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성경 속에 위인전> 엘리야의 승천/장지원

노파 2025. 8. 29. 00:02

 

<성경 속에 위인전> 엘리야의 승천

장지원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¹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²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³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⁴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⁶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⁷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⁸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⁹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¹⁰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⁵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¹¹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선지자의 생도 오십 인¹²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¹³

그 두 사람이 요단가¹⁴에 섰더니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¹⁵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¹⁶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¹⁷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¹⁸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¹⁹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두 사람이 행하며²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²¹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²²을 타고 승천하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2장 1-11절은 우상 숭배가 만연하던 시대에 하나님의 군사로 활약하던 엘리야의 승천에 관한 기록이다. 길갈, 선지자 학교에 있던 엘리야가 여리고에 있는 생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하나님께서 지시하셨다. 엘리야는 자신의 승천을 엘리사가 봐도 되는지 알 수 없어 따라 나서는 엘리사를 만류한다. 이것은 엘리야의 겸손한 심정을 나타낸다. 그러나 엘리사는 스승의 승천을 목격함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고 견고한 믿음을 얻기 위해 끝까지 따라가고자 했다. 엘리야는 산 체로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였다.

엘리야를…올리고자¹: 여호와께서는 엘리야에게 그가 하늘로 올려갈 것이라는 사실을 계시로 주셨지만 그가 알아채지 못하자 이 사실을 엘리사와 선지자 생도들에게도 계시하셨다(참조 선지자와 왕 225, 226,). 엘리야의 승천은 여호람이 유다를 다스리기 시작한 이후에 일어났다(대하 21:5, 12).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나가더니²: 문자적으로 “엘리야와 엘리사가 갔다.” 엘리야를 수행한 사람은 엘리사였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왕상 19:21)다고 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처음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줄곧 엘리야를 섬겼던 것 같다. 젊은 선지자들은 선생님의 손에 물을 붓는 일과 같은 매일의 봉사를 수행하는 데 익숙하였고(왕하 3:11) 아들이 연로한 아버지께 하는 것처럼 기꺼이 그 같은 개인적 봉사를 하였다.

(길갈: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기 전에 진 치고 여호수아가 열두 돌을 세웠던, 여리고 근처 요단 계곡에 있는 길갈은 아닐 것이다(수 4:19, 20). 주석자들은 이 지명과 관련된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한다. (1) 세 학교가 있는 본거지가 길갈, 벧엘, 여리고 순으로 언급된 점(2:1~4; 참조 선지자와 왕, 225). (2) 길갈에서 벧엘로 가는 여행을 묘사할 때 사용된 “내려가다”라는 표현(2:2).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야라드(yarad)는 번역하면 “내려가다”라는 의미이지만, 요단 계곡에 있는 해수면 아래 약 213미터 지점의 길갈에서 해발 약 914미터 지점에 위치한 벧엘로 가는 여정을 묘사하는 데 사용할 단어로는 적절하지 않다. 세겜 근처, 모레 상수리 나무 가까이에 또 하나의 길갈이 있었다(참조 창 12:6; 신 11:30 주석). 이곳은 벧엘에서 서북쪽으로 12킬로미터 떨어진 남부 사마리아의 질질리아(Jiljilia) 마을로 확인되어 이 길갈로 알려졌다. 실제로 질질리아는 동일한 팔레스타인 중앙 산맥에 있는 벧엘과 사실상 같은 고도에 위치하지만, 그곳은 높은 언덕이고 벧엘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벧엘로 갈 때 “내려”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 머물라³: 엘리야는 그의 지상 사역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았다. 매번 엘리사에게는 머물라고 권하고 스승 혼자 가도록 함으로써 그의 의도와 충실성을 시험했다. 그가 지금 엘리야의 계승자로 부름을 받은 사명에서 돌이켜 쟁기질하러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선지자의 소명에 신실하여 엘리야가 시작한 개혁 사업을 그처럼 숭고하고 효과적으로 계속할 것인가?

나를…보내시느니라⁴: 엘리야는 승천하기 전에 선지자 학교들을 한 번 더 방문하여, 여호와를 위하여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권면하고자 했다. 두 선지자(호 4:15; 9:15; 12:11; 암 4:4; 5:5)에게 비난받은 거짓 예배의 중심지가 이 북쪽 길갈인지 아니면 여리고 근처의 길갈인지는 알 수 없다. 만일 전자라면, 영성훈련을 위한 이 중요한 거점 중 두 곳은 산당이 있었거나 나라에 창궐한 거짓 예배를 위해 산당을 세우려던 장소였을 것이다. 이 두 학교는 길갈과 벧엘에 있었으며(참조 1절 주석), 세 번째 학교는 여리고에 있었다. 이런 학교들에서 훈련받은 젊은이들은 나라의 각처로 나아가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며 아합과 이세벨의 강력한 지지를 받던 우상숭배의 영향에 저항하는 사역을 수행했다. 이러한 열정적이고 연합된 노력의 결과로, 선(善)을 위한 강력한 영향력이 행사되었고 우상숭배는 결정적인 저항에 맞닥뜨렸다. 이스라엘은 그 악으로 인하여 멸망이 무르익은 듯이 보였으나 나라를 파멸로 몰아 가는 위험에서 얼마 동안 벗어났다.

