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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위인전> 솔로몬 왕국의 번영/장지원

노파 2025. 7. 1. 00:02

 

<성경 속에 위인전> 솔로몬 왕국의 번영

장지원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의 왕¹이 되었고

그의 신하들²은 이러하니라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³는 제사장이요

시사의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서기관이요⁴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⁵이요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사령관이요

사독과 아비아달⁶은 제사장이요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지방 관장의 두령이요 나단의 아들 사붓은 제사장이니

왕의 벗이요

아히살은 궁내대신⁸이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노동 감독관⁹이더라

 

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에 열두 지방 관장을 두매

그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위하여 양식을 공급하되¹⁰

각기 일 년에 한 달씩 양식을 공급하였으니

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브라임 산지¹¹에는 벤훌이요

마가스¹²와 사알빔과 벧세메스와 엘론벧하난에는 벤데겔이요

아룹봇에는 벤헤셋이니 소고¹³와 헤벨¹⁴ 온 땅을 그가 주관하였으며

나밧 돌 높은 땅 온 지방¹⁵에는 벤아비나답이니 그는 솔로몬의 딸 다밧을 아내로 삼았으며

다아낙과 므깃도와 이스르엘 아래 사르단 가에 있는 벧스안 온 땅은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맡았으니¹⁶

벧스안에서부터 아벨므홀라에 이르고 욕느암 바깥까지 미쳤으며

길르앗 라못에는 벤게벨이니 그는 길르앗에 있는 므낫세의 아들 야일의 모든 마을을¹⁷ 주관하였고 또 바산 아르곱 땅¹⁷의 성벽과 놋빗장 있는 육십 개의 큰 성읍¹⁸을 주관하였으며

마하나임¹⁹에는 잇도의 아들 아히나답이요

납달리²⁰에는 아히마아스이니 그는 솔로몬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삼았으며

아셀과 아롯²¹에는 후새의 아들 바아나요

잇사갈²²에는 바루아의 아들 여호사밧이요

베냐민²³에는 엘라의 아들 시므이요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나라 길르앗²⁴ 땅에는 우리의 아들 게벨이니 그 땅에서는 그 한 사람만 지방 관장이 되었더라²⁵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²⁶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솔로몬이

그 강²⁷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²⁸

솔로몬이 사는 동안²⁹에 그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섬겼더라

솔로몬의 하루의 음식물³⁰은

가는 밀가루가 삼십 고르요

굵은 밀가루가 육십 고르요

살진 소가 열 마리요

초장의 소가 스무 마리요

양이 백 마리이며

그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었더라

솔로몬이

그 강 건너편을 딥사³¹에서부터 가사³²까지 모두,

그 강 건너편의 왕을 모두 다스리므로

그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를 누렸으니³³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³⁴

각기 포도나무 아래³⁵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솔로몬의 병거의 말 외양간이 사만이요³⁶

마병이 만 이천 명이며

그 지방 관장들³⁷은 각각 자기가 맡은 달에 솔로몬 왕과 왕의 상에 참여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먹을 것을 공급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였으며

또 그들이 각기 직무를 따라

말과 준마³⁸에게 먹일 보리³⁹와 꼴을

그 말들이 있는 곳으로 가져왔더라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⁴⁰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⁴¹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⁴²보다 뛰어난지라

그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⁴³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의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그가 잠언 삼천⁴⁴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⁴⁵는 천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⁴⁶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사람들이⁴⁷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으니⁴⁸

이는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들이 보낸 자들이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상 4장은 솔로몬 왕국의 안정적인 국정의 출발을 알리는 면에서 인상적인 면이 소개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왕국의 안정적인 번영에 초석과 같이 두드러진 일면

이란 대 우리의 시선이 집중된다.

온 이스라엘의 왕¹: 여기서 “온”(all)이라는 단어를 강조한 것은 열왕기의 기자가 나라의 분열 후에 사료(史料)를 편집했음을 암시한다.

