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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노파 2025. 11. 3. 00:02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장지원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십오년에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¹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일 년을 위에 있으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²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³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⁴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⁵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⁶에서부터 아라바 바다⁷까지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⁹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⁸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¹⁰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¹¹

 

여로보암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¹²과 그 권력으로 싸운 일과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¹³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로보암이 그 열조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자고

그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14장 23-29절은 북 이스라엘을 가장 부강하게 만든 여로보암 2세(B.C.793-753년)에 대한 기록이다. 여로보암이 통차하던 시대에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근동 지방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이 되었다. 그런데 번영을 누리면 누릴수록, 북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점점 더 거만해져서 타락의 길로 빠져들어갔다. 이때 그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이 호세아와 아모스와 요나였다.

여로보암¹: 이스라엘의 초대 왕과 같은 이름(왕상 12:20). 현대의 학자들은 초대 왕과 구별하기 위해 여로보암 II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로보암 II세라는 이름은 북방 이스라엘을 세운 사람의 이름을 따라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러한 이름을 부여하여, 자신의 후계자가 이스라엘 제2의 건국자가 되어 국가에 힘과 번영을 가져오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기를 희망했던 것 같다.

악²: 이것은 북방 왕국의 통치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질책이었다. 이스라엘 왕들의 긴 족보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여로보암은 예후 왕조에 속하였다. 그러나 그는 예후가 전복시킨 오므리 왕조와 아합 왕조의 악한 길을 따랐다.

가드헤벨³: 스불론 국경의 한 지역으로(수 19:13), 나사렛 북동쪽 약 4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다. 요나의 무덤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 거기에 남아 있다. 현대 아랍어로 키르베트 엣-주라(Khirbet ez-zurra)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요나⁴: 니느웨로 보내졌던 선지자(욘 1:1, 2). 요나는 요나서에 기록된 것보다 더 넓은 사역의 영역을 담당하였다. 요나가 여로보암 II세의 통치기간 중에 활동했다는 사실을 관찰하여 요나서에 기록된 사건들의 대략적인 시기를 정할 수 있다.

본 주석에서 채택하고 있는 잠정적인 연대기에 따르면 여로보암 II세가 통치하던 기간에 앗수르를 통치하던 왕은 아다드-니라리 III세(810~781), 살만에셀 IV세(782~772), 아수르-단 III세(772~754), 아수르-니라리 V세(754~746) 등이다.

지경⁵: 여로보암은 국가의 본래 국경을 회복하였다.

하맛 어귀⁶: 이 표현은 국가의 북쪽 경계선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참조 민 34:8; 수 13:5; 삿 3:3; 왕상 8:65; 암 6:14). 에스겔 역시 하맛을 국가의 북쪽 한계선으로 설정하였다(겔 47:16; 48:1). 이스라엘이 국경선을 이곳까지 확장한 것은 솔로몬이 통치하고 있을 때였다(대하 8:3, 4).

아라바 바다⁷: 사해(민 34:12; 신 3:17; 4:49; 수 3:16). 요단의 동쪽 지역은 예후(10:32, 33)와 여호아하스(13:2, 25)가 통치하는 동안에 빼앗겼으며 요아스가 부분적으로나마 다시 회복하였다(13:25).

고난…을 보셨고⁸: 하나님께서는 불순물을 제거하기에 적합한 온도 이상으로 고통의 불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자녀들이 약한 징벌에 반응을 보인다면 가혹한 심판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반면, 가벼운 시험 아래서 회개하기를 계속해서 거절하는 것은 계속되는 더 높은 강도의 시험을 필요로 한다. 이스라엘이 바로 이런 경우에 속했다. 약한 재난들은 지속적인 개혁을 성취하기에는 불충분했고, 따라서 지속적인 반역은 국가의 완전한 파괴라는 궁극적인 운명으로 스스로를 몰아넣고 있었다. 여로보암 치하에서 누린 일시적인 편안함은 하나님께서 반역한 국가를 위하여 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기 위해 계획되었다.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거의 끝에 이르렀으며 그 끝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 시기는 많은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기에 속했다. 위기와 필요의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하고도 거룩한 길을 제공하신다. 선지자 요나의 기별 외에도 호세아와 아모스의 예언도 이 시기에 주어졌다. 이 책들의 내용은 당시 상황에 더 밝은 빛을 더해 준다.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⁹: 이 구절의 정확한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광범위한 재난이 모든 계층에 임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참조 신 32:36; 왕상 14:10; 왕하 9:8). “갇힌 자와 놓인 자” 즉 “매인 자와 자유로운 자”, 이 두 가지는 서로 대조되는 개념일 수 있다.

아니하셨으므로¹⁰: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라는 명령을 발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이 당신에게 돌아오도록 강력한 자극을 주기 위해 일시적인 번영을 누리도록 계획하셨다. 국경 회복은 순종할 때 주어질 축복을 미리 맛보게 하는 것이었다. 본문의 기자는 신 32:36~43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께서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신 29:20)할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

구원하심이었더라¹¹: 이러한 번영은 여로보암의 악함과는 관계없이 이르러 왔다(참조 24절). 악한 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축복이 번영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얼마만큼 은혜를 입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승리가 곧 하나님께서 그 왕이나 백성의 행로를 인정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승리의 경험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본질적인 소명으로 돌아오도록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새로운 초청을 의미한다.

모든 행한 일¹²: 여로보암은 그의 국가를 강하게 하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그러나 그의 통치 기록은 매우 간단하다. 국가적인 성공은 국가적인 교만으로 이어졌으며 동시대의 선지자들은 이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호 5:5; 7:10; 암 6:13).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하맛을…¹³: 이 언급은 당시 유다 왕국의 북쪽 경계를 가리킨다. 다메섹은 다윗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통치를 받게 되었으며(삼하 8:6), 솔로몬 시대에도 여전히 제국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었다(왕상 11:23, 24). 솔로몬 왕국은 또한 하맛까지 포함하고 있었다(대하 8:4). 하맛이 특정 성읍을 의미하는지 지역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참조 25절). 하맛이라는 성읍은 다메섹 북쪽 약 193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다.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III세(Tiglathpileser III, BC 746~727년)는 “아즈리아우(Azriau)에게 넘어갔던 하맛의 19개 지역을 그 부근의 도성들과 함께 자신의 통치령으로 삼았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이 아즈리아우는 아마도 유다의 아사랴 곧 웃시야일 것이다(참조 16:5). 이것이 유다의 아사랴를 의미한다면 디글랏 빌레셀의 원정 당시 하맛 지역은 유다의 통치 아래에 있었음을 말해 준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이 북쪽 지역의 통치권을 놓고 서로 경쟁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여로보암 당시 한때나마 남방의 경쟁국에게서 그 통치권을 빼앗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후에 유다가 그 통치권을 되찾았음이 틀림없는데, 왜냐하면 본 주석에서 채택하는 연대기에 따르면 디글랏 빌레셀이 이 지역을 원정한 일은 여로보암이 죽은 지 10년 후인 BC 743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북쪽 지역에 관한 유다의 이런 관심은 앗수르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유다의 왕인 아사랴는 앗수르의 침략에 대항하여 서방 연합군을 이끄는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그리고 북쪽 아람의 군소 국가들은 앗수르의 침략을 대항하는 데 도움을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그를 종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북쪽 국경 지역에 놓인 국가들에 대한 유다의 이러한 관심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으며, 여로보암이 통치하는 시기에 북쪽 지역을 점하는 데 성공하였다.

 

2025.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