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 위인전> 므비보셋에 대한 친절
장지원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¹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²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³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⁴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⁵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⁶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⁷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⁸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⁹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¹⁰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¹¹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¹² 하니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¹³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왕이
사울의 시종 시바¹⁴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¹⁵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 명이라
시바가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모든 일을 종에게 명령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¹⁶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¹⁷ 먹으니라
므비보셋에게 어린 아들 하나가 있으니¹⁸
이름은 미가더라
시바의 집에 사는 자마다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¹⁹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²⁰
<노트> 구약 성서 사무엘하 9장은 다윗이 사울의 짐에 베푼 은총이 기록되어 있다.
사울의 집¹: 이제 다윗의 나라는 견고해졌고 왕권을 손에 넣으려는 사울의 후손들의 위협은 거의 없었다. 왕은 요나단을 기억하여 무엇인가 자비를 베풀고자 함으로써 관대한 성품을 나타냈다.
요나단을 인하여²: 요나단은 길보아산 전투에서 아버지 사울과 함께 죽었다(1:4, 17). 그때 그의 아들 므비보셋은 겨우 다섯 살이었다(4:4). 여기에서 므비보셋에게 어린 아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이 이야기는 다윗이 왕권을 얻은 후 여러 해가 지난 후의 일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다윗은 요나단과 함께했던 숭고한 우정을 잊지 않았고, 친구에 대한 추억 때문에 몰락해 버린 원수의 집에 은총을 베풀고자 했다.
하나님의 은총³: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 의해 유발된 은총 곧 하나님이 인간 자녀들을 위해 끊임없이 행사하는 은총.
아들 하나가 있는데⁴: 생명에 위협을 느꼈던 므비보셋은 철저히 은둔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사울 집안의 가장 가까운 몇몇 사람만이 그의 거처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드발⁵: 요단강 동쪽 마하나임(17:27~29) 근처에 있는 한 장소. 마길은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때까지 그는 요나단의 절뚝발이 아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해 줌으로써 사울의 집에 은밀히 충성해왔다. 다윗이 사울의 집에 베푼 은총은 나중에 보답을 받는다. 다윗이 압살롬에게서 도망할 때 암미엘의 아들 마길은 다윗과 그의 군대에게 생계에 필요한 식량을 후히 공급함으로써 보답하였다(17:27~29).
므비보셋⁶: 대상 8:34과 9:40에서는 “므립-바알”(Merib-baal)이라 불린다. “부끄러움”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보셰트(bos∨et)는, 히브리인들이 인명을 표기할 때 이교 호칭인 “바알”(Baal)을 대체하여 사용한 말로 보인다. 이스보셋과 에스바알(참조 2:8 주석), 여룹바알과 여룹베셋(삿 6:32; 삼하 11:21)을 비교하라.
엎드려 절하매⁷: 므비보셋은 자신의 생명이 왕의 손에 달려있음을 깨달았다. 다윗이 마음만 먹으면 사울의 씨를 이 땅에서 완전히 말살시켜 대적자가 일어나 왕권을 얻으려는 일말의 시도나 가능성도 없애 버릴 수 있었다.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⁸: 므비보셋은 사울의 손자였고, 그의 어릴 적 기억에는 삼촌 이스보셋과 다윗의 투쟁이 남아 있었다. 그는 지금 왕 앞에 서서 다윗의 집에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이제 이후로 그는 왕의 명령을 신실히 수행하는 왕의 종이 될 것이었다.
무서워 말라⁹: 누구라도 므비보셋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이 사울의 후예의 생명은 다윗 왕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었다. 때때로 이런 상황은 모든 경쟁자를 몰살시키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다윗은 사울의 후손 중 하나라도 살아 있다면 자신의 보좌가 위태롭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의 관대한 마음과 요나단과의 약속이 그를 은총과 자비의 길로 가도록 이끌었다.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¹⁰: 지금까지 므비보셋의 생애는 은총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는 삶을 거의 절름발이요 도망자로 지내왔다. 그의 생명은 위험에 처해 있었으나 이제 고난은 끝을 보게 되었다.
