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6월24일[대선지서-이사야7장3-9절]
남은 무리가 돌아 오다
장지원
3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4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5 아람과 에브라임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6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중에 세워 왕을 삼자 하였으나
7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8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육십오 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9 8절과 같음
<주> 3 스알야숩: 문자적으로는 “남은 무리가 돌아오다(돌아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와 그의 아들들을 백성에게 징조가 되게 하셨다(8:18). 이사야와 동시대의 인물인 호세아도 그의 아들들이 의미심장한 이름들을 가지고 있었다(호 1:4~9). 이사야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남은 무리가 돌아올 것이라는 이 기별을 전하였다(4:2, 3; 10:21 등).
윗못 수도: 성읍이 포위를 당한 때에는 언제나 물 공급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다. “윗못 수도”는 “성모 마리아의 우물” 또는 “동정녀의 샘”으로 알려진 기혼의 위쪽 저수지인 것으로 확인되었다(참조 제4권, 149). 이 샘은 오벨의 동쪽 가장자리에, 그리고 성전 지역의 남쪽에 있던 기드론 계곡에 위치하였다. 후에 히스기야가 그 유명한 수로인 실로암 터널을 만들어서(왕하 20:20; 대하 32:30) 물을 이 기혼 샘에서 성안에 있는 실로암 못까지 끌어들였다. 아하스 시대에는 도성이 포위되었을 때 이 수원(水源)이 성 밖에 있었을 것이므로 적과 마주치지 않고 물을 성안으로 들여오는 방법에 대하여 깊은 연구가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나가서: 비록 아하스 자신은 악한 왕이었지만 여호와께서는 다윗 왕조의 몰락을 허락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으셨다(참조 창 49:10; 삼하 7:12, 13). 따라서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유다를 보존하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의지를 왕에게 알리도록 이사야가 보내심을 받았다.
4 종용하라…두려워 말며: 하늘에 계신 여호와께서 도우신다면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 왕은 하나님 신뢰하기를 거절하였으며, 그 결과 자신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 닥쳤을 때 그는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 모욕적인 표현. 겉보기엔 강력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힘이 빠져 쇠약해진 이스라엘과 아람 그리고 그 왕들은 타다가 남아서 연기 나는 부지깽이들에 불과하였다. 그들은 다 타버리고 남은 것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불빛이 한 번만 더 반짝이고 나면 그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 처지에 있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아하스가 이스라엘이나 아람과 관련해서 지혜로운 정책을 펼치도록 지금 그 나라들이 맞이할 운명을 예언하고 계신다. 아하스가 염두에 두어야만 할 것은 힘을 잃어 가는 아람이나 이스라엘이 아니라 떠오르는 세력인 앗수르였다. 이어지는 40~50년 동안 유다는 앗수르에게 거의 삼킨 바 되었지만, 아하스는 불가피하게 앗수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정책을 추구하고 있었다.
6 유다를 쳐서: 그들의 계획은 유다를 정복하여 그 땅을 점거하는 것이었다.
세워 왕을 삼자: 그들은 아하스를 폐하여 다윗 왕조를 몰락시키고 새 왕으로 “다브엘의 아들”을 보좌에 앉히고자 하였다. 이 새 왕의 신원은 알 수 없지만 “다브엘”이라는 이름이 “선한 신”이라는 의미를 지닌 아람어인 것으로 보아 그가 아람 사람이었던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스라엘과 아람은 다윗의 보좌에 새로운 꼭두각시 군주를 앉히기로 서로 합의하였다.
7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다윗의 가문은 몰락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스라엘과 아람이 세운 계획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집에 대하여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다(참조 창 49:10; 삼하 7:12). 그는 사람들이 유다에 대한 자기의 목적을 방해하거나 메시야가 나오실 그 왕조를 몰락시키도록 허락지 않으실 것이었다.
8 육십오 년 내에: 이 예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치 않다. 이 주석에서 임시로 채택하고 있는 왕들의 연대기(참조 제3권, 107; 제4권, 76, 77; 왕상 6:1 주석)에 따르면 이 예언은 BC 734년경에 선포된 예언이다. 또한 그 어떤 연대기도 아하스가 742년 이전에 즉위했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722년에 사마리아가 앗수르에 의해 함락됨으로 역사를 마감하였다. 현대 학자들 중에는 이 구절이 후대의 어떤 사람에 의해 삽입된 것으로 단정짓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이 말이 8절과 9절 사이의 사상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이 같은 삽입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65라는 숫자가 이사야서의 원문에 없었다고 생각할 만한 어떤 결정적인 이유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수가 원문에 있었다는 추정 하에 이 예언의 성취에 대한 두 가지 가능한 해석이 제기되었다. 734년부터 65년 후는 670년으로 당시는 엘살핫돈(681~669년)이 앗수르를 다스리던 때였다. 엘살핫돈(또한 그 다음에는 그의 후계자인 아슈르바니팔[성경에서는 오스납발])은 한 무리의 메소보다미아 사람들을 이전 북방 왕국의 영토로 이주시켰다(스 4:2~10). 이 일은 이스라엘이 한 국가로서 종말을 고하고 나서(BC 723/722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신의 지배 하에 있는 민족들을 사방으로 흩어버린 앗수르의 정책은 그들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민족적 동질감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말살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따라서 열 지파에 속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종종 “버림받은” 민족들로 일컬어 왔던 주변의 주민들 속에 흡수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들 중 얼마가 유다 사람들이 사로잡혀 갈 때 함께 사로잡혀 가서 바벨로 유수 이후에 그들과 함께 돌아왔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전 유다 왕국의 후신인 유다 공통체의 일원으로 돌아왔을 뿐, 그들이 이스라엘 왕국의 후신이 된 것은 아니었다.
제기된 해석들 중 다른 하나는, 65년이라는 기간이 웃시야 또는 여로보암 II세의 치세에 지진이 발생했던 때를 전후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지진은 아모스가 언급한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의 표였다. 만일 그렇다면 이사야는 여기에서 단순히 723/722년에 있을 사마리아의 함락을 일컫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해석은 가능성은 있지만 입증하기는 불가능한 해석이다. 이는 지진이 발생한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65년이라는 기간의 명확한 기산점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늘날 이 예언의 의미를 확정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다. 아마도 이 같은 구체적인 예언이 이 예언이 주어진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명확하고 의미심장했을 것이다. 이 예언에 대한 이해가 우리보다는 그들에게 훨씬 더 중요하였음이 분명하다.
9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아하스가 베가와 르신이 자신들의 도모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보증의 말씀을 믿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는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히 11:6), 또한 그분의 지혜롭고 자비로운 지도력에 자신을 맡길 수도 없다.
2026.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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