들이 자기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벌을 받지도 않을 것이라는 이론을 가지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인 듯하다.
지혜⁵: 3, 4절은 악의 발전 과정을 보여 준다. 선행을 그치는 데에서 시작하여, 죄악을 꾀하고, 악을 행하기로 작정하며, 마침내는 양심의 가책 없이 악을 행한다.
죄악⁶: 즉 “헛된 일.”
악을 싫어하지 아니하는도다⁷: 희망이 전혀 없는 타락한 죄인에게는 죄의 죄됨이 그 행위를 억제하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그는 죄된 행위의 부도덕성을 깨닫지 못한다.
202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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