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성경 속에 위인전> 엘리사의 사역의 시작/장지원

노파 2025. 9. 1. 00:02

 

<성경 속에 위인전> 엘리사의 사역의 시작

장지원

 

 

엘리사가 보고¹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²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³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⁴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⁵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⁶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⁷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⁸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⁹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¹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¹¹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 가로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사 오십 인이 있으니

청컨대 저희로 가서¹²

당신의 주를 찾게 하소서

염려컨대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보내지 말라 하나

무리가

저로 부끄러워 하도록 강청하매¹³

보내라 한지라¹⁴

저희가 오십 인을 보내었더니

사흘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¹⁵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저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¹⁶ 하였더라

 

그 성¹⁷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¹⁸

물이 좋지 못하므로¹⁹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²⁰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²¹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²²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²³ 이르렀더라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²⁴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²⁵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²⁶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²⁷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²⁸: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²⁰ 돌아왔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2장 12-25절은 엘리야가 승천하자 엘리사가 그의 직무와 영감을 물려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에게 확신을 주고 선지 생도들과 모든 백성에게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임을 선포하기 위하여, 요단 강이 갈라지는 이적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선지 생도들은 엘리야의 승천을 믿지 못하였다.

엘리사가 보고¹: 이렇게 하여 엘리야가 제시한 징표(10절)가 성취되었다. 이제 엘리사는, 자신이 간구했던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받았으며 그 앞에 중요한 사역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아버지여²: 엘리사는 연로한 선지자를 영적인 아버지로 여겼다. 아들과 후사로서, 젊은 선지자는 이제 선배 선지자의 책임을 떠맡았다. 엘리야가 훌륭하게 시작한 사역을 이제부터는 엘리사가 계속 수행해 나갈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병거³: 이 표현은 엘리야가 하늘로 데려감을 받은 위엄찬 모습에 영감받아 한 말이지만, 이스라엘의 진정한 보호책은 이 땅의 능력이나 군대 또는 기마병이나 병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선지자의 인식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보낸 천사는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보다 더 강하다.

다시…아니하는지라⁴: 엘리사는 그의 선생님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으며, 그가 사라진 후로 엘리사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었다. 죽은 의인들이 그들의 무덤에서 부활할 때 비로소 엘리사는 엘리야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한 것(행 1:9)을 본 제자들도 그럴 것이다. 그분이 재림할 때 그들은 다시 한 번 그분을 볼 수 있을 것이다(행 1:11).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잠시 떨어져 이 땅에서 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지만, 그들을 다시 만나 더 이상 헤어지지 않아도 될 행복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옷을 잡아…찢고⁵: 옷을 찢는 것은 일반적으로 슬픔과 당혹스러움을 가리키는 표현이다(민 14:6; 삼하 13:19; 대하 34:27; 스 9:3; 욥 1:20; 2:12). 하지만 엘리사가 겉옷을 찢은 이 경우는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이제부터 그의 옛 의복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음을 의미하는데, 그가 엘리야의 겉옷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2:13).

엘리야의…겉옷⁶: 이 겉옷은 엘리야의 예언자적 직무의 표였다. 엘리야가 처음에 엘리사를 후계자로 생각했을 때, 그에게 겉옷을 던졌다(왕상 19:19). 이 겉옷은 나이 든 선지자에게서 받은 유품으로, 엘리사가 이제 엘리야가 수행해 온 지도자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는 표징으로 그에게 남겨졌다. 이 권위의 상징을 지니고 백성들에게 돌아갈 때, 그는 엘리야의 계승자로 인정받을 것이었다.

요단 언덕⁷: 요단강은 장벽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에게 그곳은 장벽이었다. 하나님의 종에게는 그곳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기회임이 입증되었다. 엘리사는 요단강에 섰지만 오래 머뭇거리지 않았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⁸: 이 질문이 의심이나 불완전한 믿음의 질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을 내리쳐 믿음과 행동의 사람임을 스스로 보여 주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의 선임자에게 머물렀던 것처럼, 이제 엘리사는 자신에게도 임할 것을 믿었다. 지금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위해 행하신 일을 자신을 위해서도 행하실 것을 기대하였다. 본질적으로 이 질문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할지 말지를 묻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 그분 자신을 드러내시도록 기도 또는 요청하는 것이다.

