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2월15일
[시편30-1편]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¹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²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³
나를 고치셨나이다⁴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⁵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⁶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주의 성도들⁷아
여호와를 찬송하며⁸
그 거룩한 이름⁹에 감사할지어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¹¹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¹²
아침에는 기쁨¹³이 오리로다
<노트> 본 시편의 표제는 낙성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학자들은 이 표제가 B.C. 165년 유다 마키비우스가 성전을 청결케 한 이후에 붙여졌으리라고 추정한다. 당시 성전은 헬라의 가압에 의해, 이방신들에게 제사드리는 장소로 전략해 버렸다. 유대주의자들은 이에 대항하여 헬라 세력을 몰아낸 후, 성전을 청결케 했다. 이를 기념하는 날을 수전절이라 한다. 수전절마다 이 시로 하나님께 찬양하기 위하여 ‘성전 낙성가’라는 표제를 붙였다. 어쨌던, 이 시가 다윗의 저작인 것은 분명하다.
시인은 극도로 위험한 질병에서 건저주심을 감사한다. 그느느 백성들에게 함께찬양드리라고 권한다.
서론: 시 30편은 심각한 질병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큰 위험에서 회복된 것을 경축하는 감사의 시이다.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라는 표제에서 용어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다. 시 30편은 다윗이 그의 궁전 낙성식을 위해 지은 시일 가능성이 있다. 혹은 온역이 발생한 후에 미래의 성전터인,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제단을 봉헌하는 일을 위해 지어진 시일 가능성도 있다(대상 21:14~22:1). 이 시는 명백히 개인적인 시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그분께 깊은 감사를 나타내고 그가 질병에 걸려 있는 동안 자신이 경험한 바를 상세히 기술한다. 오늘날에는 수전절(하눅카[H.anukkah])에 이 시가 낭독되고 있다.
높일 것은¹: 생각과 애정의 최우선 대상으로 삼는 것을 의미함.
나를 끌어 내사²: 히브리어 딜리타니(dilli-tani). 달라(dalah)라는 어근에서 유래된 단어로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을 나타내는 데 쓰임(참조 출 2:16, 19). 시인은 2절과 3절에 언급되어 있는 위험들에서 자신을 끌어올려 주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한다.
부르짖으매³: 8~10절에 그가 부르짖은 내용이 나온다.
고치셨나이다⁴: 이 말은 은유적으로 정신적 고통을 제거하는 것을 나타내는 데 쓰일 수도 있다(참조 시 41:4). 하지만 여기서는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 둘 모두를 포함할 수 있다. 다윗은 재앙이 임한 때에 그의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바라보면서 비탄에 빠졌던 것 같다(참조 삼하 24:13~17; 시 30편 서론).
내 영혼을⁵: 즉 “나를”(참조 시 16:10 주석).
(음부: 셔올(s∨e’ol). 죽은 자들의 상징적 거처(참조 잠 15:11 주석). 시인의 병이 너무나도 심각하여 그가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고 보는 것이 이 구절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이다.)
무덤⁶: 참조 시 28:1 주석.
성도들⁷: 히브리어 하시딤(h.asidim). 참조 시 36편에 관한 추가적 설명.
찬송하며⁸: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을 때 우리는 그를 찬양하는 일에 다른 사람들도 함께하기를 바라게 된다(참조 시 9:11; 34:3 주석).
이름⁹: 곧 “기념물.” 하나님의 이름이나 성품은 그가 사람들을 다루신 일을 회상하는 데에서 드러난다.
잠깐이요¹⁰: 범죄하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자비를 위해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노염은 매우 짧다(8~10절).
그 은총은¹¹ 하나님의 노염과는 달리 그의 은총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계속된다(참조 시 16:11).
기숙할지라도¹²: 히브리어 린(lin), “밤을 지내다.” 여기에서 히브리어 본문은 “저녁에는 울음이 밤을 지내기 위해 올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있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기쁨¹³: 히브리어 린나(rinnah), “기쁨의 부르짖음.”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동사가 없이 단순히 “새벽에는 기쁨의 외침”이라고만 써서 아침에 갑작스럽게 맞는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열대 지방에서 태양이 박명(薄明)의 시간을 길게 갖지 않고 갑자기 지평선 위로 그 장려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듯이, 하나님의 사랑의 빛도 슬픔의 어두움을 순식간에 몰아낸다(참조 사 26:20; 54:7, 8).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면 슬픔의 밤은 언제나 기쁨의 아침에게 그 길을 양보할 것이다. 단어들이 다음과 같이 짝을 이루면서 대구법이 면밀히 유지되었다. “노염”과 “은총”, “잠간”과 “평생”, “저녁”과 “아침”, “울음”과 “기쁨.”
2026.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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