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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왕국 요아스의 죽은과 아마샤의 복귀/장지원

노파 2025. 10. 31. 00:02

북왕국 요아스의 죽은과 아마샤의 복귀

장지원

 

 

요아스의 남은 사적¹과 그 권력과 또 유다 왕 아마샤와 서로 싸운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아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사마리아에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²을 생존하였더라

아마샤의 남은 행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³한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⁴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그 시체를 말에⁵ 실어다가

예루살렘에서 그 열조와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니라

유다 온 백성⁶이 아사랴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육 세라

아마샤가 그 열조와 함께 잔 후에

아사랴가 엘랏⁷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14장 15-22절은 북왕국 요아스가 죽자 아마샤는 다시 유다로 돌아와 15년을 더 다스렸다. 그러나 우상 숭배와 교만과 허세로 인하여 결국 아마샤는 백성들에게 살해되었다. 그의 후계자 아사랴에 대해서는 왕상 15:1-7에 다시 기록되어 있다.

남은 사적¹: 15절과 16절은 18절부터 다시 이어지는 아마샤의 통치에 관한 기록의 막간에 들어 있다. 이 절에는 요아스의 통치를 마무리하는 형식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13:12, 13 에서 언급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형식의 반복이 여로보암 II세가 그의 아버지 요아스와 공동으로 통치하였음을 암시한다고 이해한다.

십오 년²: 왕들에 관한 기록 중에 이러한 내용이 언급된 경우는 이곳뿐이다.

모반³: 아마샤가 유다에서 인기를 얻지 못했다는 것은 자명하다. 요아스에 대한 그의 무모한 도전, 비참한 패배, 예루살렘 성벽의 상당 부분이 무너져 내려 당한 수치 그리고 성전 및 왕궁 보물들을 잃어버린 것 등은 백성들이 그 통치자에 대해서 냉혹한 감정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라기스⁴: 일반적으로 지금의 텔 엣-두웨이르(Tell ed-Duweir)와 동일시되며, 예루살렘 남서쪽 약 43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다.

말에⁵: 라기스는 예루살렘과 병거 길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길은 동쪽으로 중앙 고원지대에, 그리고 북쪽으로는 나라의 수도까지 이어졌다. 미가는 이 도성에 대한 예언적인 묘사에서 병거를 라기스와 연결하여 언급하고 있다(미 1:13).

온 백성⁶: 이 기록은 온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의 대중적인 움직임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한 왕이 죽고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게 될 때 일반적으로 온 백성이 왕을 삼았다고 새삼 언급하지는 않는다. 아마샤가 잡힌 후에 아사랴가 부친과 공동으로 통치한 것에 대해서는 대하 25:27; 26:1 주석을 참조하라.

엘랏⁷: 에돔 땅(왕상 9:26), 에시온 게벨(신 2:8) 근처에 있는 아카바(Aqabah) 만(灣)에 위치한 성읍. 다윗이 에돔을 정복했을 때 이스라엘에 귀속되었음이 분명하다(삼하 8:14). 솔로몬은 그 항구 시설을 사용하였다(왕상 9:26; 대하 8:17, 18). 이곳은 아마 에돔이 여호람을 배반하고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을 때 빼앗긴 것으로 보인다(왕하 8:20~22).

 

202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