여호와의 사심⁵: 이 간절한 말은 길갈과 벧엘(4절) 그리고 여리고(6절)에서 세 번 발해졌다. 이것은 사명을 저버리지 않고 부름받은 사역을 선생인 엘리야와 함께 끝까지 계속할 것이라는 엘리사의 확고한 의지를 드러낸다. 하나님은 이 젊은이를 불러 연로한 선지자를 따르도록 하고, 얼마 후면 홀로 수행할 중대한 책무를 위해 선지자에게 훈련받도록 하였다. 섬길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는 한, 엘리사는 선생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선지자의 생도들⁶: 불과 몇 년 전 엘리야는 이스라엘에서 오직 자신만이 하나님께 신실하게 남아있는 자라고 믿었지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 7,000명 정도를 남겨두셨다는 보증을 받았다(왕상 19:18). 이들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 중 다수는 선지자 학교와 결속되어 엘리야와 엘리사가 위탁받은 동일한 개혁 사역의 한 부분을 맡을 준비를 갖추었다. 이 학교들은 이스라엘이 배교하는 동안에는 쇠퇴했지만 엘리야로 인해 재건되었다(선지자와 왕, 224). 나라 전역에서 엘리야는 이제 여호와를 향한 믿음과 용기의 증거들을 발견하였으며, 학교들에서 이루어지는 강력한 역사를 목도하면서 마음에 활력을 얻었다.

당신의 머리 위로⁷: 엘리야는 이스라엘에서 진행되는 여호와의 개혁 사역에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인식되었다. 선지자 학교의 생도들도 이 사실을 인정했으며, 엘리사도 그러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함받은 지도자들을 통하여 이 땅에서 사역을 수행하신다.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은 이런 지도자들을 하나님께 임명받은 사람으로 인정하여, 그들의 지도를 시기나 비판 없이 따른다.

아나이까⁸: 엘리야가 그날 옮겨갈 것이라는 사실은 선지자 자신뿐 아니라 엘리사와 선지자의 생도들에게도 알려졌다(참조 1절 주석).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계시를 주실 때, 같은 계시를 또 다른 사람에게는 주시지 않는다는 암시는 없다.

너희는 잠잠하라⁹: 히브리어 헤헤슈(heh.es∨u). 이 단어는 소리를 흉내낸 말로, 영어의 “hush”(쉿!)처럼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된다.

여리고로¹⁰: 이곳 길갈이 남부 사마리아에 있었다면(참조 1절 주석), 엘리야와 엘리사는 동남쪽으로 여행하여 벧엘에 이르고, 이제 벧엘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여리고를 향해 남동쪽으로 계속 여행했을 것이다.

선지자의 생도들¹¹: 여호와의 사역의 거점들은 전략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여리고에 선지자 학교를 설립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여리고는 많은 여행객이 요단 동편 지역에서 서편으로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에 있었다. 이들은 여리고의 오아시스에서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머물렀다. 여기서 그들은 선지자 학교의 생도들과 접촉하여, 그들을 통해서 나라 전역의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여호와의 소망과 진리의 기별을 받을 수 있었다.

오십 인¹²: 이 말은 선지자 학교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다소간 보여 준다. 이 구절의 표현은 이들이 여리고 학교에 출석하는 학생 전부가 아니라 일부임을 암시한다.

멀리 서서 바라보매¹³: 선지자의 생도들은 엘리야가 그들을 떠나 하늘로 갈 것과 이것이 그들이 사랑하던 지도자의 마지막 광경이 될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전망이 좋은, 아마도 성읍 뒤편의 가파른 곳에 섰고, 거기서 요단 전체의 강줄기와 수 킬로미터 너머의 강둑까지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요단가¹⁴: “오십 인”이 적절한 자리에 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엘리야와 엘리사는 요단에 이르렀다. 여리고에서 가장 가까운 강가는 8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겉옷을 취하여¹⁵: 엘리야의 겉옷은 그의 선지자 직분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겉옷을 말아, 모세가 지팡이로 나일강을 내리쳤던 것처럼(출 7:20) 요단 강물을 쳤다. 그렇게 하여 기적적으로 요단강의 일부에 길이 만들어져 하나님의 종들이 마른 땅을 건너갔다. 이것은 분명 출애굽 당시 홍해가 갈라지는 것(출 14:21), 여호수아 시대에 요단 강물이 멈춘 것(수 3:13~17)과 비교된다. 그분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과 함께하셨고, 필요한 때에 당신 자신과 능력 및 당신의 백성을 향한 변함 없는 사랑의 돌보심을 드러내시고자 하였다.

