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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정지가 협박으로 보이듯, 사직도 협박처럼 보일 것-“나는 소아암 환자 지키겠다, 병원 떠나면 국민이 귀 닫을 것”

노파 2024. 3. 25. 08:44

“면허정지가 협박으로 보이듯, 사직도 협박처럼 보일 것”

 

이미정 단국대병원 교수 인터뷰
“나는 소아암 환자 지키겠다, 병원 떠나면 국민이 귀 닫을 것”

조선일보/안준용 기자/입력 2024.03.25. 03:00업데이트 2024.03.25. 08:27
 
이미정 단국대 교수 /단국대병원 제공
 

전국 대부분 의대 교수들은 25일부터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지난주 예고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충남 천안에서 소아암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는 바이털(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의사가 의료 전문 매체에 “사직서에 반대한다”는 기고문을 써 의료계 안팎에서 화제다. 지금까지 사직서 제출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교수는 없었다.

 

기고문을 보낸 이미정 단국대병원 소아청소년과장은 22일 본지 인터뷰에서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내면 그나마 의사들에게 눈과 귀를 열었던 국민도 다시 눈과 귀를 닫을 것”이라며 “환자는 물론 환자들을 맡기고 간 전공의를 위해서도 교수들은 사직서를 낼 때가 아니라 지금처럼 계속 묵묵히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일 단국대 의대 교수 회의에서 “항암 치료 중인 소아암 환자들이 있다”며 집단 사직서 제출에 반대했다. 이후 동료 교수가 이 교수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형식으로 “전공의들이 다치는데, 교수들이 하던 일을 계속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을 한 의료 전문 매체에 기고하자, 답장 형식으로 직접 반박 글을 보낸 것이다. 이 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국민 생명권 유지를 위한 의료 서비스는 어떤 경우에도 중단돼선 안 된다”며 “응급 의료와 암 수술 같은 필수 의료는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어떤 집단행동도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사직서 제출을 고민하는 동료 교수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다만 “전공의들도 남은 의료진에게 중환자·응급 환자들을 맡기고 간 것”이라며 “사직서 수리 전엔 교수들이 병원을 떠나는 게 아니지만, 많은 환자는 사직서 얘기만으로도 불안해하고 고통을 겪는다”고 했다.

 

소아암 환자는 매년 전국에서 1200~1500명 새로 발생한다. 교수들이 병원을 지키고 있는 지금까지는 진료·수술에 큰 차질이 없었지만, 교수들이 25일부터 진료 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이고 사직서까지 낸다는 소식에 환자 가족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급성 림프종 환자인 9세 아들의 치료를 위해 매주 충남 당진 집과 단국대병원을 오가고 있다는 A씨는 “교수님들마저 병원을 떠나면 지금도 힘겹게 버티고 있는 소아암 환자 가족들은 절망에 빠질 것”이라며 “교수님들이 사직서를 낼 일이 없도록 하루빨리 정부와 대화가 잘되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대학병원 근처에 작은 오피스텔을 얻어 소아암에 걸린 딸을 돌보고 있다는 B씨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데, 혹시라도 교수님들이 병원을 그만두고 아이가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할까봐 불안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전공의 이탈 후 환자들은 병원에 남은 의료진만 바라보고 있는데, 교수들이 사직서를 낸다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고 했다.

 

아래는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전공의들이 이탈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최근엔 비뇨기과 수술이 급한 소아암 환자가 있었는데, 수술 자체가 가능한 병원이 전국에 네 곳밖에 없다. 환자를 보낼 병원을 못 찾다가 겨우 서울의 한 병원으로 옮겼다. 교수들이 병원을 지키고 있는 지금까진 진료·수술에 큰 차질이 없었지만,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공개적으로 교수 사직에 반대한다고 밝히기 쉽지 않았을 텐데.