엘리사가 건너니라⁹: 믿음으로 엘리사는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여호와께서 그의 믿음을 가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전진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당신의 종들을 위해 수많은 은혜의 기적을 베푸신다. 어려움은 믿음과 용기를 지닌 사람에게 장벽이 아니라 기회이다.

저를 보며¹⁰: 엘리사를 주목하고 있었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의 눈이 그에게 머물렀다. 만일 그가 실패했다면, 그들은 그의 실패의 증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의 성공의 증인이 되었다. 엘리사의 믿음이 믿음을 고양시켰고, 그의 승리가 나라의 종횡을 누비며 많은 승리를 이끌어냈다.

엘리야의 영감¹¹: 엘리야의 기적은 엘리사에 의해 반복되었고,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노(老) 선지자를 통해 행하신 일을 그의 후임자를 통해서도 행하실 것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막중한 영적 책임을 수행했던 지도자가 직무를 놓고 쉼을 얻어야 할 때, 하나님은 후임자로 선택한 다른 사람에게 도움과 힘을 주신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 위대하다. 그 역사는 한 사람이 그의 사역을 끝마칠 때도 그치지 않고, 사역을 이어받은 손이 선임자의 임무에 착수할 때 승리에서 승리로 계속된다. 엘리야를 지도하고 강하게 했던 동일한 성령이 그의 후임자에게 지혜와 힘을 주었다.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 젊은이로 말미암아 많은 위대한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었다.

저희로 가서¹²: 선지자의 생도들은 엘리야와 엘리사가 이별하는 모습을 보았고,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입고 홀로 돌아오는 것을 목격했다. 전에 그들은 엘리야를 그들로부터 데려갈 것이라는 계시를 여호와께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데려가는 정확한 방식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않으셨고, 따라서 엘리사만큼 그렇게 분명하게 승천의 모든 장면을 자세히 목도할 수는 없었겠지만 엘리사가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말했을 것이고, 따라서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으며, 그리하여 엘리야의 육신이 요단강 저편 지경의 외딴 산꼭대기나 어느 깊은 계곡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리가…강청하매¹³: 선지자의 생도들은 그들의 방법대로 하기를 고집했다. 그들이 너무 끈질기게 청하므로 마침내는 엘리사가 지쳐 그들의 간청을 거절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끈질김이 미덕일 때도 있지만 약점과 어리석은 짓이 될 때도 있다. 잘못된 것을 고집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거나 올바르지 않다. 엘리사가 사실을 말했을 때 생도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만족했어야 했다.

보내라 한지라¹⁴: 한 사람이 자신의 방법을 계속 고집할 때는, 여호와의 선지자나 하나님 자신일지라도 더 이상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엘리사는 원해서가 아니라 결국 어쩔 수 없어서 본의 아니게 승낙했다. 엘리사는 무익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선지자의 생도들은 그들 스스로 조사하여 실상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했다. 엘리사가 그들에게 알려준 사실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¹⁵: 그들은 3일 동안 찾았으나, 단지 자신들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엘리사의 말이 얼마나 옳았는지 발견했을 뿐이다. 지식과 지혜를 얻는 데 쉬운 방법도 있고 힘든 방법도 있다. 종종 청년들은 오직 힘든 방법으로 그 교훈들을 배운다. 사실에 대한 증언을 거절하거나 하나님의 선지자의 권면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지혜나 분별력에 속하지 않는다.

내가…이르지 아니하였느냐.¹⁶: 그들의 요구가 잘못되었다는 소식을 가지고 엘리사에게 돌아온 생도들은 분명 의기소침해 있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엘리사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고, 단지 무시된 자신의 충고를 상기시켰다.

그 성¹⁷: 즉 여리고. 엘리야가 승천한 후, 엘리사는 윤택하고 아름다운 오아시스에 선지자 학교 중 하나가 설립되었던 여리고에 얼마 동안 머물렀다.

아름다우나¹⁸: 주변의 척박한 지역에 비하면 여리고의 환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여기에 건조하고, 불모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벌거숭이 황토 땅 유대 광야가 있다. 가나안에 이주할 당시 생명을 주는 샘들이 이 황량한 계곡 중 신록의 땅에 자리잡고 있었다. 종려나무와 무화과, 향기로운 관목과 들판이 있었다. 여리고는 살기 좋은 곳이었다.

