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 위인전> 다윗의 마자막 말
장지원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¹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²
높이 세워진³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⁴가 말하노라
여호와의 영⁵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⁶ 있도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⁷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⁸,
하나님을 경외함으로⁹ 다스리는 자여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¹⁰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¹¹ 같으니라 하시도다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¹²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¹³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¹⁴
이는 손으로¹⁵ 잡을 수 없음이로다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살리리로다 하니라
<노트> 구약성서 사무엘하 23장 1-7절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최후의 교훈과 경고를 하던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왕상 2:1-10).
다윗의 마지막 말¹: 이 장(章)은 뚜렷한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1~7절은 다윗의 공식적인 마지막 발언을 구성하는 한 편의 시이며, 8~39절은 그의 용사들 명단이다. 이 노래는 시편(詩篇)에서는 찾을 수 없다.
말함이여²: 히브리어 느움(ne’um).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거나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어지는 거룩한 말씀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평범한 인간의 말을 지칭하는 데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문구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렘 23:31).
높이 올리운³: 다윗은 어린 시절에 비천한 사람이었으나 여호와께서는 그를 택하여 선지자와 왕의 높은 지위로 올려 주셨다(참조 삼하 7:8, 9; 시 78:70; 89:27).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⁴: 이 말은 이 노래뿐 아니라 각 시대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으로 입증된 많은 시(詩)를 기록한 사람을 적절하게 묘사한다.
여호와의 신⁵: 이 기별은 다윗 자신의 개인적인 발언은 아니었다. 성령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보면 느움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 적절하다(참조 1절 주석).
내 혀에⁶: 참조 렘 1:9; 벧후 1:21.
이스라엘의 바위⁷: 이 구절은 앞에 나오는 내용의 대구(對句)로, 이 노래의 시적(詩的)인 형태를 나타내 준다. 2절 안에 있는 대구들도 비교해 보라.
공의로 다스리는 자⁸: 통치자에게 의롭게 다스리도록 권고하기보다는, 의로운 통치자의 복됨을 극찬한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⁹: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이며, 관직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사자”이다(롬 13:1, 4). 따라서 다스리는 각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서 일해야 하며, 자기는 하나님의 임명에 의하여 다스리는 것이요 자기의 모든 결정에 대하여 하늘은 책임을 묻는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
빛 같고¹⁰ 참조 시 89:36.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자는 해와 같아서, 이 땅에 빛과 온기와 축복을 가져올 것이다.
새 풀¹¹: 땅의 신록(新綠)은 햇빛과 비가 작용한 결과로 나타난다. 그처럼 다스리는 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자기의 책무들을 공의롭게 수행한다면 이어지는 일련의 축복들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지 아니하냐¹²: 어떤 주석자들은 이 구절을 질문 형태로 표현한다. “그리고 나의 집이 하나님 앞에서 이처럼 서는 것이 사실이 아니냐?” 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공의롭고 지혜롭게 다스리고자 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의 집을 영원히 세우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조건적이었으나, 그 조건들은 그의 자손들에 의하여 충족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제 다윗의 씨인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 약속들이 성취됨을 볼 것이다.
이루지 아니하시랴¹³: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이 앞의 내용과 조화를 이루도록 의문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나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지 않겠는가?” 긍정문 형태로는 의미가 불충분하다. 이런 변화에 조화되는 의역은 다음과 같다. “또한 나의 집이 하나님과 더불어 이렇게 서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만사를 올바로 세우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하여 그런 목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그분이 나의 구원을 이루시고, 나의 모든 소원이 번창하도록 이끌어 주지 않겠는가?”
가시나무 같으니¹⁴: 다윗의 보좌가 굳게 서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벨리알의 자식들(사악한 자들)의 비통한 운명은 이와 같을 것이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구원의 열매를 즐기지 못할 것이요, 그들은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같이 되어 가치 없는 것처럼 버림받을 것이며, 불에 사른 바 되어 없었던 것처럼 될 것이다.
손으로¹⁵: 악인들은 자신들에게 손을 대려는 자들의 손을 찌르는 가시나무와 같다. 따라서 방해가 되지 않는 곳에 그들을 치워버리려면 평범한 수단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02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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