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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위인전> 다윗의 신하들/장지원

노파 2025. 5. 16. 00:02

 

<성경 속에 위인전> 다윗의 신하들

장지원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¹ 만 팔천²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³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⁴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⁵이 되고

아히둡의 아들 사독⁶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⁷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⁸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⁹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¹⁰들이 되니라

 

<노트> 구약성서 사무엘하 8장 13-18절은 다윗이 통치자로서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들을 만한 일이 없었다는 데서, 그의 신하들 역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에돔 사람¹: (제임스왕역(KJV)에는 “아람 사람”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70인역과 수리아역과 몇몇 히브리어 필사본에는 “에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평행 구절인 대상 18:12에도 “에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혼동할 수 있는 두 이름에 관해서는 삼하 8:12의 주석을 참조하라). 에돔의 “염곡”에서 격퇴했다는 사실로 보아, 에돔 사람을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왕하 14:7; 시 60편 표제; 연속되는 사건임이 확실한 삼하 8:14 주석도 참조하라).

일만 팔천²: 요압의 동생 아비새가 다윗의 장수로 임명되어 18,000명을 죽였다(대상 18:12). 요압도 같은 장소에서 에돔 사람 12,000명을 죽였다(참조 시 60편 표제). 요압이 “에돔의 남자를 다” 쳐서 죽인 회전(會戰) 기록도 있다(왕상 11:15, 16).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³: 다윗의 군대가 염곡에서 에돔 사람들에게 대승을 거둔 다음(삼하 8:13; 대상 18:12), 다윗은 이전에 아람에 수비대를 둔 것(삼하 8:6)과 동일하게 에돔에 수비대를 두었다.

군대장관⁴: 다윗이 적국에게 거둔 승리들을 열거한 후 사무엘서의 저자는 왕국의 주요 관료들을 간략히 요약하여 소개하는데(16~18절), 역대기의 기자도 그렇게 하고 있다(대상 18:15~17). 대체로 동일한 관료 명단이 삼하 20:23~26에 다시 기록되어 있다. 요압이 이 직위까지 등용된 것에 대해서는 대상 11:6을 참조하라.

사관⁵: 일종의 비서실장 같은 요직임이 분명하다. 그는 국사(國事)와 특별히 왕의 교시(敎示)를 기록할 뿐만 아니라 왕의 고문이기도 하였다. 다윗의 사관인 여호사밧은 동일한 직무를 솔로몬 통치 초기까지 유지하였다(왕상 4:3).

사독⁶: 여기서 사독과 아히멜렉이 제사장으로 올라있지만 대제사장인 것이 분명한데, 이는 목록이 왕국의 고등 관리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사독은 다윗의 통치 역사 초기에 이미 등장하여,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해 올 때 아비아달과 함께 이름이 거론된다(대상 15:11). 다윗 통치기 동안 그 두 사람은 동료로서 반복하여 이름이 거론되는데, 분명 동등한 위치였을 것이다.

다윗이 왜 두 명의 대제사장을 거느린, 퍽 이상하게 보이는 조치를 취했는지 세 가지 이유가 제시되었다. (1) 두 제사장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 자손의 반차를 각각 대표하였다(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이 언급된 대상 24:1~6을 참조하라). (2) 오랜 전쟁 끝에 유다와 이스라엘을 통일하면서 다윗은 대제사장직을 두 가문에 분배하여 국가의 종교적 정서 연합을 공고히 하기를 희망했는지 모른다. 아비아달의 제사장 반차는 다윗에게 협조했다고 하여 사울에게 거의 말살당했지만(삼상 22:9~20), 사독으로 대표되는 분파는 최소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까지는 사울에게 계속 충성했다(대상 12:23~28). (3) 여호와께 대한 국가적인 경배는 아직 중앙 집중화되지 않았는데, 이는 법궤가 예루살렘에 있는 반면에 성막은 놉 대학살 이후 이전하여 기브온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위 제사장 두 명이 필요했으며, 사독은 특별히 기브온에서 봉사한다고 언급되어 있다(대상 16:39, 40). 사독과 그 동료 관리들의 역사에 관해서는 이어지는 아히멜렉 항목을 참조하라.

아히멜렉⁷: 아비아달의 아들로 언급된 곳은 이곳뿐 아니라 평행 구절인 대상 18:16(“아비멜렉”으로 표기됨)과 “아히멜렉”으로 언급한 대상 24:6도 있다. 하지만 다윗의 공동 대제사장(참조 “사독” 주석)은 다윗의 생애 동안과 솔로몬 통치 시작에 이르기까지 반복하여 “사독과 아비아달”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 절과 역대기에서 사독과 아히멜렉에 대한 언급은 “필사상의 오류”와 “혼동된 이름”에 관련된 추론을 불러 일으켰는데, 특히 아히멜렉이 아비아달의 아들로, 아비아달이 아히멜렉의 아들로 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류라고 추정할 필요는 없다. 비평가들은 자신들이 가정한 문제가 고대의 저자나 필사자 편에서 저지른 실수만큼, 충분한 정보의 부족으로 쉽게 야기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고려하지는 않는다. 제사장 가문의 여러 세대에 대한 언급들이 분산되어 있기에 온전한 이야기를 이루지 못한다. 예를 들어, 미국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한 외국인이 미국 정치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상상해보자. 그 사람은 클리블런드(Cleveland) 대통령을 벤저민 해리슨(Benjamin Harrison)의 후임이라고 했다가 다른 곳에서는 그가 해리슨의 선임이라고 진술된 것을 이해하는 데 혼란을 느낄 것이다. 만일 그 시기의 역사 전체를 읽는다면 두 가지가 모두 맞음을 알게 될 것이다.