물이 좋지 못하므로¹⁹: 한때 수질이 좋고 신선했던 여리고의 물이 오염되고 부패해, 아름답던 계곡이 소산 없는 불모지가 되었다. 마치 여리고의 거주민에게 임한 저주(수 6:26; 왕상 16:34)가 그 땅에도 임한 것처럼 보였다.

소금을 담아²⁰: 엘리사는 전에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라고 요구했는데, 그것으로 물을 순수하고 유익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소금을 가져오라고 요구한 것은 그것이 보존의 수단으로 부패와 부식을 방지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샘으로 회복시키는 수단으로서 소금 그 자체에는 어떤 효능도 없었고, 그것은 단지 생명력을 지닌 이전의 물로 회복시키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정결케 하고 회복시키는 능력의 상징이었다.

그 가운데²¹: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에 의지하여 샘에 소금을 던졌다. 이런 상징적 행동을 통해 선지자는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께서 샘을 정결케 하기 위해 행할 사역을 나타냈다. 효력을 나타내기 위해서 소금은 보존해야 할 대상과 섞이고 융합해야 한다. 따라서 소금을 샘 속에 던져 넣어 오염된 모든 부분에 뚫고 들어가 스며들도록 했다. 이는 소금에 비유된 신자들(마 5:13)이 복음을 전달하기 원하는 자들과 개인적으로 접촉해야 함을 예시한다.

내가…고쳤으니²²: 백성들은 어떻게 그 물을 고쳤는지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마술이 아니라 신비로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쳤다.

오늘날에²³: 그때 회복된 영향은 지속되었다. 엘리사의 샘물로 알려진 소위 아인 엣-술탄(‘Ain es-Sult.a-n)이 오늘날에도 그 지역에 풍부한 물을 공급하고 있다. 엘리사의 기적이 있은 이래 여러 해를 거쳐 여리고의 샘은 계속 솟아 나와 치유와 생명을 주는 물줄기를 쏟아내 계곡의 그 부분을 기쁨과 아름다움의 오아시스로 만들어 왔다. 여호와께서 자비로 여리고 샘을 기꺼이 고쳐주신 것처럼, 그분은 영적 질병에 걸린 인간의 마음과 생명도 기꺼이 고쳐주신다. 그 샘이 회복되었던 것처럼,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택하신 종의 사명을 받아들였다면 회복되었을 것이다. 여리고의 물이 계속 흘러 넘쳐 주변 지역에 생명과 축복을 내보낸 것처럼, 이스라엘에서 영적인 생명과 치유의 물줄기가 흘러나왔다면 지상의 모든 백성에게 하늘의 평화와 축복이 이르렀을 것이다.

죄의 독소는 여전히 인간의 마음속에서 작용한다. 사랑과 기쁨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라도, 미움과 비통함의 샘물이 세상에 흘러넘치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생애에 새로운 삶과 능력을 불어넣도록 그리스도의 복음의 치유하시는 능력이 모든 곳에 필요하다. 부패의 물줄기를 멈추기 위해서는 인간의 영혼 속에 하늘의 생명이 임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삶을 달콤하게 하시고, 순결과 은혜와 영적 능력의 삶을 주는 강물을 흘려보내시고자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된 심령을 가진 자는 세상에 생명과 기쁨과 화평과 아름다움의 강물이 된다. 그 강물이 흐르는 땅은 어디나 살기 좋고 행복한 곳이 되며, 절망과 비애의 사막 가운데 기쁨의 오아시스가 된다. 그리스도는 오늘도 인간의 빛이요 생명이며, 그분의 축복은 그분의 사랑과 은혜에 접촉함으로 변화된 사람들의 심령을 통해 이 땅 모든 백성에게 흘러나간다.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에서 정결한 샘물이 되어야 하며, 심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하늘과의 접촉점을 잃어버린 지역에 소망과 의와 기쁨을 회복해야 한다.