신하들²: 이것은 나라의 각료들과 고위 공직자 및 모사들의 명단이다. 이들은 왕의 가족이라는 의미의 왕자(제임스왕역(KJV)에는 “princes”[왕자들]이라고 되어 있음)가 아니라, 솔로몬에게서 직위를 얻어 그가 원하는 동안에 봉직하는 일급 관리를 말한다.

아사리아³: 다윗의 신하 명단에는 군대장관의 이름이 맨 먼저 나타나지만(삼하 8:16~18; 20:23~26), 솔로몬의 신하 명단에는 제사장, 서기관, 사관 등과 같은 평화직 종사자들의 이름이 군대장관보다 앞에 나와 있다. “제사장”이라는 용어 곧 히브리어 코헨(kohen)은 때로 국가 관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삼하 8:18에서 이 칭호가 다윗의 아들들에게 주어졌다(개역한글판에는 “대신”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그런데 평행 구절인 대상 18:17에는 이 아들들이 “왕을 모셔 대신이 되니라”는 설명이 들어 있다. 대상 6:8~13에는 세 사람의 아사랴가 실려 있다. 즉 8, 9절에는 아히둡, 사독, 아히마아스, 아사랴, 10절에는 “요하난은 아사랴를 낳았다”고 되어 있고, 11~13절에는 아마랴, 아히둡, 사독, 살룸, 힐기야 등의 계보를 거쳐서 아사랴를 낳았다고 되어 있다. 아히둡의 아들인 첫 번째 사독은 다윗 왕 때의 대제사장이었다(삼하 8:17). 따라서 역대기에 의하면 아사랴는 사독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였다. 솔로몬의 신하 명단에서 맨 앞에 실린 아사랴는 솔로몬의 모사 중 한 사람으로, 후에 대제사장이 되었을 것이다(참조 대상 6:8~13 주석).

시사의 아들…서기관이요⁴: 삼하 20:25의 “스와”(sheva), 대상 18:16의 “사워사”(shavash)는 다윗의 서기관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 이름들은 “시사”(shisha)의 다른 형태일 것이며, 따라서 솔로몬의 서기관들은 저들의 아버지에게 직분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서기관이라는 직분은 왕국의 고위직 가운데 하나로, 왕의 칙령을 발하고 왕의 문서를 관리할 뿐 아니라 왕실 재산을 관리했을 것이다(왕하 12:10).

사관⁵: 다윗 왕 때에는 여호사밧이 이 직무를 맡았다(대상 18:15). 사관은 궁중 역사 편수관으로, 궁중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하여 나라의 공문서 보관소에 보관하는 것이 임무였다. 그는 국가의 중요한 관리였다(참조 왕하 18:18, 37; 대하 34:8).

사독과 아비아달⁶: (참조 삼하 8:17 주석).사독: 여기서 사독과 아히멜렉이 제사장으로 올라있지만 대제사장인 것이 분명한데, 이는 목록이 왕국의 고등 관리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사독은 다윗의 통치 역사 초기에 이미 등장하여,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해 올 때 아비아달과 함께 이름이 거론된다(대상 15:11). 다윗 통치기 동안 그 두 사람은 동료로서 반복하여 이름이 거론되는데, 분명 동등한 위치였을 것이다.

다윗이 왜 두 명의 대제사장을 거느린, 퍽 이상하게 보이는 조치를 취했는지 세 가지 이유가 제시되었다. (1) 두 제사장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 자손의 반차를 각각 대표하였다(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이 언급된 대상 24:1~6을 참조하라). (2) 오랜 전쟁 끝에 유다와 이스라엘을 통일하면서 다윗은 대제사장직을 두 가문에 분배하여 국가의 종교적 정서 연합을 공고히 하기를 희망했는지 모른다. 아비아달의 제사장 반차는 다윗에게 협조했다고 하여 사울에게 거의 말살당했지만(삼상 22:9~20), 사독으로 대표되는 분파는 최소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까지는 사울에게 계속 충성했다(대상 12:23~28). (3) 여호와께 대한 국가적인 경배는 아직 중앙 집중화되지 않았는데, 이는 법궤가 예루살렘에 있는 반면에 성막은 놉 대학살 이후 이전하여 기브온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위 제사장 두 명이 필요했으며, 사독은 특별히 기브온에서 봉사한다고 언급되어 있다(대상 16:39, 40). 사독과 그 동료 관리들의 역사에 관해서는 이어지는 아히멜렉 항목을 참조하라.

