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심

[시편34-1편]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노파 2026. 2. 22. 00:01

2026년2월22일

[시편34-1편]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내가 여호와를 항상⁵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내 영혼²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³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⁴을 높이세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⁵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⁶ 광채를 입었으니⁷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⁸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사자⁹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¹⁰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¹¹을 맛보아 알지어다¹²

그에게 피하는 자¹³는 복이 있도다¹⁴

 

<노트>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으로 망명한 다윗이 그곳에서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아베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여 유대 광야로 쫓갸난 후 지은 시이다(삼상 21:10-22:5). 자기가 모면했던 위기의 순간을 회상하면서, 자신이 몸소 터득했던 신앙의 의미와 진실함을 객관화하여 다른 사람을 교훈하는 내용이다. 본 시편은 그 배열에 있어서 25편과 완전 일치를 이룬다.

시이은 자신이 고난 중에서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한다. 또한 모든 곤고한 자들에게 함께 찬양하자고 권면한다.

서론: 시 34편은 알파벳순으로 쓰인 또 하나의 시 즉 답관체 시이다(참조 76쪽). 이 시 속에는 개인적 감사와 보편적인 감사가 서로 융합되어 있다. 이 시에서는 고난당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이라는 주제가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논리적 전개로 제시되기보다는 그저 다양한 방면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 시는 모두 스물두 절로 되어 있으며(히브리어 본문에는 스물세 절로 되어 있는데, 이는 표제를 1절로 삼았기 때문이다), 와우(waw)가 생략되고 마지막 절이 페(pe’)로 시작하는 예외들을 제외하고는 각 절이 히브리어 철자의 통상적 순서에 따라 각 철자를 그 첫 글자로 하고 있다.

표제에 대해서는 67쪽을 참조하라. 또한 삼상 21:10, 13 주석도 참조하라.

항상⁵: 참조 엡 5:20. 시인은 개인적인 어조로 이 시를 시작한다.

영혼²: 즉 “나”(참조 시 16:10 주석).

나와 함께³: 시인은 “곤고한 자들”에게 함께 여호와를 찬양하자고 말한다. 우리는“위엄”을 하나님께 돌리므로(참조 신 32:3) 그분을 “광대하시”게 한다. “모두가 큰 소리로 예수 이름의 능력을 외쳐 부른다.” “구속함을 받은 자는 이같이 말할지어다”(시 107:2). 오늘날 회당 예배에서는 낭독자가 토라(Torah)를 그 보관함에서 꺼내면서 시 34:3을 말한다.

이름⁴: 참조 시 7:17 주석.

내게 응답하시고⁵: 여기에서 감사의 비밀에 대한 시인의 표현이 시작된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행한 일들을 인해, 그분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인해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가르쳐 주신 교훈들로 인해 그분께 감사를 드린다.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⁶: “저희”는 2절의 “곤고한 자”를 일컫는 듯하다. 시인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일반 사람들을 일컬을 수도 있다. 다수의 히브리어 필사본과 아퀼라(Aquila)와 제롬(Jerome)의 번역본들 그리고 수리아역에는 이 동사가 명령문 곧 “너희는 앙망하라”고 되어 있다.

광채를 입었으니⁷: 곧 “빛나게 되었으니”(참조 고후 3:18). “눈을 예수께 돌려 그 놀라운 얼굴을 주목하라.” 참그리스도인의 빛나는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하나님이 우리가 가는 길을 바라볼 때 온 세상이 환하게 된다. 모음점의 위치를 약간만 바꾸면 이 동사가 명령형 동사가 되어 “너희는 (기쁨으로) 빛을 비추라”로 번역된다. 70인역에도 명령형 동사로 되어 있다.

이 곤고한 자⁸: 시인은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언급함으로써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모습을 제시하는 듯하다.

답관체 기법대로 하면 이 절은 자인(zayin)이 아닌 와우(waw)가 그 첫 글자가 되어야만 한다. 자인은 히브리어 알파벳에서 와우 바로 다음에 있는 글자이다.

여호와의 사자⁹: 천사들의 사역에 관해서는 사도행적, 153, 154,; 각 시대의 대쟁투, 511~513, 각 시대의 대쟁투 631, 각 시대의 대쟁투, 632을 참조하라.

둘러 진치고¹⁰: 참조 창 32:1, 2; 왕하 6:16, 17. 수호천사들의 지속적 임재는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유쾌한 보증들 중 하나이다.

선하심¹¹: 히브리어 토브(t.ob), “은혜로운”, “친절한”, “다정한” 등과 같은 광범위한 특성을 포괄하는 단어. 우리가 하나님의 이 속성을 명상함으로써 냉엄한 공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의 좀 더 온화한 요소들에 대하여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맛보아 알지어다¹²: 시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그냥 듣기만 하지 말고 직접 한번 시험해 보라고 요청한다. “맛보다”는 “~의 맛을 시험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타암(t.a‘am)의 번역으로, 여기서는 “경험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참조 히 6:5; 벧전 2:3). 신앙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발견된다.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인 경험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이는 단지 하나의 이론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이처럼 단지 이론에 불과한 종교에는 구원의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사람]¹³: 히브리어 게베르(geber), “젊고 활력이 넘치는 남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는 자급자족이 불가능하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복이 있도다¹⁴: 참조 시 1:1 주석.

 

2026.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