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 위인전>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죽음
장지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¹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²
사울이 패전하매³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⁴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⁵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⁶
무기를 든 자가 사울이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⁷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골짜기 저쪽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⁸과 요단 건너쪽에 있는 자들⁹이
이스라엘 사람들¹⁰이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¹¹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에서 사니라¹²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사울의 머리를 베고¹³
그의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알리기 위하여¹⁴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고
그의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¹⁵
그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¹⁶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¹⁷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¹⁸을 듣고
모든 장사들이 일어나¹⁹
밤새도록 달려가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내려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가서 거기서 불사르고
그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 나무 아래²⁰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²¹
<노트> 구약성서 사무엘상 31장은 통일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이 쫓아 미쳐서¹: 여기서 ‘쫓아 미쳐서’(다바크)는’연합하다’, ‘붙다’란 의미로서(창 2:24, 신 28:60), 곧 ‘바짝 달라붙다’ 혹은 ‘바짝추격하다’란 의미이다(삿 20:42, 삼하 1:6). 따라서 이스라엘 군사들은 완전히 분산되고,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은 그들의 아무런 경호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Klein). 또한 이때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도 각기 흩어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²: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한 사울의 세 아들의 이름은 역대상 10:2과도 일치한다. 따라서 여기의’아비나답’은 14:49의 ‘리스위’와 동일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대상 8:33, 9:39에 언급된 사울의 네 아들 중 네 번째의 ‘에스바알’은 사울 사후(死後) 아브넬에 의해 잠정적으로 사울의 후계자로서 옹립되었던 ‘이스보셋’이다<삼하 2:8>. 한편, 우리는 여기서 특별히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한(18:1)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실로 요나단은 (1) 사울의 아들이었으나 질투와 시기의 화신이었던 사울과는(18:29) 대조적으로 참 사랑과 우정을 나눌 줄 아는 자였으며(18:1-4:20:17), (2) 매우 지혜롭고 용감한 군인이었고(14:6-14),(3) 훌륭한 신앙 인격을 갖춘 의인이었으며(19:1, 20:30-42), (4) 왕위에 집착하지 않는 겸손의 인물이었다(18:4, 23:17). 그러한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패역한 사울과 운명을 같이한 사실은 다음의 교훈들을 준다. (1)부친의 사악한 죄 때문에 그 자손들이 고난을 당하게 된다(겔 18:2). (2) 의인의 소망과 생명은 이 세상에 국한되지 않고 오는 세상의 참되고 영원한 삶에 있다(잠 14:32). (3) 사악한 부친의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운명을 함께 한 효성이 아름답다.
사울이 패전하매³: 이것은 문자적으로 ‘그 전쟁이 사울에게 무겁게 되었다’란 뜻이다(왕상 12:10, 대하 10:14, 애 3:7). 이것은 결국 (1) 전황(戰況)이 지극히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2) 불리한 전화으로 인하여 극도로 낙심하게 되는 것 등을 말한다(Klein, Lange).
활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⁴: 여기서 ‘따라 미치다’(마차)는 ‘발견하다’,’만나다’란 의미이다(창 36:24, 신 22:23). 즉 블레셋 군대의 궁수(弓手)가 이스라엘의 왕 사울을 찾아 발견하고는 맹렬히 추격했다는 뜻이다. 한편 ‘활쏘는 자’는 문자적으로 ‘활을 가진 자’란 뜻이다.
할례 없는 자들.⁵: 이 말은 할례의 징표를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창 17:9-14)이라는 선민(選民) 사상에 근거한 말로, 곧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달리 여호와 하나님과 계약 관계하에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조롱하는 말이다(14:6, 17:26,36).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⁶: 칼 끝을 위로 하여 칼을 세운 후 그 위에 자신의 몸을 덮친 행위를 말한다. 한편 생명에 대한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믿는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자살은 결코 흔치 않았으나, 여기 사울의 자살 행위는 그의 비극적인 종말을 더욱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그의 모든 사람⁷: 역대상 10:6에서는 ‘그 온 집’으로 말한다. 그러나 여기의 ‘그의 모든 사람’은 이 어구 앞에 ‘역시’ 혹은 ‘또한’이란 의미를 갖는 ‘감’이라는 접속사가 있다는 점에서, 본 어구 앞에 언급된 사울의 병기 든 자와는 다른 무리들 즉 사울의 모든 근위(近衛) 병사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여기의 ‘모든’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그 전투에서 사울의 군대가 완전 섬멸됐다고 볼 수는 없다. 아울러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의 가문이 완전 멸절된 것 또한 아니다. 사울의 사촌이다 군대 장관인 ‘아브넬’(14:50)이 살아 남았고, 아마도 전투에 참여치 않았을 사울의 넷째 아들 ‘이스보셋’(에스바알, 삼하 2:8, 대상 8:33, 9:39)도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울 사후에도 왕가(王家)의 명맥을 잠시 유지해 갔다.