아히멜렉과 아비아달과 아비멜렉에 대한 진술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놉에서 도망자 다윗에게 진설병을 준 아히멜렉은 아히둡의 아들(삼상 22:9~12)이자 엘리의 후손이었는데, 이는 그의 아들 아비아달이 엘리의 집에 관한 예언을 성취시켰기 때문이다(왕상 2:27). 삼상 14:3의 계보대로라면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도움을 주었을 때 노인이었음이 틀림없다. 그의 아들 아비아달도 함께 직분을 유지했다면 같은 시기에 대제사장이었을 수 있다(참조 막 2:26 주석). 또는 엘리와 그 아들들의 관계나 그리스도 당시의 안나스와 가야바의 관계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처럼, 그의 아버지는 “명예 대제사장”으로, 그는 현직 대제사장으로 재직했을 것이다(참조 눅 3:2 주석). 사울이 아히멜렉 가문의 제사장들을 살해하자 아비아달은 제사장 직분의 상징인 에봇(참조 출 28:6~30 주석)을 가지고 도망하여, 추방된 다윗의 고문과 제사장이 되었다(삼상 20:20; 23:6, 9; 30:7). 아비아달과 사독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축제 예식에서 공동 대제사장으로 다시 언급된다(대상 15:11, 12). 그 후로 사독과 아비아달은 다윗의 후기 생애(삼하 15:29, 35, 36; 17:15; 19:11; 20:25)와 솔로몬의 통치 초기(왕상 4:4)까지도 반복하여 “제사장”으로 함께 거론된다.

본 장에 명시된 대로(1~15절) 다윗의 군대가 여러 대적들에게서 승리하고 다윗이 왕국을 통합하며 국내의 사법질서를 안정시킨 후에야 다윗의 고위 관료 명단이 등장한다. 하지만 평행 구절(대상 18:16)처럼 이곳에도 “제사장” 사독과 아히멜렉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잠시 그의 아들이 아비아달을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아히멜렉이 이 직무를 얼마 동안 맡았는지 혹은 왜 영구적으로 맡지 못했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이 없다. 아마도 그는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은 동안만 임시로 제사장에 임명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노인은 예기치 않은 사태-아마도 압살롬의 반역-로 말미암아 의도적으로 직임에서 물러났다가 복직했는지도 모른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알려주지 않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제사장 직분에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필사상의 오류라고 추정할 필요는 없다.

수 년 후 다시 한 번 공중 행사에 참여하는 아히멜렉을 보게 된다. 그 행사는 솔로몬 즉위식보다 앞선 것으로, 그때 연로한 다윗은 앞으로 짓게 될 성전의 봉사를 위해 레위인의 직무를 할당하였다. 아론 족속에 속한 두 가문의 대표인 “제사장 사독 그리고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대상 24:1~3; 참조 6, 31절)과 다윗 앞에서 제비를 뽑았다. 이 행사에 아비아달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전혀 놀랍지 않은데, 이는 당시에 그가 왕위를 찬탈하려는 아도니야의 기도(企圖)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이다(왕상 1:5~7, 19). 아비아달의 부재로 그의 아들 아히멜렉이 이다말 일가의 우두머리로서 엘르아살 집안의 사독과 마주하여 직분을 이행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따라서 그의 이름이 사독과 함께 거론되었다고 해서 대제사장 직분에 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는 아히멜렉이 제사장이라고 세 번 불렸지만(대상 24:3, 6, 31) 여기서는 그렇게 불리지 않기 때문이다. 솔로몬 즉위식 때에는 사독만이 대제사장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대상 29:22).

그러나 다윗이 죽기 전 솔로몬이 통치를 시작할 때 아비아달의 이름은 최초의 고위 관료직 명단에 여전히 거론되어 있다(왕상 4:4; 이 명단이 통치 시작 때에 언급된 것임을 시사하는 왕상 4:1을 참조하라). 솔로몬은 다윗이 그를 오랜 친구요 상담자로 존중한 것을 고려하여 그를 유임시켰을 것이다. 적어도 솔로몬은 다윗이 죽을 때까지는 아비아달을 제사장직에서 물러나게 하지 않았고, 위협적인 것으로 여긴 모반을 아도니야가 꾀했을 때야 비로소 그를 폐했다(왕상 2:22, 26, 27). 그때 이후로 사독만이 유일한 대제사장이었다(왕상 2:35).

그러므로 여러 이야기는 상호 보완적이며 모순된 것이 아니므로 수정할 필요가 없다.

서기관⁸: 고위직임이 분명하며 오늘날의 국무장관과 유사한 직분이다(참조 왕하 12:10; 18:37; 19:2).

 

브나야⁹: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장관이었던 브나야는 솔로몬의 즉위식에서 요압의 뒤를 이어 군대장관이 되었다(왕상 4:4).

대신¹⁰: 히브리어 코헨(kohen), 문자적으로 “제사장.” 여기서는 성직과 관련이 없는 일반 직책을 가리킬 것이다. 70인역에는 “궁내 대신”(princes of the court)으로 되어 있다.

 

2025.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