 

“같은 생각을 가진 교수도 더러 있지만, 많은 교수들이 ‘사직서를 내야 한다’고 하는 상황에서 반대 의견을 밝히긴 어렵다. 우리 교수 회의에서 ‘나는 현재 진료 중인 소아암 환자들 때문에 사직할 수 없다’고 한 것이고, 이후 나를 언급한 동료 교수의 기고가 나왔기에 ‘이번 기회에 내 생각을 제대로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정(오른쪽) 교수는 2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래도 환자에게 ‘마지막 보루’인 교수들은 끝까지 의료 현장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사진은 이 교수가 2022년 어린이 모델과 함께 단국대병원 홍보 영상을 촬영하는 모습./단국대병원 제공
 

−사직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의사들의 행동이 어떻게 평가받을지 그 ‘키’는 국민이 쥐고 있다. 환자들은 병원에 남은 의료진만 바라보고 있는데, 교수들이 사직서를 낸다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 정부가 ‘면허정지’ ‘사법처리’를 내세우는 것을 우리가 전공의에 대한 협박으로 보듯이, 교수들의 사직서 또한 일부 국민에겐 그런 협박으로 비칠 수 있다.”

 

−실제 교수들의 대량 사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각자 지켜야 할 환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러진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사직서만으로도 많은 환자들은 불안할 수 있고, 국민은 실망할 것이다. 전공의들도 더 비난받게 된다. 만약 실제로 많은 교수가 떠나게 되면 병원은 무의촌(無醫村)이 돼 정말 ‘의료 대란’이 벌어질 것이다. 그건 누구도 원하는 상황이 아니다.”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은 문제가 없다고 보는지.

 

“의사가 노동자로서 ‘수가 인상’과 ‘안정적 진료 환경’을 원한다고 했는데, 정부가 갑자기 ‘의대 2000명 증원’으로 답했다. 2000명은 교육 현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숫자다. 단국대는 40명도 겨우 가르치고 있는데, 당장 내년부터 120명이 된다. 대형 강의실도 없고, 해부학 실습은 물론 수련 병원 임상 실습에도 큰 차질이 생길 것이다. 내년 입학생들을 임상 현장에서 직접 가르쳐야 할 때 스스로 ‘내가 제대로 가르치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면 그때는 나도 책임지고 사직할 것이다.”

 

−정부의 ‘필수 의료 패키지’는 어떻게 평가하나.

 

“너무 부족하거나 구체적 내용이 없다. ‘고속도로 뚫겠다’고 하는데 무슨 돈으로, 어디에 길을 낼지는 안 나와 있다. 2000명 증원 이후에 ‘힘든’ 필수 의료는 더 외면받을 수도 있다.”

 

−사태 해결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느냐.

 

“교수들은 환자는 물론 환자들을 맡기고 간 전공의를 위해서라도 지금처럼 계속 묵묵히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 그러면서 국민 마음을 얻고, 정부에 대화를 촉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정부다. 정부가 전공의 처벌 절차부터 일단 중단시키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허심탄회하게 의사와 각계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 자리를 마련해주면 좋겠다. 진료 현장에 남아 어떻게든 ‘의료 대란’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는 의료진의 목소리에 대통령이 제발 지금이라도 ‘선입견’ 없이 귀를 더 크게 열어달라.”

 

 

<관련 기고> 이미정 단국대병원 교수 “사직하려면 ‘사직의 도리’ 다해야”

 

이미정 교수, 의료 매체에 기고

조선일보/입력 2024.03.25. 03:00업데이트 2024.03.25. 05:04
 
 
이미정 단국대 교수 /단국대병원 제공
 
 

이미정 단국대병원 소아청소년과장은 지난 22일 한 의료 전문 매체에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글을 보냈다. 기고문 주요 내용을 이 교수 동의를 얻어 그대로 소개한다.

