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심

[시편31-1편] 내가 주께 피하오니

노파 2026. 2. 17. 00:00

2026년2월17일

[시편31-1편] 내가 주께 피하오니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¹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²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내게 귀를 기울여³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⁴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주는 나의 반석⁵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인하여⁶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저희가 나를 위하여 비밀히⁷ 친 그물에서 빼어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영⁸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⁹

내가 허탄한 거짓¹¹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¹⁰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¹² 아셨고

나를 대적의 수중에 금고치 아니하셨고¹³

내 발을 넓은 곳에¹⁴ 세우셨음이니이다

 

<노트> 본 시편은 다윗이 그냥 당한 고통과 괴로움을 주께 호소하는 탄식 시의 형태를 취한다. 그의 탄식은 내부적인 죄악과 외부적인 비방에 기인한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자신을 철저히 맡긴다. 그러면서 이 시의 끝부분에 이르러, 불의에 대한 탄식은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를 강하게 회복시키고 있다.

시편 31:1-8, 원수의 위협에 직면한 시인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원수의 올무에서 건져 달라고 호소한다.

서론: 시 31편은 고난으로부터 건져내 주시기를 간구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기도이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에 대한 참된 신뢰로 인해 활기가 넘쳐난다. 이 시는 핍박받는 자들이 당하는 고통과 고난의 때에 나타나는 희망을 묘사하는 다수의 탁월한 시적 영상들을 담고 있다는 것이 그 두드러진 특징이다. 어떤 사람들은 마온 황무지에서의 다윗의 경험을 이 시의 배경으로 여긴다(참조 삼상 23:19~26). 하지만 이 시는 그와 유사한 다른 여러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 시는 후스(Huss)와 루터(Luther)와 멜란히톤(Melanchthon)이 좋아했다.

내가 주께 피하오니¹: 참조 시 7:1 주석. 시 31:1~3은 시 71:1~3과 유사하다.

부끄럽게 마시고²: 참조 시 25:2.

귀를 기울여³: 참조 시 17:6 주석.

바위⁴: 히브리어 추르(s.ur). 참조 시 18:2 주석.

반석⁵: 히브리어 셀라(sela‘). 참조 시 18:2 주석.

주의 이름을 인하여⁶: 즉 주의 명예를 위하여 또는 주의 성품을 위하여. 이 구절은 매우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진정으로 드려진 이 기도는 탄원하는 자가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며 또한 기꺼이 자기 삶의 개인적인 문제들을 하나님의 더 큰 계획 속에 몰입시키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는 하나님 정부의 모든 운영에 그분의 영광이 달려 있음을 깨달아 알고 있으며 또한 만일 지금 그가 하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그 명예에 손상을 입게 되실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나님은 오직 그분의 거룩한 뜻에 일치된 방법으로 드려지는 그런 기도만을 응답해 주기로 약속한다. 이는 무엇이든 하나님이 행하는 일은 그의 변함없는 품성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응답받는 기도의 요건들을 갖추지 못한 채 “주의 이름을 인하여” 기도드리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이 같은 기도는 사실상 하나님께 그 기도에 응답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이 그 기도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신다면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에 손상을 입히고 그의 말씀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비밀히⁷: 동물의 덫은 야생 동물이 자신을 잡기 위해 놓은 올무를 볼 수 없도록 놓여졌다.

영⁸: 히브리어 루아흐(ruah.). 생명에 생기를 주는 소인(素因)으로 하나님에게서 기인된 육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에너지. 죽을 때에는 영이 하나님께로 가는 것으로 묘사되었다(참조 전 12:7; 행 7:59). 하지만 그 상태에서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시 146:4).

여기에서 시인이 하는 말은 예수가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이었다(참조 눅 23:46; 행 7:59). 이 말은 또한 베르나르(Bernard)와 후스(Huss)와 루터(Luther)와 멜란히톤(Melanchthon)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마지막으로 한 말로도 알려져 있다. 우리도 또한 곤경에 처할 때 우리의 문제를 안전하게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

나를 구속하셨나이다⁹: 이는 과거에 대한 증거이며, 현재의 확신이고 또한 미래에 대한 보증이다.

내가…미워하고¹⁰: 70인역과 수리아어역 그리고 히브리어 필사본들 중 하나에는 “주께서…미워하시고”라고 되어 있다.

허탄한 거짓¹¹: 아마도 헛된 관념으로서의 우상들을 일컫는 듯하다. 시인은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5절).

내 영혼을¹²: 인칭 대명사 “나를”에 대한 관용적 표현(참조 시 16:10 주석).

금고치 아니하셨고¹³: 참조 신 32:30.

넓은 곳에¹⁴: (제임스왕역(KJV)에는 “in a large room”[넓은 방에]로 되어 있음-역자 주). “널찍한 장소”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참조 시 4:1; 18:19).

 

2026.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