벧엘로²⁴: 엘리사는 조금 전 엘리야와 함께 갔던 길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노(老) 선지자는 떠나갔지만, 그가 훌륭하게 시작했던 사역은 여전히 수행되고 있었다. 사무엘이 설립하고 쇠퇴 상태로 빠진 후 엘리야가 다시 회복한 선지자 학교는 여호와의 사업을 위해 젊은이들을 훈련시키는 기능을 계속하고 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데 이 학교들이 중요함을 인식했다. 적절하게 훈련된 사람이 없었더라면, 개혁 사업은 계속 부진했을 것이며 진보를 기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엘리사가 이 학교들을 강화하고 장려하는 것을 자신의 첫 번째 사업으로 삼은 것은, 이 학교들이 이 땅의 자녀들의 마음속에 의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위대한 사역에 효과적인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저를 조롱하여²⁵: 엘리사는 평화의 기별을 지닌 평화의 선지자였다. 그의 사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그가 이 중요한 사역을 시작할 때 여러 젊은이가 벧엘 성에서 나와 그를 비웃고 하나님의 기별자로서 맡은 사명을 조롱하였다.

대머리여 올라가라²⁸: 엘리야의 승천은 가장 엄숙한 사건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실한 종에게 죽음을 맛보지 않게 하고 당신 자신에게로 데려가셨다. 벧엘의 젊은이들은 엘리야의 승천 소식을 듣고 이 신성한 사건을 농담거리로 삼았다. 엘리야는 갔고, 그래서 그들은 이제 엘리사에게 화살을 돌려 엘리야처럼 승천하여 그들 중에서 떠나가라고 조롱했다. 사단은 이 젊은이들을 부추기고, 분명 그 땅 백성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겨 주었을 그 엄숙한 사건의 영향을 상쇄시키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엘리사가 사역을 시작할 때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파괴하려 했다. 이 젊은이들의 조롱을 간과했다면,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려 하신 사업은 훨씬 지체되어 악의 세력이 승리를 얻었을 것이다.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저주하매²⁶: 엘리사는 천성이 온유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업을 위해서는 온유함에도 한계가 있다.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는 유지되어야 하며, 그분의 엄숙한 행위가 불경스러운 잡배들의 조롱과 농담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존중받아야 하며 그의 권위는 유지되어야 한다. 확고함, 결단력, 의연한 행동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한 책임을 수행하도록 부르신 사람이 지닌 지도력의 증거이다. 연약하거나 우유부단할 때가 아니었다. 엘리사는 무례하고 방종한 젊은이의 무리를 향해, 하늘의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저주를 선포했다.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²⁷: 뒤따른 심판은 하나님께로부터 임한 것이다. 징벌의 혹독함은 문제가 된 사건의 심각성에 걸맞았다. 불경스러움이 자라는 것을 저지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조롱하거나 임명받은 하늘의 사역자들을 경멸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따끔하게 본때를 보여 주는 것이 필요했다. 하나님의 성직자들을 존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하고 말하도록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표자로 이 땅에 있으며, 따라서 그들을 모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의 택한 사역자들에게 취한 대우에 대해 책임을 물으신다. 조롱하던 벧엘의 젊은이들에게 내린 혹독한 심판은 거룩함을 욕보이고 하나님의 기별자를 모욕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보여 준다.

갈멜산으로²⁸: 엘리사는 사역을 시작하면서 먼저 나라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여, 엘리야가 사역했던 전략적 장소들을 둘러본 후 추가 사업을 어디서 진행할지 살폈다. 갈멜산은 신성한 추억이 깃든 곳이었다. 엘리야가 선지자로서의 경력에서 혁혁한 승리를 얻었던 곳이 바로 여기였다. 그는 자주 담대한 책망의 음성을 발했고, 왕과 백성들의 사악함을 정죄하여 악에서 돌이켜 여호와의 길로 행하라고 호소했다. 그 사역이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이전 승리의 현장을 방문했을 때 엘리사는 틀림없이 그 감동적인 날들을 생각했을 것이고, 그에게 위탁된 화해의 사역에 자신의 모든 심령을 쏟아 붓고 싶은 생각으로 다시 한 번 고무되었다. 엘리사는 그의 사역의 후기에 갈멜산에 거처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참조 4:23~25).

사마리아로²⁹: 사마리아는 북방 왕국의 수도였으며, 이제 엘리사는 이 중요한 지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후에 그는 그곳 지도자들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것이었다. 그가 받은 빛은 백성들뿐 아니라 왕을 위한 빛이었고, 따라서 그는 나라의 가장 중요한 거점 지역들에서 담대하게 사역에 착수했다.

 

202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