(아히멜렉.): 아비아달의 아들로 언급된 곳은 이곳뿐 아니라 평행 구절인 대상 18:16(“아비멜렉”으로 표기됨)과 “아히멜렉”으로 언급한 대상 24:6도 있다. 하지만 다윗의 공동 대제사장(참조 “사독” 주석)은 다윗의 생애 동안과 솔로몬 통치 시작에 이르기까지 반복하여 “사독과 아비아달”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 절과 역대기에서 사독과 아히멜렉에 대한 언급은 “필사상의 오류”와 “혼동된 이름”에 관련된 추론을 불러 일으켰는데, 특히 아히멜렉이 아비아달의 아들로, 아비아달이 아히멜렉의 아들로 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류라고 추정할 필요는 없다. 비평가들은 자신들이 가정한 문제가 고대의 저자나 필사자 편에서 저지른 실수만큼, 충분한 정보의 부족으로 쉽게 야기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고려하지는 않는다. 제사장 가문의 여러 세대에 대한 언급들이 분산되어 있기에 온전한 이야기를 이루지 못한다. 예를 들어, 미국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한 외국인이 미국 정치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상상해보자. 그 사람은 클리블런드(Cleveland) 대통령을 벤저민 해리슨(Benjamin Harrison)의 후임이라고 했다가 다른 곳에서는 그가 해리슨의 선임이라고 진술된 것을 이해하는 데 혼란을 느낄 것이다. 만일 그 시기의 역사 전체를 읽는다면 두 가지가 모두 맞음을 알게 될 것이다.

아히멜렉과 아비아달과 아비멜렉에 대한 진술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놉에서 도망자 다윗에게 진설병을 준 아히멜렉은 아히둡의 아들(삼상 22:9~12)이자 엘리의 후손이었는데, 이는 그의 아들 아비아달이 엘리의 집에 관한 예언을 성취시켰기 때문이다(왕상 2:27). 삼상 14:3의 계보대로라면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도움을 주었을 때 노인이었음이 틀림없다. 그의 아들 아비아달도 함께 직분을 유지했다면 같은 시기에 대제사장이었을 수 있다(참조 막 2:26 주석). 또는 엘리와 그 아들들의 관계나 그리스도 당시의 안나스와 가야바의 관계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처럼, 그의 아버지는 “명예 대제사장”으로, 그는 현직 대제사장으로 재직했을 것이다(참조 눅 3:2 주석). 사울이 아히멜렉 가문의 제사장들을 살해하자 아비아달은 제사장 직분의 상징인 에봇(참조 출 28:6~30 주석)을 가지고 도망하여, 추방된 다윗의 고문과 제사장이 되었다(삼상 20:20; 23:6, 9; 30:7). 아비아달과 사독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축제 예식에서 공동 대제사장으로 다시 언급된다(대상 15:11, 12). 그 후로 사독과 아비아달은 다윗의 후기 생애(삼하 15:29, 35, 36; 17:15; 19:11; 20:25)와 솔로몬의 통치 초기(왕상 4:4)까지도 반복하여 “제사장”으로 함께 거론된다.

본 장에 명시된 대로(1~15절) 다윗의 군대가 여러 대적들에게서 승리하고 다윗이 왕국을 통합하며 국내의 사법질서를 안정시킨 후에야 다윗의 고위 관료 명단이 등장한다. 하지만 평행 구절(대상 18:16)처럼 이곳에도 “제사장” 사독과 아히멜렉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잠시 그의 아들이 아비아달을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아히멜렉이 이 직무를 얼마 동안 맡았는지 혹은 왜 영구적으로 맡지 못했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이 없다. 아마도 그는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은 동안만 임시로 제사장에 임명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노인은 예기치 않은 사태-아마도 압살롬의 반역-로 말미암아 의도적으로 직임에서 물러났다가 복직했는지도 모른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알려주지 않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제사장 직분에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필사상의 오류라고 추정할 필요는 없다.

