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 위인전> 다윗을 두려워하는 사울
장지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¹
요나단의 마음²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그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³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⁴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⁵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⁶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⁷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⁸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신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¹⁰
그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¹¹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¹²
그를 천부장으로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¹³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¹⁴
<노트> 구약 성서 사무엘상 18장 1-16절은 다윗의 용맹스러움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에 대한 장차의 두려움이 사울로 다윗을 더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다윗의 제거에 실패하게 되는 사울과의 이야기는 다윗의 군사적, 정치적 입지는 사울을 점점 두려움으로 몰아가고 있다.
마치매¹: 이야기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구미가 당기는 상을 약속했던(17:25) 사울은 이제 다윗을 불러 그의 인적 사항을 물어 본다. 일부 학자들이 하는 것처럼 18장 9절과 10절 사이에 16:14~23을 끼워 넣고 본다면, 사울은 다윗과 전쟁터에서 처음으로 대면했으며, 다윗이 대중에게 추종받은 것(6, 7절)이 사울이 정신적으로 불안해 하게 된 원인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야기가 연대순으로 전개된 것이라면, 사울의 질문(17:55)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추정 가능하다. 사울은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미천한 수금 연주자에게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다윗을 몰랐을 것이며, 그럴 경우 16:21은 이후에 전개될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생각된다. 후자의 경우가 그럴 듯하다(참조 16:21 주석). 어느 경우이든, 다윗은 전쟁 영웅이자 영감받은 음악가였기 때문에 사울이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 아비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지 아니한”(18:2)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참조 17:15 주석).
요나단의 마음²: 다윗과 요나단이 나눈 감동 깊은 우정은 서로를 이상형으로 바라보고 교제를 즐긴, 마음이 통하는 영혼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다. 요나단은 이미 아버지의 태도와 행동이 싫다고 표명했다(14:29). 요나단이 볼 때, 사울의 질문에 겸손하고 영적으로 대답하면서 과거에 이룬 업적에 대해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다윗의 모습은 지치고 목마른 여행자에게 시원하고 상쾌한 생수와 같았다. 믹마스의 영웅 요나단은 아버지가 영적인 통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실의와 좌절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요나단 자신처럼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인도와 보호하심에 온전히 맡긴 또 한 사람의 인생이 남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요나단은 미처 알지 못했다. 당사자인 다윗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³: 사울의 신하가 된 다윗은 영원히 궁정에 속하게 되었다. 사울이 이런 조치를 취한 이후 곧바로 16:14~23에 나오는 이야기가 전개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참조 18:1 주석).
언약⁴: 아마도 나중에 일어난 일이겠지만,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도입부로 여기 기록된 듯하다. 우정의 언약은 분명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원정을 나가고, 서로에게 애정이 깊어진 결과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분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과 동일한 영적 이상, 동일한 겸손, 동일한 평안을 훗날 그분의 구속받은 사람들의 생애 가운데서 보면서 느낄 감동의 일부를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이 두 영혼을 통해 보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마음이 통하는 영혼들이 영원한 교제를 나누는 천국은 그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될 것인가!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⁵: 다윗을 향한 요나단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그는 몇 세기 후에 침례자 요한이 말한 대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기꺼이 말할 심정이 되었다. 그는 다윗에게서 한때 자신이 꿈꿔 온 것을 보았다. 진정한 사랑으로 두 사람의 모든 훌륭한 특성이 결합되었고, 요나단은 행복이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한 나머지 모든 사람 안에 진리의 씨앗을 심기 위해(요 1:9) 자원해서 하나님으로서 지닌 모든 특권을 버렸다(빌 2:6~8).
다윗이…보내는 곳마다 가서⁶: 바로의 궁정에 살았던 모세처럼, 다윗은 미래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행정업무를 익히는 훈련을 받았다. 그는 배치된 직책을 통해 다양한 관점으로 인생을 보게 되었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통찰력을 얻었다. 다니엘과 같이 다윗은 자신이 택하지 않은 환경에서 고결함을 잃지 않았으며, 타락할까 염려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밤이 어두울수록 빛이 더 밝게 비칠 것을 알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그분의 종들을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회오리바람 속에 넣는다. 아버지 이새의 집에서도 책임감 있는 아들이었던 다윗은 이제 왕의 충실한 사자로서 그의 가치를 입증했다.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더니⁷: 사울은 자신의 군사들이 거절한 결투 신청을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을 예우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이제 갓 청년의 티를 벗었지만 다윗은 분별력 있게 훌륭히 행동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쉽사리 인정받았다. 다윗의 훌륭한 성품도 드러났다. 그렇다고 다윗이 아브넬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말은 아니며 아브넬은 여전히 군장이었다.
