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속에 위인전> 유다왕 아사의 통치
장지원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¹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²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³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⁴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⁵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⁶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아사와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 사이에⁷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⁸
사람을 유다 왕 아사와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아사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그 신하의 손에 넘겨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는
아람의 왕 헤시온⁹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¹⁰에게 보내며 이르되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¹¹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바아사가 듣고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중단하고¹² 디르사에 거주하니라
이에 아사 왕이
온 유다에 명령을 내려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여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¹³
아사의 남은 사적¹⁴과 모든 권세와 그가 행한 모든 일과 성읍을 건축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그는 늘그막에¹⁵ 발에 병이 들었더라
아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조상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사밧¹⁶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상 15장 9-24절은 유다왕 아사의 종교 개혁에 대한 기록이다. 아사는 장기간 통치하면서 철저한 개혁을 시행한다. 그러나 산당만은 없애지 못한다. 그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유다에 평안을 주셨다(대하14:6-15).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¹: 동방의 관례와 같이 유대인들은 어떤 남자의 조상을 아무리 관계가 멀어도 아버지라고 일컬었고 여성일 경우에는 어머니라 불렀다(참조 창 3:20; 10:21; 17:4; 36:43). 마아가는 아비얌의 모친였으므로 아사 왕의 할머니였다. 마아가는 태후라 칭해졌는데, 이는 그녀가 궁중에서 태후라는 영예로운 지위에 있었으며 더구나 당시에도 여전히 그녀를 매우 존경했음을 나타낸다.
정직하게 행하여²: 아사의 통치는 유다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선지자 아사랴와 하나니(대하 15:1, 2; 16:7)가 여호와의 도에 행하려고 애쓰는 그 왕을 지도하고 영감을 주었다. 열왕기는 흥미를 끄는 이 치세에 관한 사항을 간단하게 몇 가지만 언급하지만 역대기는 훨씬 더 자세히 보도한다(대하 14:1~16:14).
쫓아내고³: 나라에서 남색하는 자들을 완전히 쫓아내려는 그의 노력의 성과는 그다지 크지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아들 여호사밧에게 그 일을 완성하도록 위탁했기 때문이다(왕상 22:46).
우상⁴: 히브리어 미플레세트(mipleset). 이 단어는 여기와 평행 구절인 대하 15:16에서만 사용되었다. 그것은 가증스럽고 충격적인 어떤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매우 기괴한 종류의 어떤 음란한 형상을 의미했음이 분명하다. 그런 우상을 만든 마아가의 행위는 극악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는 노령에 높은 지위에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내쳐졌고 우상은 공중 앞에서 불태웠다.
산당은 없이 하지 아니하니라⁵: 아사는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이 하고” 나라에서 부패한 산당을 제하기 위하여 열렬한 노력을 기울였지만(대하 14:3~5) 그의 노력이 온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받들어 드렸으니⁶: 르호보암의 치세 동안(14:20) 시삭이 탈취해 간 성전의 보물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아비야와 아사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⁷: 아사 왕이 다스리기 시작한 첫 10년 동안에는 그 땅에 평화가 있었다(대하 14:1, 6). 아사 왕 15년에 그는 구스 왕 세라의 침략군을 맞아 대승을 거두었다(대하 14:9~15; 참조 15:10).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적대 관계에 놓인 것은 그 후의 일이었을 것이다.
라마를 건축하여⁸: 세라에게 아사 왕이 대승을 거둠으로,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가운데” 우거하는 많은 자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았기”(대하 15:9) 때문이다. 바아사는 자신의 신민이 이런 식으로 아사에게 귀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라마를 건축하여 변방 통제를 강화하였다. 라마는 예루살렘 북쪽 약 1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한 성읍이었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국경선 바로 가까이 있었다.
