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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셩 속에 위인전> 엘라와 시므리의 통치/장지원

노파 2025. 8. 5. 00:02

 

<성셩 속에 위인전> 엘라와 시므리의 통치

장지원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육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그 왕위에 있으니라¹

엘라가 디르사에 있어

왕궁 맡은 자 아르사의 집에서 마시고 취할 때에²

그 신하 곧 병거 절반을 통솔한 지휘관 시므리가 왕을 모반하여³

시므리가 들어가서

그를 쳐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곧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이라

시므리가 왕이 되어 왕위에 오를 때에

바아사의 온 집안 사람들을 죽이되 남자는

그의 친족이든지

그의 친구든지⁴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바아사의 온 집을 멸하였는데

선지자 예후를 통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하신

여호와의 말씀 같이⁵ 되었으니

이는 바아사의 모든 죄와

그의 아들 엘라의 죄 때문이라

그들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⁶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엘라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 일 동안⁷ 왕이 되니라

그 때에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⁸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진 중 백성들이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 날에 이스라엘의 무리가 진에서

군대 지휘관 오므리⁹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매

오므리가 이에

이스라엘의 무리를 거느리고 깁브돈에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에워 쌌더라

시므리가 성읍이 함락됨을¹⁰ 보고 왕궁 요새에¹¹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가운데에서 죽었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하였기 때문이니라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

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¹²

시므리의 남은 행위와 그가 반역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상 16장 8-20절은 북방 이스라엘의 4대왕 엘라(B.C. 887-886)의 통치에 대한 기록이다. 엘라 왕도 깁브돈의 탈환을 위해 주력 부대를 출정시켰다. 그리고 자기는디르사에서 연락을 즐기고 있었다. 이때 신복인 군대 장관 시므리가 쿠테타를 일으켜엘라를 살해하였다. 엘라의 죽음과 동시 바아사의 왕가는 진멸하고 말았다.

이 년을 위에 있으니라¹: 엘라는 아사 26년에 즉위하여 아사 27년에 통치를 끝마쳤으므로, 포함식 연대 계산법에 따른 2년이다(10절; 참조 15:28 주석).

마시고 취할 때에²: 술 취함은 나라를 패망으로 몰아가는 행위이다. 통치자들이 술에 탐닉하게 되면 국정을 태만히 하여 나라가 고통받게 된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아니하도다”(잠 31:4, 5).

모반하여³: 이것은 이스라엘이 처해 있는 저속한 수준의 도덕적 상태를 보여 준다. 시므리는 엘라의 군대에서 신망받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불충을 드러내 왕위를 굳게 붙드는 것이 자신의 임무인데도 왕을 배신하였다. 이기심이 지배하여, 왕을 암살하는 또 하나의 기록이 추가된다. 왕과 백성이 하나같이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고 저들의 생애가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따라 꼴 지어지기를 거절하는 곳에는 평화와 안보가 있을 수 없고 평온과 안전도 존재할 수 없다.

그 친구든지⁴: 이 말은 얼마나 가혹하게 멸했는지를 보여 준다. 왕실의 모든 가족뿐 아니라, 모사와 대신들을 포함하여 친구들까지도 모두 멸절되었다. 백성들이 그러한 왕을 선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특별히 선왕을 섬기던 군대장관으로서 자신의 안전을 염려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오므리에게는 달리 대했다. 다른 사람을 위태롭게 하는 사람은 곧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하신 말씀같이 되었으니⁵: 흔히 선지자들의 예언은 하나님의 작정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예고의 성격을 띤다. 하나님은 자신이 내다보는 일을 모두 작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선지자의 말이 심판의 선고인 때가 있다. 악한 통치자에게 내릴 형벌을 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권이다. 죄악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은 사망이다. 심판의 의지를 실행에 옮길 때 하나님의 판결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하늘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참조 왕하 9:7). 그러나 종종 저들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그렇게 했고, 복수하려는 동기로 움직였다. 그러한 저들이 그러한 동기에서 움직인 만큼 상당한 죄를 자초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했던 앗수르는 저들의 행위를 부추긴 이기적이고 잔인한 동기 때문에 훗날 벌을 받았다(사 10:5~13). 시므리도 바아사의 집에 내려진 심판의 본래 의도를 넘어서, 죽여서는 안 될 많은 사람을 죽인 것 같다.

그 헛된 것으로⁶: 우상숭배를 말한다(참조 신 32:16, 21; 삼상 12:10, 21; 렘 8:19). 사람이 자신의 손으로 신을 만들고 그 앞에 몸을 굽혀 경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러한 행동의 어리석음을 거듭거듭 밝히고 있다(시 115:4~8; 사 41:21~29; 44:9~20; 렘 10:3~8).

칠 일 동안⁷: 통치기간이 채 1년도 안 되는, 며칠 혹은 몇 달로 주어진 경우가 자주 나타난다(왕하 15:8, 13; 23:31; 24:8; 대하 36:2, 9).

깁브돈⁸: 24년 전 바아사는 나답이 깁브돈을 포위하고 있을 때 그를 쳐죽였다(15:27).

오므리⁹: 엘라는 디르사에 있는 자기의 궁내대신의 집에서 취해 있는 동안에 시므리에게 죽임을 당했고(9절), 그 소식이 깁브돈에 있는 군대에 전해지자 곧 저들은 오므리를 왕으로 삼았다. 이 사건은 특히 로마 군인들이 좋아하는 관례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로마에서 황제가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 저들의 군사령관에게 곧잘 자색 옷을 입히곤 하였다.

성이 함락됨을¹⁰: 시므리의 통치기간이 고작 7일에 불과한 점으로 보아(15절),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성을 포위했을 것이다. 오므리가 성을 포위하자마자 곧 함락시킨 점을 보면 도성 내부로부터 도움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왕궁 위소¹¹: 들어가서. 왕궁 안의 가장 견고한 요새로 들어 간 것 같다. 시므리는 왕궁에 불을 놓아 그 가운데서 죽었는데 동방 역사에는 그와 유사한 사례가 많이 있었다.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¹²: 시므리는 고작 7일 동안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었지만 가장 오래 왕위에 있었던 왕들이 받았던 것과 같은 단죄를 받았다. 그의 죽음은 열왕기의 기자가 이스라엘 모든 군주의 역사에서 이끌어 낸 교훈, 곧 저들이 여로보암의 죄를 고집스럽게 따라감으로써 나라와 백성들에게 저주가 임하여 결국 왕실마다 수치스럽고 피비린내 나는 종말을 맞았음을 보여 주는 예증이 된다.

 

202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