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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엘리후의 출현

노파 2026. 5. 1. 00:02

 

욥-엘리후의 출현

장지원

 

 

욥이 스스로 의롭게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의 대답이 그치매¹

람 족속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²가 노를 발하니

그가 욥에게 노를 발함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³

또 세 친구에게 노를 발함은

그들이 능히 대답지는 못하여도⁴

욥을 정죄함이라

엘리후가 그들의 나이 자기보다 많으므로

욥에게 말하기를 참고 있다가

세 사람의 입에 대답이 없음을 보고 노를 발하니라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발언하여 가로되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참고 나의 의견을 감히 진술치 못하였노라

내가 말하기를⁵ 날이 많은 자가 말을 낼 것이요

해가 오랜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 하였으나

사람의 속에는 심령⁶이 있고

전능자의 기운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시나니

대인⁷이라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요

노인이라고 공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⁸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보이리라

 

내가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고⁹

당신들이 할 말을 합당하도록 하여 보는 동안에

그 변론에 내 귀를 기울였더니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¹⁰

그 말을 대답하는 자가 없도다

당신들이 혹시라도 말하기를

우리가 지혜를 깨달았었구나

그를 이길 자는 하나님이시요¹¹

사람이 아니라 하지 말지니라

그가 내게¹² 말을 내지 아니하였으니

나도 당신들의 말처럼¹³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놀라서¹⁴ 다시 대답하지 못하니 할 말이 없음이로구나

 

그들이 말이 없이 가만히 서서 다시 대답지 아니한즉

내가 어찌 더 기다리랴¹⁵

나도 내 본분대로 대답하고¹⁶

나도 내 의향을 보이리니

내게 말¹⁷이 가득하고

내 심령¹⁸이 나를 강박함이니라

보라 내 가슴은 봉한 포도주 같고¹⁹

새 가죽 부대가 터지게 됨 같구나

내가 말을 발하여야 시원할 것이라²⁰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²¹

사람에게 아첨²²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자²³가 속히 나를 취하시리로다

 

<노트> 구약성서 욥기 32장은, 엘리후란 인물에 대한 소개와 엘리후가 발언하게 된 동기가 기록되어 있다. 엘리후는 욥과 세 친구의 발언을 오랫동안 주의 깊게 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 친구의 반론이 막혔기 때문에 자기가 나서게 되었다고 밝힌다. 여기서 그는 자신을 지혜 있는 사람으로 지식에 있어서 연장자보다 나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답이 그치매¹: 욥이 매우 격조 있게 변백했는데도 그의 친구들은 그를 완고하고, 고집 세고,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로 치부해 버렸다. 그들은 그의 변론에 대답하지 못했으나 감히 저들의 전통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욥이 비굴하게 자기 죄를 인정했더라면 그들은 만족했을 것이다. 솔직히 욥은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와 엘리바스, 빌닷, 소발 사이의 변론은 무승부로 끝이 났다.

엘리후²: 엘리후에 관한 정보는 한정되어 있다. 그는 이 책 앞에서도 언급되지 않고, 그가 말한 다음에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가계(家系)에 관해서는 이 책에 언급된 다른 어떤 사람에 관한 것보다 더 상세한 정보가 주어졌다. 엘리후는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다”(참조 삼상 1:1; 대상 12:20; 26:7; 27:18)라는 뜻을 지닌 아주 평범한 히브리 이름이다. 그의 부친의 이름인 “바라겔”은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라는 뜻이다. “부스 사람”은 엘리후가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가문임을 확인해 준다(창 22:20, 21. 참조 창 11:29). 어떤 이들은 “람”을 룻 4:19과 마 1:3, 4에 언급된 다윗의 조상 람과 동일 인물로 본다. 다른 이들은 그가 창 22:21에 언급된 나홀의 족속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³: 엘리후가 길게 말하는 동기는 하나님을 옹호하기 위함이다. 그는 욥의 과거는 별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철학자로서 한 가지 주제를 옹호하고자 하는데, 그의 명제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이다.

능히 대답지는 못하여도⁴: 엘리후가 보았을 때,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이 제시한 논리는 적절하지 못했다. 그는 욥의 생애와 고통 사이에 분명히 나타난 모순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하여 자기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 논리를 세우려고 한다. 엘리후는 욥의 친구들을 정죄하는 것만큼 욥도 정죄하지만, 그 이유는 다르다.