수 년 후 다시 한 번 공중 행사에 참여하는 아히멜렉을 보게 된다. 그 행사는 솔로몬 즉위식보다 앞선 것으로, 그때 연로한 다윗은 앞으로 짓게 될 성전의 봉사를 위해 레위인의 직무를 할당하였다. 아론 족속에 속한 두 가문의 대표인 “제사장 사독 그리고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대상 24:1~3; 참조 6, 31절)과 다윗 앞에서 제비를 뽑았다. 이 행사에 아비아달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전혀 놀랍지 않은데, 이는 당시에 그가 왕위를 찬탈하려는 아도니야의 기도(企圖)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이다(왕상 1:5~7, 19). 아비아달의 부재로 그의 아들 아히멜렉이 이다말 일가의 우두머리로서 엘르아살 집안의 사독과 마주하여 직분을 이행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따라서 그의 이름이 사독과 함께 거론되었다고 해서 대제사장 직분에 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는 아히멜렉이 제사장이라고 세 번 불렸지만(대상 24:3, 6, 31) 여기서는 그렇게 불리지 않기 때문이다. 솔로몬 즉위식 때에는 사독만이 대제사장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대상 29:22).

그러나 다윗이 죽기 전 솔로몬이 통치를 시작할 때 아비아달의 이름은 최초의 고위 관료직 명단에 여전히 거론되어 있다(왕상 4:4; 이 명단이 통치 시작 때에 언급된 것임을 시사하는 왕상 4:1을 참조하라). 솔로몬은 다윗이 그를 오랜 친구요 상담자로 존중한 것을 고려하여 그를 유임시켰을 것이다. 적어도 솔로몬은 다윗이 죽을 때까지는 아비아달을 제사장직에서 물러나게 하지 않았고, 위협적인 것으로 여긴 모반을 아도니야가 꾀했을 때야 비로소 그를 폐했다(왕상 2:22, 26, 27). 그때 이후로 사독만이 유일한 대제사장이었다(왕상 2:35).

그러므로 여러 이야기는 상호 보완적이며 모순된 것이 아니므로 수정할 필요가 없다.

왕의 벗이요⁷: 이것은 솔로몬 시대에 공인된 직책이었던 것 같다(참조 삼하 15:37; 16:16; 대상 27:33). 애굽에서 왕의 “친구” 혹은 “벗”이 된다는 것은 왕의 상담자가 되는 부러운 지위였다.

궁내대신⁸: 왕실 관리자 즉 청지기를 말한다. 히스기야 시대에 이 직책은 요직 가운데 하나로, 서기관보다 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셉나가 강등되어야 했을 때 그것은 그가 “궁내대신”이라는 직위에서 물러나 서기관이 된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사 22:15~25; 왕하 18:18).

감역관⁹: 이 직책은 솔로몬이 큰 공공사업에 강제 동원한 노동자들과 관련이 있다(참조 5:13, 14). 다윗의 통치 초기에 봉직한 다윗의 대신들 명부에는 이 직함이 나타나지 않지만(삼하 8:16~18), 후기의 명단에는 나온다(삼하 20:24). 르호보암 왕 때 일어난 반역으로 인기 없는 이 직분의 소유자가 돌에 맞아 죽은 일도 있었다(왕상 12:18). 에시온게벨 발굴로 강제 노역을 동원한 증거가 명백하게 드러났다.

열두 관장을 두매…식물을 예비하되¹⁰: 이것은 궁정과 왕실 가족을 위해 현금이나 현물로 세금을 거둬들인 것을 가리킨다. 두 경우에(11, 15절) 이 직분을 지닌 자들이 왕실 사람들과 혼인한 것으로 보아, 이 직책은 틀림없이 요직에 속했을 것이다. “열두 관장”이 관할하는 지역들은 열두 지파와 일치하지 않는데, 이는 분명 이 시기에 초기의 지파별 지역 구분이 대부분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2라는 숫자는 12지파와는 무관하고 1년 열두 달과 관계가 있으며, 매달 그 관리들 중 하나가 왕실에 바칠 세금의 할당량을 공급할 책임을 지고 있었다.

