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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위인전> 다윗을 저주하는 시므이/장지원

노파 2025. 6. 2. 00:02

 

<성경 속에 위인전> 다윗을 저주하는 시므이

장지원

 

 

다윗 왕이 바후림¹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²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³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⁵ 사악한 자여 가거라⁴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⁶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⁷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⁸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⁹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¹⁰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¹¹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¹²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¹³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¹⁴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더라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피곤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¹⁵

 

<노트> 구약성서 사무엘하 16장 5-14절은 다윗이 시므이의 저주의 말을 잘 참았다. 그는 터무니없는 시므이의 말에 대해 시비를 가리려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징계로 인식하고 잘 인내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징계를 참는 모범을 보였다.

바후림¹: 예루살렘에서 요단강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한 성읍(참조 3:16 주석). 오늘날 스코푸스 산 동쪽 라스 엣-트밈(Ra^s et-Tmi^m)을 가리킨다.

시므이²: 시므이는 베냐민 지파였다. 다윗이 강대해졌을 때 근신 중에 있던 이 지파는 기회만 오면 언제든지 다윗에게 대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므이가 이전에 다윗에게 불충했다는 어떤 언급도 없다. 그러나 역경을 당하자 그는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이전에 다윗을 공경하였으나 이제는 욕하고 저주했다. 그러한 정신은 사단이 불러일으킨 것으로, 그는 이미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면서 기뻐한다.

돌을 던지니³: 그 길은 좁은 계곡을 따라 나 있고, 시므이는 한 쪽 편에, 다윗과 그의 무리는 다른 쪽 편에 있었을 것이다(9절에서 아비새는 “건너가”도록 허락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시므이는 직접 붙잡히지 않고 돌로 귀찮게 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서 도망자들을 나란히 따라갔다.

가거라⁴: 문자적으로 “없어져라” 혹은 “나가라.” 시므이는 다윗의 불행에서 즐거움을 얻었고, 왕에게 증오에 찬 저주를 퍼부으며 나라 밖으로 떠나라고 말하였다.

피를 흘린 자여⁵: 다윗이 성전 짓기를 원했을 때에 주께서 그것을 허락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피를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기”(대상 22:8) 때문이다. 다윗이 여러 전쟁에 참여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대항하는 전쟁이었고, 이스라엘을 동방의 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 전쟁들은 다윗이 개인적으로 무자비하거나 “피 흘린 사람”이라고 전혀 증거하지 않는다. 시므이가 사용한 이 성급한 말들은 근거 없는 모함이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736).

(비루한 자여: (제임스왕역(KJV)에는 “man o. Belial”[벨리알의 사람]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비루한”으로 번역된 “벨리알”은 “무가치함” 혹은 “사악함”을 의미한다. “벨리알의 사람”이란 비루한 불한당을 가리킨다(참조 삿 19:22). 히브리어로 악한 여인은 “벨리알의 딸”(개역한글판에는 “악한 여자”)이라고 불린다(삼상 1:16). 고후 6:15에는 그 말이 의인화되어 있다. 시므이는 악한 기질을 지닌 사람이었다. 다윗을 비방하는 이 욕설 가운데 그의 악한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 대신에⁶: 이 구절은 시므이가 보인 증오와 적의의 실제 이유를 설명한다. 그가 원한을 품은 이유는 이스라엘의 왕위가 사울의 집에서 취해져 다윗의 집에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울을 거절한 분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 시므이의 고소는 사실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라를…붙이셨도다⁷: 여호와께서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여, 다윗의 나라가 압살롬의 손에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은 사실이나, 그 이유는 시므이가 말한 것과 사뭇 달랐다. 다윗의 양심은 그에게 닥친 돌연한 비운의 책임이 다윗 자신에게 있음을 엄히 말하고 있었다. 주께서는 다윗 왕이 밧세바와 우리아에게 저지른 죄 때문에 심판이 닥쳐 올 것을 경고했었다(12:10~12). 다윗은 자신이 형벌을 받아 마땅함을 알았으나, 형벌을 그토록 오래 지체시킨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놀랍게 여길 뿐이었다. 하나님의 공의만큼이나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을 잘 알고 있는 다윗은 절망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에게 다시 나라를 회복시킬 때를 바라보았다.

이 죽은 개⁸: 참조 삼상 24:14; 삼하 9:8. 아비새가 볼 때 다윗을 저주하던 시므이는 멸시받아 마땅한 속물이었다. 무자비하게도 그는 다윗의 불행을 악용하였고, 따라서 살려두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다윗은 아직 왕이었고 그에게 퍼붓는 이러한 모욕을 당할 필요가 없었다.

저주하라 하심이니⁹: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모든 고통은 하나님의 손에서 왔고, 따라서 시므이의 이 비방도 하나님의 허락에 의한 것이라 믿었다. 그는 시므이의 비난을 제지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다만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에만 마음을 썼다. 지금 당하는 이 어려움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왔으므로, 시므이를 훼방하려 한다면 주의 뜻을 대적하는 일이 된다고 생각했다.

할 자가 누구겠느냐¹⁰: 주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여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한다면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겠으며, 누가 그를 대적하겠는가? 다윗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¹¹: 다윗은 여기서 왕위뿐 아니라 왕의 생명까지 취하려는 압살롬을 터놓고 질책한다. 혈육인 압살롬이 아버지를 대적하여 그의 생명을 취하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시므이의 행동은 그렇지 않다. 그는 사울의 집에 속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그가 사울의 집에서 왕위를 취해 간 자에게 원한을 품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버려 두라¹²: 시련의 때에 다윗 같은 태도를 보일 만큼 자비를 지닌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시므이에게 “이제 되었으니 그만 중단하라”고 명령하기가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그렇게 믿는 것처럼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통탄스러운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잘못을 변명할 빌미를 주었다. 그러나 회개와 깊은 통회 후에는 자신을 변명하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고 그가 취했던 행동을 정당화하지도 않았다. 주께서 꾸짖을 때 그는 겸손히 책망을 받아들였다. 심판이 그에게 임했을 때 그는 그것을 피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겸비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자비를, 주의 뜻에는 복종을 보여 주었다.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통해 다윗은 청렴한 성품과 영혼의 고결함을 드러냈다.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¹³: 다윗은 여호와가 동정심과 자비가 크신 하나님임을 알고 있었다. 다윗은 자신의 신하 중 한 사람에게 능욕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보고 아신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얻었다. 아마도 바로 이러한 고난 때문에 주께서는 자비로써 특별한 보상과 축복을 대신 내리실 것이었다.

저를 향하여¹⁴: 다윗과 그의 백성들이 길을 따라 걷고 있을 때 시므이는 반대쪽 산비탈로 따라갔다. 즉 시므이는 계곡 한쪽 편에, 다윗은 다른 편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거기서 쉬니라¹⁵: 이 구절에서 다윗과 그의 일행이 멈추었던 장소가 어디인지 언급할 필요가 있다. 70인역 루키아누스 판(版)의 일부 필사본에는 “요단강 옆”이라는 말이 덧붙여 있다. 요세푸스도 그 독법에 동의한다(Antiq- uities vii. 9. 4). 이곳은 아마도 다윗이 전에 후새와 합의하여 그에게 소식을 들을 때까지 머물기로 했던 장소일 것이다(15:28).

 

202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