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욥-욥과 그의 친구들

노파 2026. 2. 13. 00:02

 

욥-욥과 그의 친구들

장지원

 

 

¹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²이

그에게 이 모든 재앙이 임하였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처소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³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⁴ 사람 빌닷과

나아마⁵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상약하고 오더니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 욥인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⁶

그들이 일제히 소리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⁷

칠 일 칠 야⁸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⁹

 

<노트> 구약성서 욥기 2장 11-13절은, 욥은 친구들의 방문을 받게 된다.

¹:두 단계에 걸친 사탄의 시험과 그에 대한 욥의 반응으로서 본서 도입부는 종결되고 본문에서부터 본론부가 시작된다. 그 가운데서도 11-13절까지는 그 초두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욥의 세 친구가 등장하여 향후 전개될 변론을 예시해 준다.

친구 세 사람²: 이들에 대한 자세한 인적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본서를 비롯하여 성경 다른 자료를 근거하여 볼 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들 모두는 욥보다 연장자였다(15:10). 둘째, 이들은 욥을 조문하러 오기 이전부터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이는 그들이 욥을 방문하기 전에 서로 상약했다(11b절)는 말에서 분명히 암시된다. 셋째, 이들 모두는 당시 상당한 수준의 학식과 재물을 겸비한 자로 추정된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정확한 논리 전개와 풍부한 지식을 동원하여 욥과 변론을 펼치는 바(4:1, 5:27) 이는 그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학식과 지혜를 소유했음을 보여준다.또한 욥을 조문하러 올 정도의 신분이라면 각기 그 지방의 유지이거나 풍부한 재물을 소유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고대 사회에서는 대부분 같은 계층의 사람끼리 교제하였기 때문이다. 즉, 당시 막대한 재물과 명예를 지닌 자(1:3)였던 욥과 교제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것과 비견될 만한 수준의 재물과 명예를 가졌을 것이다. 넷째, 이들 모두는 히브리 신앙을 가진 자였다. 즉, 그들은 비록 욥의 신앙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할지라도(1:1, 8, 2:3) 하나님의 공의, 성품등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신앙 지식을 소유했다. 다만 계시사의 점진적인 발전 과정에 비추어 볼때 그들은 인간의 전적 부패성(롬 5:12),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합 2:4, 롬 3:19-31)등을 인식하는 단계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데만³: 이 지역은 종종 성경에서 에돔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쓰이기도 했으나(렘49:7), 역서는 모압 동쪽의 한 성읍을 가리키는 것같다(겔 25:13, 암 1:12, 13). 그런데 이 지역은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해서 볼 때 사해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수아⁴: 본래 ‘수아’(Sua)는 아브라함과 그두라 사이에 출생한 아들을 가리킨다(창25:2, 대상 1:32).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 말(人名)이 지명(地名)으로 변천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추측컨대 수아의 후손들이 사는 중부 우프라테스 지역을 ‘수아’라는 지명으로 부른 것 같다.

나아마⁵: 이 지명이 언급되는 것은 본서 11:1, 20:1 이외에 수 15:41 딱 한 군데 뿐이다. 그러나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그 욥인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⁶: 이는 문자 그대로 욥의 형체가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변형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욥의 세 친구들은 ‘먼 곳에서’(12a절)도 욥을 알아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욥의 질병과 그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과장 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물론 전신에 퍼진 피부병으로 인해욥의 형체가 많이 변형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타당하다(7,8절). 사 53장에 묘사된 ‘수난 당하는 종’의 그것과 흡사하다 하겠다(사 52:14).

울며 … 뿌리고⁷: 본문에 나타난 일련의 행동은 1:20에 나타난 욥의 행위와 비슷한 것으로서 예루살렘의 파괴를 목도한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인 바 있다(애 2:10). 한편 당대의 석학(碩學)이요, 재력가(財力家)로 알려진 이들이(11절 주석 참조) 이러한 행위를 취했다는 것은 비록 그것이 당시의 통례적인 관습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참된 우정의 발로임에는 틀림없다. 즉, 그들은 주변의 이목이나 자신의 체면에 연연해하지 않고 고통당하는 욥에 대한 진실한 연민의 정과 비탄의 감정을 표했던 것이다.이렇듯 욥의 친구들은 순수한 동기에서 욥을 방문하였으며, 욥을 위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한다. 물론 앞으로 전개될 변론 가운데에서 친구들의 욥에 대한 비난과 정죄의 말이 종종 나오기는 하나 이것 역시 우리는 그들의 신앙 수준의 한계에서 나온것으로 보아야지 악의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칠일, 칠야⁸: 이 기간은 죽은 자를 위한 애곡 기간과 동일하다(창 50:10, 삼상31:13, 집회서 22:12). 따라서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최상의 애통의 표시를 했다고 볼수 있다. 한편 구약에서 위대한 인물의 죽음을 슬퍼하는 공식적 애도 기간은 보통 30일 내지 70일이었다(창 50:3, 민 20:29, 신 34:8).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⁹: 이를 어떤 학자는 탈무드의 전승에 비추어서 해석하려고 한다. 즉, 죽은 자의 집을 방문한 조문객들은 상주가 먼저 말을 열기 전까지는 한마디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Talmud, Moed, Qatan 28b). 그러나 굳이 이러한 관례에 비추어 본문을 해석할 필요는 없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 말을 잃었으며, 섣불리 위로의 말을 건네기 보다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도리어 효과적이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고통당하는 자와 같이 말없이 있어줌으로써 그들은 나름대로 깊은 우정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2026.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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