골짜기 저편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⁸: 여기서 ‘골짜기’는 사울이 전사한 길보아 산의 북동쪽 기슭으로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이스르엘(Jezreel) 골짜기’(29:1)를 가리킨다. 그리고 ‘저편’(에베르)은 잇사갈, 스불론, 납달리 지파 등의 주민들이 사는 갈릴리 지역을 가리킨다. 당시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분명히 비전투 요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사울의 군대와 합류치 못한 까닭은, 바로 이같은 연합을 방지하기 위하여 블레셋의 군대가 이곳 사람들과 사울의 군대 사이인 ‘수넴’(28:4)에 진을 쳤기 때문이었다(Aharoni).
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들⁹: 요단 서편에서 볼 때 ‘요단 건너편’은 ‘요단 동부 지역’(Transjordan) 전체를 가리킨다(Smith). 그러나 여기서는 전투 장소인 길보아 산의 맞은편 지역인 므낫세 반 지파의 거주 지역만을 가리킨다. 한편 길보아 산의 패배 소식은 이곳까지 급속히 퍼져나간 것 같고, 따라서 이들은 보다 안전한 지역으로 남하(南下)했던 것 같다.
이스라엘 사람들¹⁰: 길보아 전투에 참여했던 사울의 군사들로서, 이들은 주로 유다 지파, 베냐민 지파, 에브라임 지파 등에 속한 백성들일 것이다.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¹¹: 이는 길보아 전투의 패배와 사울의 죽음이 이스라엘 온 땅에 큰 공포의 분위기를 몰고왔음을 말해 준다.
블레셋 사람들이 거기 거하니라¹²: 여기서 ‘거기’는 갈릴리 주변 지역을 가리킨다. 이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요단 강 동쪽 길르앗 땅에 있는 ‘마하나임’(Mahanaim)에서 왕위에 올랐던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삼하 2:8,9). 또한 다윗이 사울의 사망 직후 유다 지역에서 왕위에 오른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유다 지역도 당시 블레셋의 공략으로부터 점령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삼하 2:1-4).
사울의 머리를 베고¹³: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블레셋의 큰 승리를 증명키 위한 증거물로 삼기 위한 행동이었다(17:57). 이같은 행위는 고대의 전쟁에서는 일종의 관습이었다(Smith).
신당과 백성에게 전파하기 위하여¹⁴: 이는 사울의 머리를 벤 중요한 목적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울이라는 인물은 자신들에게 너무도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 장본인이라는 점에서(14:47, 17:52, 18:6), 엄청난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사울의 죽음은 그들에게 대단한 기쁨을 안겨줄만한 큰소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신당 에게 전파한다’는 것은, 사울의 ‘머리’와 ‘갑옷’을 자신들의 신에게 봉헌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10절, 대상 10:10). 이같이 적으로부터 빼앗은 대단히 중요한 전리품을 자신의 신에게 봉헌하는 행위는 (1)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언약궤를 다곤(Dagon) 신당에 바친 경우<5:2>, (2)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여호와의 성소에 보관한 경우(17:54, 21:8,9)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신당’(베트 아차베헴)은 문자적으로 ‘우상들의 집’이란 뜻이다. 그리고 ‘아차베헴’은 ‘새기다’, ‘조각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아차브’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리고 특별히 여기서 ‘베트’는 형태는 단수이지만, 복수(複數)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Lange, 출 6:14). 결국 이것은, 블레셋 땅에는 많은 신당(神堂)들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¹⁵: 이같은 블레셋 사람들의 행위는, 자신들의 신(神)에 대한 숭배와 봉헌의 성격을 띤다(9절, 5:2). 즉 블레셋 족속은 자신의 신들이 자신들에게 금번 길보아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함으로써, 바로 이같은 봉헌 행위를 한 것이다. 한편 ‘아스다롯’(Ashtaroth)은 ‘아세라’(Asherah, 신 7:5), ‘아낫’(Anath) 등과 더불어 가나안 3개 여신 중 하나로서, 전쟁과 풍요의 여신(女神)이다(삿 2:13주석 참조). 그리고 ‘아스다롯’이란 복수(plural)형태인데, 성경 용례상 이 ‘아스다롯’이 복수로 사용되는 것은 이것이 항상 ‘바알’과 함께 여호와의 신적 저주의 대상으로 선포되어지는 문맥에서이다(7:3, 4, 12:10, 삿2:13, 10:6). 반면에 ‘아스다롯’의 단수형은 ‘아스타르테’(Ashtarte)로서, 시돈의 여신인 ‘아스토레트’(개역 성경에는 ‘아스다롯’으로 표기되어 있다)와 동일시된다(Klein,왕상 11:5,33, 왕하 23:13). 이 사실은 곧 블레셋 족속들이 가나안의 종교와 문화에 깊이 동화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 그리고 여기 ‘아스다롯의 집’은 ‘아스글론’에 있었던 고대의 유명한 신전(神殿)으로 추정된다(Herodotus).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¹⁶: 여기서 사울의 ‘시체’는 ‘그 머리를 다곤의 묘(廟)에 단지라’라는 역대상 10:10의 언급을 통해서 볼 때, 머리가 없는 몸뚱이 뿐의 시체였던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12절의 언급을 통해서 볼 때, 이때 사울의 세 아들들의 시체들도 함께 성벽에 못박혔음도 분명하다. 