 

먼저, 제가 사직은 지금 불가능하고, 내년 2월에 가능하다고 한 의견에 대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대학 업무 1년의 시작은 보통 3월이지만 우리 의대는 빠르면 1월 또는 2월입니다. 처음 1월에 업무를 맡았다면 본인이 그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되지 않는 특별한 상황 외에는 1년의 업무를 완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갑작스러운 사고 등과 같이 중간에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는 나쁜 상황이 된 경우 외에는, 사직을 하려면 최소한 업무를 정리하고 인계할 사람이 있으면 인계를 해주고, 인계받을 사람이 없으면 업무를 종결한 후에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사직서를 제출하면 그런 기간이 보통 한 달이 주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학생과 전공의들은 나름대로 고민하여 3월에 새로운 업무를 맡기 전에 사직해 나갔습니다. 물론 나가기 전에 우리에게 입원, 중환자실, 응급실 환자를 인계했고, 사직서와 임용 포기서도 제출하고 나갔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사직할 때 해야 할 의사로서의 도리는 물론 행정적인 업무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나갔습니다.

 

그러면 저도 그런 사직의 도리를 다하고 사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올 초에 2024년 1년의 업무를 완료하겠다는 묵시적 동의하에 병원, 학교 업무를 시작했고,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내년 2월까지는 업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의 학생 휴학과 전공의의 사직이 천재지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은 학생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으므로 올 6월에 예정된 강의와 올 2학기 실습 수업을 완료할 책임이 제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교수로서 사직을 한다면 내년 2월 말에야 가능하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에 교수 사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면 정말 한 달 후에는 병원과 학교를 떠나야 합니다. 교수님께서도 ‘교수의 사직서 제출이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실제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쇼”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쇼”를 저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쇼”가 아닌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정말로 한 달 있다가 병원, 학교를 떠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한 달 후에 병원을 떠나실 수 없을 겁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환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쇼”를 우리가 한다면 복지부, 정부에게 눈과 귀가 가려진 국민들은 “‘의사 새x’들이 우리를 버리고 떠나더니 이제는 ‘의사 새x 애미 애비’도 우리를 버리는구나”라고 욕을 더 할 것입니다. 그러면 떠난 우리 아이들이 더 크게 욕을 먹습니다. 게다가 지금 우리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눈과 귀를 열었던 국민들도 다시 눈과 귀를 닫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정부는 의새를 이길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의새는 국민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픈 환자를 버려두고 병원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국민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더 나쁜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공의들이 사직할 때 우리에게 중환자, 응급 환자를 포함한 필수 의료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들이 떠날 때 우리에게 인계를 했기 때문에 ‘의료 대란’은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떠나면 정말로 ‘의료 대란’입니다.

 

의사들은 노동자로서 ‘수가 인상’과 ‘안정적 진료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복지부, 정부는 그 요구에 전혀 걸맞지 않게 갑자기 2000명 의대 정원 증원으로 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의사 파업은 모든 선진국에서 여러 번 발생했고,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그 파업이 국민의 ‘생명권’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진행해야 합니다. 물론 상식적인 복지부, 정부라면 그런 상황이 되기 전에 우리의 의견을 경청해 정책에 반영했겠지요.

 

‘국민의 생명권’ 유지와 같은 사회의 필수 서비스는 어떠한 경우에도 중단돼서는 안 됩니다. 의사가 파업을 할 경우에는 응급 의료와 암 수술 등의 필수 의료는 중단되지 않도록 조치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의사 파업도 정당성을 얻을 수 없습니다.

 

현재 전공의들이 떠난 병원을 지키면서 필수 의료를 제공하는 의사가 우리 교수들입니다. 우리마저 사직을 하면 필수 의료를 제공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정말로 ‘의료 대란’이 일어날 것이고 변명의 여지없이 ‘의사’가 정말 ‘의새’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사직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제가 사직서를 제출한다면 제가 보던 환자에 대한 기록을 충실히 작성한 후 받아줄 병원과 의사를 확보해 모두 전원 보낸 후에 사직하겠습니다. 그 전에는 비록 지치고 힘이 들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의사로서의 역할을 모두 다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