내가 말하기를⁵: 엘리후는 내심 번민했다. 그는 말하고 싶었지만, 건전한 판단과 전통은 연장자들이 먼저 지혜를 제시하도록 하라고 그에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심령⁶: 여기서 엘리후는 자기가 그 무리 가운데서 가장 연소하지만 감히 말하고자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총명이란 나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노인뿐 아니라 젊은이도 그것을 가질 수 있다.

대인⁷: 또는 “대중.” 70인역과 수리아역, 불가타역은 “노인”이라는 독법을 지지한다.

그러므로⁸: 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것은 나이나 신분에 제한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하여, 엘리후는 대담하게 자기 의견을 표명한다.

기다렸고⁹: 이 절은 엘리후가 욥의 친구들이 말한 내용을 주의 깊게 경청했음을 시사한다.

꺾어¹⁰: “죄를 깨닫게 하여.” 여기서 엘리후가 말하는 것은, 욥에게 죄를 깨닫게 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상대 친구들이 욥의 주장을 꺾지도 못했다는 의미이다.

그를 이길 자는 하나님이시요¹¹: 이 구절이 엘리후의 생각을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욥의 친구들이 제시했던 진술의 일부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나중의 견해에 따르면, 엘리후는 오직 하나님만이 욥의 변론을 이기실 수 있다는 핑계로, 저들이 욥을 설득하지 못한 것을 변명하지 못하도록 그 친구들에게 경고한다. 앞의 견해에 따르면, 이 구절은 오직 하나님만이 욥을 낮추실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 지혜로운 자들도 욥의 주장을 논박하지 못했다. 그들의 전승이나 교훈들도 효과가 없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들이 하지 못한 일을 이루셔야 할 것이다.

내게¹²: 욥의 신랄한 발언은 엘리후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엘리후는 좀 더 객관적으로 그 변론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곁에서 방청하는 입장을 취했다.

당신들의 말처럼¹³: 엘리후는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한다. 그의 세 친구들은 대체로 상호간의 견해를 반복했다. 엘리후는 그 토론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기여하겠다고 약속한다.

놀라서¹⁴: 이 말은 엘리후가 욥에게 하는 것이든지, 아니면 단지 덜 무례해 보이도록 하려고 3인칭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세 친구에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들이 욥의 주장을 꺾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을 꾸짖고 있는 듯하다.

어찌 더 기다리랴¹⁵: 이 구절은 “그리고 내가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번역할 수 있다. 잠잠한 연장자들을 다그치면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기 위해 큰 정열을 나타내고 있는 젊은 엘리후의 조급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도…대답하고¹⁶: 그는 결심한다. 엘리후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 친구들의 침묵을 최대한 오래 참았다.

말¹⁷: 20:2, 3에 나오는 소발의 진술과 비교하라. 욥의 친구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와는 반대로 엘리후에게는 “말이 가득”했다.

내 심령¹⁸: 문자적으로 “내 배의 영.”

포도주 같고¹⁹: 옛날에는 부대에 담긴 포도주가 발효되면 대개 가죽으로 만든 용기를 터지게 할 정도로 팽창시켰는데(참조 마 9:17), 그것은 표현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엘리후의 심령을 나타내는 적절한 예증이다.

시원할 것이라²⁰: 친구들이 긴 토론을 하고 있는 동안 내적인 압력은 높아가고 있었다. 드디어 터질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²¹ 엘리후는 진심으로 공정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개인적인 편견을 부정한다. 그는 나이나 지위나 개인적인 우정에 영향받기를 원치 않는다. 그의 철학은 분명히 그의 말을 듣는 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을 불쾌하게 할 것이므로, 그는 자기의 진술이 객관성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아첨²²: 장황하고 지나친 경칭을 사용하는 동방의 풍습은 잘 알려져 있다. 욥은 아첨을 정죄하며(17:5), 시편 기자(시 12:2, 3; 78:36)와 솔로몬(잠 2:16; 7:21; 28:23)도 정죄한다.

나를 지으신 자²³: 엘리후는 자기가 비열하게 아첨을 한다면 하나님이 자기를 죽이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약속에 충실하며, 따라서 긴 변론을 하는 동안 불성실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는다.

 

202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