그의 더 얻을 것이…무엇이냐 하고⁸: 하나님이 “왕보다 나은”(15:28) 다른 사람을 왕으로 고르셨다는 선언이 있었던 때와 왕의 궁정에서 다윗이 지금 겪는 경험 사이에 얼마나 시간 간격이 있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할지라도, 사울은 분명 그의 뒤를 이을 사람이 나타날 징조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참조 9절). 최근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였으며, 이 양치기 소년의 용기있는 공훈이 없었더라면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우를 해주고 친하게 사귀었던 이 소년이 백성들뿐 아니라 군대가 자신에게 보냈던 사랑을 앗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분개했다. 은혜를 그 따위로 보답한단 말인가? 시간이 지났지만 선지자의 질책으로 받은 상처는 여전히 욱신거렸다(참조 15:23). 사울은 다시 한번 불만과 악한 상상에 굴복하여 결국 질투심으로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악신⁹: 참조 16:15, 16 주석. 하나님은 시험을 허락하지만 사람이 죄를 짓도록 유혹하지는 않는다(약 1:13; 참조 고전 10:13).
야료하는 고로 “헛소리를 질렀다”(개정표준역(RSV))라는 뜻인 듯하다. 여기서 쓰인 동사 형태는 진짜 예언을 한다는 뜻으로 쓰일 때도 많지만 거짓 예언을 말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울이 무아지경에 빠져 발작을 일으킨 것은 극도로 격정적인 성향 때문으로, 아마도 신하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신성한지를 보여 감명을 주려고 한 듯하다.
다윗은…수금을 탔다¹⁰: 두 사람이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고 있는가! 사울은 질투심에 불탄 나머지 다윗을 죽이려고 일부러 창을 잡았다. 위험을 감지하고 사울이 왜 감정의 폭발을 일으켰는지 눈치챘을 다윗은 수금을 집어들고 왕의 불안해진 정신적 긴장을 경감시키려 했다.
사울은…두려워졌다¹¹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한 이유는, 하나님이 다윗을 좋아하여 자신를 떠났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부러 사울에게서 떠난 것이 아니라 왕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버린 것이 아니었던가?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선택의 능력을 주었기 때문에, 사람이 그분의 조언을 구하지 않으려 한다면 강제로 그를 제약하지 않는다. 아담은 사단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을 저버렸다. 그때 하나님이 그를 버렸는가? 바울은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교회를 탄압했다. 그때 하나님이 그를 버렸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바울이 후일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단언할 수 있었겠는가?
다윗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치유하시는 힘을 다시 의지하고 느끼도록 사울을 초청하고 그의 강퍅해진 마음에 간청하였다. 사울이 돌이킬 수 없이 왕으로서는 자격을 상실했지만, 한 개인으로서는 아직도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참조 15:23, 35 주석).
사울이 그로 자기를 떠나게 하고¹²: 사울은 이기적인 마음에서 다윗을 궁정에서 내보내고 “천부장”으로 삼았는데, 이는 사울의 크나큰 실수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고통을 달래 줄 다윗이 연주하는 음악의 곡조가 사라졌다. 다윗만큼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5절) 다니며 대중 앞에서 왕의 손을 들어 줄 사람도 없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마음을 낮추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돌이키는 길을 더 어렵게 만드는 바로 그 일을 저질렀다.
지혜롭게 행하니라¹³: 히브리어 동사 형태가 의미하는 대로, “성공적이었다.” 권력자가 부하를 다루는 데 실수를 저질렀을 때, 부하는 현명하게 행동하여 오히려 상사의 실수를 디딤돌로 용이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 다윗은 자신의 지위가 강등당한 듯한 조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는 새로 맡은 직책에서 모든 이스라엘 국민의 칭송을 얻었다. 다윗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해서 맞받아 비난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불쌍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항상 하던 대로 밝고 영적인 정신상태를 유지했다. 왕의 분노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호와께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책임을 지기에 앞서 꼭 필요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 하나님은 주어진 의무에 충실하려고 작정한 개개인의 독특한 필요에 맞게 인생의 훈련 과정을 적절히 변경한다.
출입함을¹⁴: 다윗에게 맡겨진 임무는 계속적으로 백성의 주목을 받게 하는 일이었다.
202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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