에브라임 산지¹¹: 에브라임 지역의 고산 지대로, 세겜 성읍을 두르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비옥한 지역들 중 하나였다.

마가스¹²: 여기에 언급된 성읍들은 유다의 북서쪽에 있는 벤데겔의 지역에 속했는데, 본래는 단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수 19:40~43)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는 대부분 블레셋인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소고¹³: 엣-슈웨이케(esh-Shuweikeh)로 알려진 곳으로, 사마리아 서북서쪽 약 16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운 곳 근처에 있던 성읍(삼상 17:1, 2)이나 헤브론 남서쪽에 있던 성읍과 다른 곳이다(수 15:48).

헤벨¹⁴: 유다에 속한 지역으로, 위치를 알 수 없다.

돌…온 지방¹⁵: 이 지역은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된 지경에 속하며, 갈멜산 아래 해안을 따라 뻗어 있다. 돌 왕은 수 11:2에서 북쪽 동맹국 관계에 있던 야빈과 공동 전선을 폈다고 언급되었는데, 후에 정복되어(수 12:23) 그의 나라가 므낫세 지파에게 넘어갔다(수 17:11). 아비나답의 아들 곧 벤아비나답이 이 지역을 맡았는데, 이 아비나답은 다윗의 형일 것이다(삼상 16:8; 17:13).

다아낙…바아나가 맡았으니¹⁶: 이곳은 에스드랠론 평원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아주 중요한 지역으로,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비옥한 곳이었다. 남북과 동서로 이어지는 주요 간선도로가 교차하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요새들을 구축하여 방어했다. 다아낙, 므깃도, 벧스안 등은 팔레스타인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요새들로,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되었다. 이 성읍들은 이스라엘에 정복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이 강성할 때는 조공을 바쳤다(수 17:7~13; 삿 1:27, 28). 이들은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되었지만 잇사갈의 지경에 있었다(수 17:11). 므깃도는 아하시야(왕하 9:27)와 요시야(왕하 23:29)가 죽은 곳이다. 벧스안은 계곡 동편으로 접근하는 적을 막는 요새이며, 득의양양하여 사울의 시체를 매달았던 성읍이기도 하다(삼하 31:8~10).

야일의 모든 촌을¹⁷: 이곳은 요단 동편의 광범한 지역으로, 므낫세와 갓 지파 영토의 대부분을 포함하였다. 길르앗 라못은 갓 지경에 있었고 도피성 가운데 하나였다(신 4:43; 수 20:8; 21:38).

아르곱의 땅¹⁷ 한때 옥의 왕국에 속했던 지역이지만 야일에게 빼앗겼다(신 3:4, 13, 14).

성벽과 놋 빗장 있는 큰 성읍¹⁸: 이것은 신 3:4, 5 4“그 때에 우리가 그들에게서 빼앗지 아니한 성읍이 하나도 없이 다 빼앗았는데 그 성읍이 육십이니 곧 아르곱 온 지방이요 바산에 있는 옥의 나라이니라 그 모든 성읍이 높은 성벽으로 둘려 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하며 그 외에 성벽 없는 고을이 심히 많았느니라”의 묘사와 비슷하다.

마하나임¹⁹: 이 지역 역시 요단 동편 갓 지파의 지경에 있었다(수 13:26; 21:38). 이곳은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천사들을 만난 현장이다(창 32:2). 후에 그곳은 이스보셋 정부의 도읍지로, 아주 중요한 곳이 되었다(삼하 2:8, 12, 29). 그리고 다윗이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갈 때 머물렀던 곳(삼하 17:24, 27)이기도 하다.

납달리²⁰: 이곳은 갈릴리 북쪽 지역으로, 헤르몬산 남쪽에 있었으며, 갈릴리 호수의 북서 호안(湖岸)을 포함한다(수 19:32~39). 거기에 도피성 가운데 하나인 납달리 산지 게데스가 있었다(수 19:37; 20:7; 삿 4:6).