헤시온⁹: 솔로몬의 대적이었던 르손이거나 르손의 아버지였을 것이다(11:23). 솔로몬 시대부터 아사에 이르는 짧은 기간에 아람은 엄청난 군사 강국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이제 아사는 성전의 보물을 주고 벤하닷의 군대를 사서 바아사의 군대를 물리치려 하였다. 벤하닷이라는 한 왕의 기념비가 몇 년 전에 발굴되었는데, 그것에는 그의 모습이 나타나고 아람어 명각도 실려 있다. 어떤 학자들은 그 왕이 바로 이 벤하닷일 것이라고 여긴다.
벤하닷¹⁰: 벤하닷 I세를 가리킨다. 벤하닷 II세도 있었는데 그는 아합 왕 때의 사람이었고(20:1, 34), 벤하닷 III세는 하사엘의 아들로서 여호아하스와 동시대 사람이었다(왕하 13:24, 25).
이스라엘 성들¹¹ 공격당한 성읍들은 북방 곧 아람의 국경 근처에 있었다. 이욘은 헐몬산 서쪽 곧 레바논과 동 레바논(Anti-Lebanon) 산맥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단은 갈릴리 호수 북쪽 38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다. 아벨벧마아가는 단에서 3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고, 긴네롯은 갈릴리(긴네렛) 호안(湖岸)에 있었다. 납달리 땅은 앞에 나온 성읍들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으로,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었다. 20:34에 비춰볼 때, 위에 언급된 성읍들을 적어도 아합 왕 때까지 아람이 점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참조 408쪽 지도).
건축하는 일을 그치고¹²: 아사의 정책은 바아사의 위협을 제거하려는 절박한 목적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적절하거나 현명한 정책은 아니었다. 아사는 구스 사람 세라가 그 땅을 침략해 왔던 위기의 때처럼(대하 14:9~15) 다시 한 번 여호와를 의뢰했어야 하였다. 자신이 어떤 난국에 처했든, 이방 왕의 도움을 얻기 위해 여호와의 전의 보물을 이용할 권리가 그에게 없었다. 이 문제로 그는 선지자 하나니의 책망을 들었지만 화를 내었고,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었다(대하 16:7~10). 훗날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와 비슷한 책망을 하였는데, 이는 저들이 하나님보다 애굽을 더 의뢰하였기 때문이다(사 30:1~17).
그것으로 베냐민과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¹³: 아사는 강력한 군사 정책을 펴서 요새를 건축하였고,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대하 14:6, 7)을 만들었다. 바아사가 베냐민 지파에 속한 라마 곧 지금의 에르-람(er-Ram)에서 물러간 후, 아사는 라마 동편 약 3킬로미터 지점에 더 강력한 요새지를 택하여 게바(Geba)를 건축하였는데, 그곳은 지금의 제바(Jeba)로, 단구(段丘)의 꼭대기에 세워져 북쪽으로 나 있는 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요새는 미스바로, 어떤 학자는 그곳을 북서쪽 약 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지금의 텔 엔-나츠베(Tell en-Nas.beh)로 본다. 라마를 요새화하기 위해서 바아사가 모아 들였던 자재들을 아사가 게바와 미스바를 요새화하는 데 사용하였다. 미스바는, 느부갓네살이 임명한 유다의 총독 그다랴가 자신의 본부로 택하고 세겜과 사마리아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간선도로를 관할하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렘 41:1~5) 강력하고 중요한 요새였음이 분명하다.
아사의 남은 사적¹⁴: 아사의 남은 사적들 중 얼마는 역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스 사람 세라와 맞붙은 전쟁, 아사 15년에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큰 경축 행사, 선지자 하나니를 옥에 가둔 일, 백성을 압제한 일, 말년에 병이 났을 때 여호와께로 가지 않고 의사에게 간 일 등이다.
늙을 때에¹⁵: 대하 16:12에 의하면 이 일은 아사 왕 39년에 있었다.
여호사밧¹⁶: 본 주석이 사용하는 연대 계산법에 의하면 여호사밧은 부왕이 죽기 전에 한동안 공동 통치를 하였다. 분명히 아사는 쇠퇴해 가는 자신의 건강 때문에 아들에게 국정의 임무를 수행하는 일을 돕도록 했을 것이다.
202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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