구하라¹⁶: 엘리야는 자신의 신실한 종이요 제자 엘리사와 작별하려고 하면서, 그에게 마음속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엘리사는 부, 명성, 지혜, 세상의 존귀와 영화 등과 같은 일시적이고 물질적인 호의 또는 엘리야의 힘들고 궁핍한 삶과 대조되는 안락하고 즐거운 삶을 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중 어떤 것도 구하지 않았다. 그가 가장 원했던 것은 엘리야가 수행했던 바로 그 사역을 같은 영과 능력으로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는 하나님의 영의 똑같은 은혜와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다.

갑절이나¹⁷: 엘리사의 요청은 우리에게 솔로몬의 간청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어떤 세속적 유익, 지위, 이득이 아닌 그가 부름받은 엄숙한 책임을 올바르게 감당할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간구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의 “갑절”을 구했을 때, 그것은 엘리야의 능력의 갑절을 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노(老) 선지자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 것도 아니요, 엘리야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높은 지위나 큰 능력을 구한 것도 아니었다. 여기 사용된 히브리어 구절은 아비의 재산 중 장자에게 주어질 분깃을 지시한 신 21:17의 구절과 같다. 그러므로 엘리사의 요청은 떠나가는 선지자의 장자로 취급받고자 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는 다른 선지자 생도들에게 주어진 것과 비교하여 갑절을 받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는 영적인 상속권에 대한 승인을 구했으며, 이로써 선배 선지자의 영적인 장자로 간주되어 엘리야가 시작한 사역을 계속 수행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어려운 일¹⁸: 여호와께 어려운 일이 아니라 엘리야가 주기에 어렵다는 말이다. 선지자가 그의 계승자를 임명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선지자 직무를 수행할 자를 선택할 수 있다. 엘리야는 자신도 여호와께로부터 부름받은 사역을 계속할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자신의 영역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영감을 주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가 그 요청을 수락할지 않을지를 말할 수 없었다.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보면¹⁹: 엘리사가 엘리야를 “취하시는 것”을 목격하면, 여호와께서 자신의 요청을 수락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겼음을 알게될 것이었다.

두 사람이 행하며²⁰: 문자적으로 “그들이 걷고 또 걸으며.” 즉 그들은 줄곧 걸어가면서 이야기하였다. 어디로 걸어갔는지 알 순 없지만, 아마도 모세가 죽은 후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했던 근처 산 중 어떤 봉우리를 향해 갔을 것이다(참조 6절 주석).

불수레²¹: “하나님의 병거”는 분명 천사들이었다(참조 시 68:17). 천사들은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신”(히 1:14) 하나님의 사자들이다. 하늘의 사자들과 하나님의 대리자들은 인간의 시야와 예언적 계시에서 다양한 형태로 출현한다. 스가랴는 다양한 색깔의 말들을 보았으며(슥 1:8), 사자들은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슥 1:10)이라고 선포되었다. 그는 말과 병거들을 보았으며(슥 6:1~3), 이들은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슥 6:5)고 해석되었다. 에스겔은 모양이 “숯불과 횃불” 같고 움직임이 “번개”에 비유되는 “생물들”을 보았다(겔 1:13, 14).

말과 병거들은, 여호와께서 그분의 대적들을 파멸하고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고 구원할 때 나타내는 능력과 위엄과 영광의 상징으로 성경에 자주 사용된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능력을 이렇게 표현한다.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합 3:8). 이사야는 여호와의 강림하심을 묘사하면서, “그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사 66:15)고 말한다. 엘리사의 종이 아람의 거대한 군대와 말과 병거를 보고 공포에 질려 당혹해 할 때(6:14, 15), 엘리사는 그의 눈이 열리기를 기도했으며, 그 후에 그 젊은이는 수많은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선 것(6:17)을 보았다.

엘리야는 마지막 날에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하늘로 옮겨질 성도들의 표상이다. 변형산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능력과 영광 중에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미리 보았는데(참조 눅 9:28~32; 시대의 소망, 421, 422,), 엘리야는 예수께서 오실 때 살아서 승천할 성도들의 대표자로, 모세는 죽었다가 무덤에서 일어나 구세주와 하늘로 동행할 의인들의 대표자로 나타났다.

회리바람²²: 폭풍의 무시무시한 힘은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엄청난 위엄과 능력을 떠올리게 한다.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욥 38:1), 그에게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능력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참조 사 66:15; 나 1:3). 엘리야는 큰일을 수행했고 영광스러운 보상을 받았다. 외로움과 실망,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 광야와 높은 산중에서, 왕과 백성들이 여호와에게서 등을 돌린 시대에 엘리야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어려운 과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종이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하도록 내버려두거나, 낙담과 불명예 속에서 그의 사역을 수행하도록 하지도 않으셨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으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그를 영화롭게 하셔서 무덤 속으로 내려가도록 하지 않고 하늘의 영광과 평화 속으로 직접 데려가셨다.

 

2025.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