아셀과 아롯²¹: 이 지역은 북부 지중해안가에 있었다(수 19:24~31). 아셀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저들의 영토에서 쫓아내지 못하고 그들 중에 거했다(삿 1:31, 32).

잇사갈²²: 잇사갈 지역은 납달리의 남쪽, 므낫세의 북쪽에 있었고, 에스드랠론 평지의 북쪽 일부를 포함하였다(수 19:17~23). 이 지방은 왕상 4:12에 언급된 지역의 북쪽에 있었던 것 으로 보인다.

베냐민²³: 베냐민 지역은 작지만 요지였다. 여기에 여리고, 기브아, 기브온, 라마가 포함되었고, 원래는 예루살렘도 포함되었다(수 18:11~28).

길르앗²⁴: 요단 동편 지역으로, 르우벤과 므낫세와 갓 땅 일부가 포함된다(참조 13, 14절 주석).

저 한 사람만 관장이 되었더라²⁵: 각 구역에 관장이 두 사람 이상인 곳이 없는 곳으로 보아, 이 말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70인역에는 이 구절이 “유다 땅에 한 사람의 관장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이 정확한 독법으로 보이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유다 땅이 왕실에 세금을 바치는 지역들의 명부에서 누락된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유다 지역에 대한 특별한 배려로, 그 지역을 맡은 한 관장이 다른 열두 관장을 관할했을 것이다. 유다는 거점 지역이었으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왕의 관장들의 직접적인 통제 아래 있었다. 그러나 징세 목적으로 유다를 전체 조직에서 제외시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되매²⁶: 20절과 25절에서 백성들의 상태를 인구가 많이 늘어나고 번영과 평화 속에서 산다고 묘사한 것은, 이스라엘은 이제 강하고 안전한 위치에 이르러 더 이상 골치 아픈 이웃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땅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수²⁷: 유브라데강을 말한다(창 15:18; 수 1:4). 열왕기 기자는, 솔로몬 왕국이 아브라함과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약속된 범위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참조 347쪽 지도.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²⁸: 솔로몬 제국은 부분적으로 준(準) 독립 상태의 작은 속국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저들은 자국 왕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히브리 왕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그에게 해마다 조공을 바쳤다. 9:20, 21에, 이스라엘의 이웃 나라들이 이제는 다 망했거나 속국이 되었다는 사실이 추가적으로 강조돼 있다.

사는 동안에²⁹: 솔로몬의 제국이 지속된 것은 그가 사는 동안뿐이었다. 솔로몬이 다스린 나라들은 부분적으로 결속력이 약한 다수의 나라들로 이뤄져 있어서, 신속하게 일어났다가 그만큼 신속하게 와해되곤 하였다.

솔로몬의 일일분 식물³⁰: 히브리어 코르(kor) 곧 “석”은 곡식의 계량 단위로서, 정확한 양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략 190리터로 환산해 왔다. 솔로몬의 궁정 안에는 대략 10,000명에서 15,000명이 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딥사³¹: 유브라데 강변에 있었던 곳으로, 헬라인들이 탑사쿠스(Thapsacus)라고 불렀던 곳으로 생각된다.

가사³²: 블레셋 평지의 최남단에 있었다.

평화가 있었으니³³: 적어도 한동안은 그러했다. 모든 것이 잘 치리되어 나라 안은 조용하고 밖으로는 외적의 침입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연이은 사건들이 보여 주겠지만, 지속적인 평화는 솔로몬의 통치가 제공하는 것보다 더 견고한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한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³⁴: 이 표현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때는 사사 시대였고, 그때부터 사무엘, 사울, 다윗과 솔로몬 시대까지 내내 사용되었다(삿 20:1; 삼상 3:20; 삼하 3:10; 17:11; 24:2, 15; 대상 21:2). 북방 경계인 단에서부터 최남단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연합된 국가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솔로몬 통치 이후 이 말은 다시 사용되지 않다가 히스기야 왕이 예루살렘으로 유월절을 지키러 올라오라는 명을 내리면서 “브엘세바에서 단까지”(대하 30:5)라는 말을 사용했다.