사울의 밭을 다¹¹: 이 밭은 의심할 여지없이 다윗이 몰수하여 그의 소유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전에 사울에게 속했던 모든 소유를 므비보셋에게 돌려주고자 하였다. 이것은 놀랄 만큼 관대한 정신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기대하지도 못했던 자에게 주어진 엄청난 선물이었다.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¹²: 이 말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본래의 의미는 이러한 호의를 받는 사람은 앞으로 왕의 하사품을 받아 생활하게 된다는 것이며, 달리 말하면 그가 생활 연금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은 “이세벨의 상에서 먹”었다(왕상 18:19). 이 말은 단순히 왕국 전역에 흩어져 있었을 이 선지자들이 왕비에게 그들의 필요를 지원받았음을 가리킨다. 감옥에서 풀려난 여호야김 또한 “종신토록” 왕 앞에서 “항상 먹”게(왕하 25:29, 30) 하였다. 그것은 그가 살아 있는 날 동안 정규적인 급여가 제공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므비보셋의 경우 특별한 영예가 수반되어 다윗의 아들들과 동등한 자리에 앉았다(삼하 9:11). 그는 다윗의 자녀처럼 대우받았다. 이러한 대접으로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정을 느꼈고 상호간에 신뢰를 쌓게 되었다.
죽은 개 같은 나를¹³: 참조 삼상 24:14; 17:43. 동방의 들개들은 그 사회의 청소부였고 혐오감을 주었다. 죽은 개는 가장 경멸받는 것이었다. 이 말을 통해 므비보셋은 진정한 겸손과 깊은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 표현은 동방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과장된 말은 아니었다.
시바¹⁴: 시바는 책임감 있고 감화력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다윗의 신임을 받았고 사울의 가계에도 불성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삶 이상을 넘어서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참조 16:1~4; 19:24~30).
네 아들들과 네 종들¹⁵: 그 당시 아들 열다섯 명과 종 스무 명이 있었으므로 므비보셋에게로 넘겨진 사울의 재산은 상당했을 것이다. 므비보셋은 한낱 불운한 도망자의 처지에서 이제는 지위와 재산을 소유한 유복한 사람이 되었다.
종이 준행하겠나이다¹⁶: 사울의 종은 자신이 다윗의 종임을 고백한다. 시바는 왕의 모든 명령에 복종할 것을 서약한다. 나중에 그에게는 압살롬의 반역 기간에 충성심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16:1~4).
왕의 상에서¹⁷: 이 같은 표현이 세 번 나온다(참조 7, 10절). 이 말을 반복함으로써 그것의 중요성과 므비보셋에게 부여된 영예가 얼마나 큰지 보여 준다.
젊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¹⁸: 이 진술은 므비보셋은 이미 성인이 되었고, 요나단이 죽었을 때 므비보셋은 겨우 다섯 살이었으므로 그의 아버지가 죽고 다윗이 왕위에 오른 지 여러 해가 흘렀음을 지적한다(4:4). 우리가 아는 대로는 므비보셋에게는 미가라는 아들 하나밖에 없었고, 미가의 후손은 많았다(대상 8:35~40; 9:40~44).
예루살렘에 거하니라¹⁹: 므비보셋을 예루살렘에 머무르게 한 데에는 아마도 두 가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안전한 보호와 특별한 영예가 되었을 것이다. 다윗의 아들들과 함께 대궐에 거하면서 지속적으로 교제하는 것은 므비보셋을 다윗에게 더욱 가까이 이끌어서 다윗과 사울 가문 사이에 평화롭고 원만한 관계를 보장하도록 했을 것이다. 만일 므비보셋에게 악한 의도가 있어서 자신에게 베푼 환대에 충심으로 반응하지 않았다면, 그는 반역을 조장하는 다윗의 적들의 영향을 받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궁정에서 감시를 받게 될 것이었다. 반역의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았다는 것은 압살롬에게서 도망치던 다윗에게 시바가 한 증언에 잘 나타난다. 므비보셋의 이 종은 자기 주인이 불안한 상태를 틈타 나라를 사울의 가문에게로 회복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다윗에게 고소했다(참조 16:1~4; 19:24~30).
절뚝이더라²⁰: 신체의 불구 때문에 므비보셋은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예루살렘을 떠나지 못했다. 므비보셋이 예루살렘에 머물게 된 것은 그가 불충하다는 고소를 당하게 될 구실을 주었다(16:3: 19:25~27).
202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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