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누굴 위한 제물이 돼야 하나?/시 장지원

노파 2026. 7. 4. 07:28

 

누굴 위한 제물이 돼야 하나?

장지원

 

 

조는 밤이 깊다

모두가 유령처럼

정체성도 없이 오가는 뜰

그러는 사이 지쳐가는 양들의 기진한 소리

차라리 빨리 나를 죽여 너희 죄의 값이나 치러라

 

순진하고, 어리숙한 인간들의 죄를 담보로

시들어가는 숫염소들

샛별의 그림자라지만

쨍그랑 떨어지며 쌓이는 돈궤의 동전 소리

기가 막히는 순간들

 

누구를 위한 제사인가?

누구를 위한 찬송인가?

누구를 위한 기도인가?

누굴 위한 제물인가?

잠 못 이루는 밤이 어두워 깊기만 하다.

 

<노트> 교회의 신앙적 상태는 그들을 가르치는 자들을 거슬려 증거된다. 그리스도가 거의 빠진 설교이기 때문에 교회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지경에 처해 있다. 그들은 영적 생애와 영적 분별력이 모자란 듯하다.

그들은 백성들-그들 앞에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을 통하여 힘을 얻는 경험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 죽게 된 백성들-에게 주의를 주기 시작한다. “너무 서두르지. 말라. 기다리면서 그대가 그것에 대하여 좀 더 알게 될 때까지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목사는 백성이 신선한 만나를 필요로 하고 있을 때 그 동일하고 건조한 이론을 설교한다.

바리새인 적 정신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보낸 기별에 참여하지 않아도 옛날의 좋은 이론만을 붙들면 좋고 안전한 자리에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옛날의 바리새인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며 그들의 실례는 자기만족의 자리를 떠나도록 목사들을 경고해야만 한다.

목사는 그 자신이 친히 그리스도의 품성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그는 진리를 숙고하며 구속의 비밀, 특별히 이때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명상하여야 한다.

왜 마음과 혀가 구원자를 찬양하는 데 사용되지 않는가?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구원받은 자들의 힘이 이 일에 쓰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와 구원의 교리는 교회 녹명책에 그 이름이 올라가 있는 다수에게 불가사의이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셔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면 그들의 이해의 더딤을 책망하실 것이다. 그분은 더디고,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나는 그대의 수중에 그대가 그 가치를 알아채지 못하는, 그대의 구원에 관계되는 진리를 맡겨 두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 24:45)라는 말씀이 교회들과 백성들에게 전파하는 목사들에게 발하여질 수만 있다면!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대들에게 말한다. 이 시간까지 구원의 위대한 계획과 연관된 성경 진리는 희미하게 이해되었을 뿐이다. 그 진리는 계속하여 열리고 확장되고 발전할 것인데 이는 그것의 저자처럼 거룩하기 때문이다. (가려 뽑은 기별 3권 186-188)

 

2026.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