그럼에고 불구하고 여기서 본 저자가 오직 사울의 시체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은, 오직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음으로 인해 죽어서까지 수치를 당하는 처참한 자리에 떨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Hertzberg, Keil). 한편 ‘벧산’은 요단 골짜기 근처 즉 이스르엘 골짜기의 동쪽 끝부분으로, 요단 강으로부터 서쪽으로약 6.5 km 지점, 그리고 갈릴리(긴네렛, 디베랴) 바다로부터 남쪽으로 약 19 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으로, 당시 블레셋에 의해 점령된 성읍이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시체를 성벽에 못박은 행위와, 이전에 골리앗이 다윗의 시체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줄 것이라고 그를 위협했던 일(17:44)과는 어떤 상통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또한 고대 문헌에 따르면, 앗수르 왕 산헤립은 블레셋 정복 후 블레셋의 에그론 관리들의 시체를 그 성읍 주위의 기둥 위에 매달아 놓기도 했었다고 한다(Pritchard). 바로 이같은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자신들에 의하여 패배된 적장(敵將)의 시체를 성벽에 못박는 등 모욕하고 또한 공개적으로 노출시키는 행위는 (1) 상대국 백성들에게 엄청난 수치심을 안겨주며 (2) 자신들의 승리를 공개적으로 확증하려는 당시의 전쟁 관습이었음이 분명하다. 아무튼 이러한 비참한 사건은 개인 사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 행한 그의 끈질긴 반역 행위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선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모시기를 거부하고 세속적인 왕을 원했던 그 반역 행위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수모요 치욕이라 할 수 있다(8:4-8,19,20).
길르앗 야베스 거민¹⁷: ‘길르앗 야베스’(Gilead-Jabesh)는 갈릴리 바다 남쪽 약30 km 지점에 위치한 요단 동편의 므낫세 반 지파의 성읍이다(수 17:5,6). 이곳은 사울의 즉위 초기에 ‘암몬 사람’들로부터 침공을 받았었다(11:1). 그때 사울이 ‘베섹’에서 군사를 모집하여 암몬 사람을 공격함으로써, 길르앗 야베스 거민을 구원했었다(11:8-11). 그러므로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은 과거 사울이 자신들에게 베풀어준 이 은혜를 기억한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의 사울에게 행한 일¹⁸: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시체에서 목을 벤 후, 목은 다곤의 신당에 매달고(대상 10:10), 나머지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박아 사울의 시체를 심히 욕되게 한 일을 말한다.
에셀 나무 아래 장사하고²⁰: 여기서 ‘에셀 나무’(the tamarisk tree, NIV) (대상10:12에는 ‘상수리 나무’(the oak tree, Living Bible)로 표기되어 있다. 히브리 원문은 위성류(渭城柳) 나무를 가리킨다)는 길르앗 야베스에 많았던 유명한 나무였다(Smith). 그런데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사울의 뼈를 그 나무 아래 장사한 까닭은, 그들은 사울이 그 나무 아래 앉기를 즐기는 등 생전에 그 나무를 특별히 좋아했었던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22:6). 한편 그곳에 묻혔던 사울의 유골은 후에 다윗에 의하여 발굴되어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 있는 자신의 아비 기스의 묘에 안장되었다(삼하 21:11-14).
칠일을 금식하였더라²¹: 아론이나 모세가 죽었을 때,이스라엘 백성들은 30일씩 애곡을 했었다(민 20:29, 신 34:8). 이같은 애곡은 고인(故人)의 죽음을 아쉬워하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키 위함이었다. 여기의 ‘금식’도 애곡의 일종으로서 같은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삼하 1:12). 이처럼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은 사울의 시체를 벧산 성벽으로부터 걷어다가 장사를 지내고 7일을 금식하였다. 즉 이들은 과거에 사울이 베풀어준 은혜를 기억하고(11:1-11) 그 보답으로 이러한 선행을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은혜를 받는 일도 필요하지만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은혜레 대한 감사 행위는 더욱 큰 은혜를 가져오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성도들도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만을 맹목적으로 간구하지 말고, 이미 받은 은혜를 잘 간직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본서를 마무리짓는 사울의 비극적 죽음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한(8:5,20)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패를 구속 역사의 섭리 속에 승화시키사, 당신의 뜻에 합당한 한 인물을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삼으셨으니(13:14, 15:28, 16:13), 그가 곧 다윗이었다.
202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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