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심

<연필심>요시야 왕의 정치 군사적 오판의 결과

노파 2013. 7. 31. 05:55

2013년7월31일 수 흐림

요시야 왕의 정치 군사적 오판의 결과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온고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뇨. 내가 오늘날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라.”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하였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그 신복이 저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저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저가 죽으니, 그 열조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예레미야는 저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는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한 모든 선한 일과 그 시종 행적이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역대하35장20~27절)

 

본문 상 주석

요시야의 치적의 결론과 애급 왕 느고에 대한 죽음을 언급하고 있다. 열왕기하23장29절의 기록에 따르면, 애굽 왕 느고는 앗수르 왕을 치고자 올라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히브리 원문 상 애굽 왕 느고는 앗수르를 도와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을 물리치고자 북진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요시야의 죽음은 후대의 역사적인 전개 과정에서 살펴 볼 때 정치, 군사적 오판의 결과였다. 하지만 역대기 기자는 우리와는 다른, 보다 심층적인 이유를 제시해 준다. 즉, 그는 요시야가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아가페 큰 글 성경 709 주석)