포도나무 아래³⁵: 이 구절은 히브리인들이 흔히 쓰는 표현이었고(미 4:4; 슥 3:10), 앗수르 사람들도 사용하였다(왕하 18:31). 그것은 평화와 번영의 이상적인 시기를 묘사하는 말이다.

말의 외양간이 사만이요³⁶: 대하 9:25에는 그 수가 “사천”이라고 되어 있다. 수의 차이는 성경 필사자들의 실수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히브리어의 “4”와 “40”은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신 17:16에는 미래의 왕들에게 말과 마병을 많이 두지 말라고 되어 있지만, 사울의 취임식 때 사무엘이 예언한 대로(삼상 8:11, 12), 그렇게 하는 것이 군사력으로 제국의 성장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었다. 여호수아의 정복 시절에는 적국에서 포획해온 말과 병거를 불살라 버리도록 했다(수 11:9).

그 관장들³⁷: 7~19절에 언급된 관장들이다. 어떤 헬라어 역본에는 이 구절이 19절 뒤에 놓여 있다.

준마³⁸: 문자적으로 “빠른 짐승.” 여기에 왕의 사자(使者)들의 직무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빠른 말”을 가리킬 것이다(참조 에 8:10 주석).

보리.³⁹:보리는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동방에서 말에게 주는 일반적인 먹이이다. 때로는 과자나 떡으로 만들기도 하였다(삿 7:13; 요 6:9). 밀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먹는 곡식이었다.

지혜⁴⁰ 온전한 의미에서, 특히 잠언과 전도서에 사용된 것처럼 지혜는 당연히 하나님의 속성이며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약 1:5). 그러한 지혜는 지성은 물론 품성과 관계가 있다. 그 말은 30, 31절에서 좀 더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동양의 모든 사람⁴¹: 팔레스타인에서 메소보다미아 지역에 걸쳐 살고 있던 종족들(참조 창 29:1; 삿 6:3, 33; 7:12; 8:10). 그들은 장막에 거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렘 49:28, 29). 욥이 그중 한 사람이다(욥 1:3).

애굽의…지혜⁴²: 애굽의 지혜는 동방 전역에서 유명하였다. 그것에는 천문학, 의학, 건축학, 수학, 음악, 미술, 미라 제조법, 신비 철학 등이 포함되었다. 소위 애굽의 지혜 문학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⁴³: 솔로몬의 지혜와 경쟁이 되는 사람들이 알려진 것은 단지 이 성경절을 통해서이다. 헤만과 에단은 다윗이 회막의 음악가로 지정한 사람들로(대상 6:33, 44), , 편의 제목에 있는 “에스라인”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왕의 선견자”(대상 25:5)라고 되어 있지만 이 이름들의 정확한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잠언 삼천⁴⁴: 윤리적이며 실제적인 지혜에 관한 말로, 건전한 충고, 사려 깊은 관찰, 선행을 권면하는 말, 거룩한 생활의 원칙들, 경건과 행복과 번영으로 인도하는 유익한 교훈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잠언들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얼마 안 된다.

그 노래는⁴⁵: 솔로몬이 작사자였다는 것은 아가와 아마도 , 편을 포함하여 그의 노래 중 몇 편이 남아 있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초목을 논하되⁴⁶: 솔로몬의 글들은 그가 자연에 대해 심미안을 가졌음을 드러낸다. 그는 예리한 관찰력의 소유자였고, 분명히 자신이 관찰한 많은 것을 주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기록하는 습관을 길렀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 과학 분야에서 솔로몬이 쓴 순수 학술 논문은 한 편도 남아 있지 않다.

모든 왕⁴⁷: 모든 왕이 다 직접 오지는 않았다. 스바 여왕 같은 통치자들은 직접 오기도 했지만 대다수 왕들은 사신을 보냈을 것이다.

그 지혜를 들으러 왔더라⁴⁸ 솔로몬의 지혜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져서 천하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지혜를 들으려고 온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202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